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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따분함과 호기심 사이에서 당당하게

빛이 닫혔다고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전 여성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대체 학습으로 개설한 ‘나도 작가다’라는 과정을 몇 년간 이끌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온몸으로 쓴 글을 편집하고 퇴고해 『어둠도 빛이더라』라는 책을 세상에 내보였다.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지도한다는 것이 처음엔 버거웠지만, 점점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 김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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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따뜻한 마음

새벽 1시 30분쯤, 어머니가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남겨진 세상과 정을 떼기 위해서였을까?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즐거움도 마다하고 조용히 누워 있다가 삶을 마감한 것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세상으로 소풍을 떠나며 자식들에게는 풍목지비(風木之悲)를 남겼다. 어머니는 조용히 떠나셨다지만 자식들에게

  • 이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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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5.9 679호 종이신문

새벽녘엔 어수선한 꿈을 꾸다 깨어났다. 날마다 극심한 사회의 갈등으로 혼란하고 불안했던 마음 때문이지 싶다. 가만히 누워 마음을 안정시킨 후 주방으로 나가서 미지근한 물을 한 컵 천천히 마신다. 밤사이 경직된 근육을 몇 가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후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면 또 하루가 펼쳐진다. 은은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거실을 둘러봐도 아직도 집

  • 이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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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5.9 679호 숨소리도 두고 갈 텐데

화천 오음리 근방 병풍산 자락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춘천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2년이 된다. 도시는 모든 소리가 공해의 소리로 잠을 깬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의 소리와 신록으로 물든 초록빛에서 잠들었던 주변의 꽃들의 화사한 미소를 보며 새벽을 맞는다. 사방에서 들리는 이름도 모르는 산새 소리도 좋지만 멀리서 크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함께 창조의

  • 이영주(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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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관계 다이어트

“당뇨네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잘 챙겨 드시고 3개월 뒤에 뵙겠습니다.”당뇨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당뇨까지 걸렸구나’가 아니었다. ‘왜 저렇게 혼내는 것처럼 말하지?’였다. 당 수치가 기준치보다 얼마나 높게 나온 건지, 앞으로 당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려줄 줄 알았다.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듯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 윤옥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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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25.9 679호 남해와 독일마을

올 4월 중순, 대구에 사시는 친척 언니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셨다. 4월 25일 진주여고 100주년 개교 기념일에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시 한 편을 낭송할 예정인데 딸인 내가 골라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모교인 진주여고 후배 되는 분과 직접 이 일에 대하여 서로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두꺼운 시전집을 들춰 보기도 하고 내가 아

  • 유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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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어머니의 그림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슬픔도,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60여 년 전, 좀처럼 내 곁을 떠날 것 같지 않았던 어머님이 세상을 뜨셨다. 황망 중에 집에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운구 행렬이 집을 나서던 날과 묘지에서 하관식이 있었던 때는 그렇게는 보내드릴 수 없다고 몸부림치던 내

  • 이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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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25.9 679호 노을 속에 잠기다

노을은 평안이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노을은 하루의 노동을 끝낸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평안이다. 고개 하나 돌아 마상천 둑길에 들어서면 홍시의 붉음보다 더 붉은 그림을 흘려놓고 서서히 지상의 아쉬운 작별을 남기고 멀어진다. 뒤이어 오는 붉은 해는 형제봉 사이를 넘어 손톱만큼 남기다가 꼴깍 저물어 가면서 하루의 이야기를 모두 안고 돌아간다.그 모습이

  • 전경애(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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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연두로 본 세상은 어땠을까

볕이 반사되는 날은 햇빛 차단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나간다. 바닥이 양탄자처럼 푹신한 재질로 발끝에 닿는 느낌이 마치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 듯하다.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내 또래 여인과 세 마리 느린 ‘시추’의 모습이 다물어 있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날 향해 달려오는 노견의 모습에서 마치 ‘라미’인 듯 착시 현상이 일었다

  • 이경선(청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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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나도 귀여운 여인?

고등학생 때였으니 50년도 훨씬 전이었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라는 책을 제목에 끌려 단숨에 읽었지만 실망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여자는 일부종사(一夫從事)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혼을 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도 정을 주는 여자가 귀여운 여인이라고?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남러시아 아조프해 항구 타간로그에서 식료품 잡화상의

  • 설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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