내가 다름 아닌 마리오네트라니, 어리둥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행지에서 본 꼭두각시 인형이 떠올랐다. 여러 개 줄로 조종하는 그것은 턱 관절이 빠지며 커다랗게 입이 벌어질 때는 우스꽝스러운 한편, 어딘지 공허한 표정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엄연한 이름을 두고 그리 지칭하다니, 별일이었다. 그새 별명이라도 생겼나 여기며 지켜보기로 했다.수업이 끝난 뒤
- 정혜련
내가 다름 아닌 마리오네트라니, 어리둥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행지에서 본 꼭두각시 인형이 떠올랐다. 여러 개 줄로 조종하는 그것은 턱 관절이 빠지며 커다랗게 입이 벌어질 때는 우스꽝스러운 한편, 어딘지 공허한 표정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엄연한 이름을 두고 그리 지칭하다니, 별일이었다. 그새 별명이라도 생겼나 여기며 지켜보기로 했다.수업이 끝난 뒤
1파주 다율리·당하리 지석묘군에서 새암공원까지 이어지는 숲속 8km의 산책길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만이 아니라 몇 겹의 시간을 한꺼번에 밟아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길의 앞머리에는 넓은 돌뚜껑으로 눌러 놓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엎드려 있고, 중간쯤에는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키 큰 비석과 봉분들이 줄줄이 널려 있으며, 끝자락에는 신도시
이충서는 월말 특집 마감을 하고 홀가분하게 부원들과 함께 몇 군데 주점을 돌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 지하철을 탔다. 밤이 깊어서인지 승객들은 많지 않았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아 조는 듯 마는 듯 가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떴다. 그런데 바로 건너편 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아, 평생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여자, 생각할
여름 숲은 늘 바빴어요.매미들은 아침 햇살이 나뭇잎에 닿기 바쁘게 맴맴맴 목청을 높였어요. 나비들은 꽃밭 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잠자리들은 연못 위를 쌩 지나며 비행 솜씨를 뽐냈어요. 숲은 온통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춤추는 것들로 가득했습니다.하지만 참나무 가지 위에는, 제자리에 묵묵히 멈춰 서 있는 조용한 벌레가 있었어요. 유난히 길고 단단한 주둥
매달 넷째 주 토요일이면 하늘이네 집은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양로원을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지난번엔 참치김밥을 했으니까 오늘은 김치김밥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매운 걸 못 드실 텐데 괜찮을까?”엄마는 어르신들이 매운 걸 못 드실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옆에서 햄과 달걀, 맛살 부스
늦가을 햇빛에 눈이 부시다. 감나무잎 사이로 출렁이며 비껴 들어오는 햇살이 가슴을 파고든다. 예년만 못하지만, 주황색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유년 시절 도시로 이사 왔을 때 마당 한쪽에 자리를 잡은 감나무를 처음 보았다.5월이 시작되면 연두색 싱싱한 감잎이 달린 가지 사이로 노르스름한 감꽃들이 빼곡히 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나무 밑에는 떨어진 감꽃
퇴근길, 이미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노상 모니터에 처박느라 길게 늘어진 모가지가 뻐근하다. 찌뿌둥한 허리를 뒤틀어 양껏 괴롭히고 나서 거리를 찬찬히 둘러보니, 어느새 흥청망청 쑥덕쑥덕 난리통인 번화가를 걷고 있다.“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노는구나.”짧게 볼멘소리를 해본다.이 시절을 살아내는 여느 청년들과 같이 나 또한 나랏일이 걱정이고, 경
인생을 어느 만큼 살고 보니, 이제야 ‘선물’이라는 단어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젊은 날의 내게 선물은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대가 없이 주고받는 물건이나 행위에 불과했다.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나눔, 그 안에는 감사와 사랑, 혹은 사과와 축하 같은 선명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그
주변이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외진 곳이었다. 그곳에 덩그러니 저층 아파트 16개 동이 있었다. ‘영남들국화아파트’였다. 역곡역으로 출발하는 주민 전용 버스 2대가 교통수단이었다. 신혼부부인 우리는, 그 아파트 맨 끝자락에 자리한 1동 5층 꼭대기 16평에서 삶의 둥지를 만났다.새소리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부엌 창문을 열면 찾아오는 이 없는
살아오면서 출산에 관한 일을 수없이 보고 들었다.출산은 인간세상을 이어가는 인류의 대서사시다. 1960∼70년대만 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했다. 그 시절엔 출산에 따른 여성의 희비가 교차했다. 그러한 시기가 지나고 남녀평등시대가 도래하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생활은 윤택해졌다. 하지만 교육문제와 주거비 상승으로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은 사회문제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