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에서 나무가 타닥거리며 타오른다. 나무 타는 냄새가 온 마당을 점령한다. 아궁이에 얹힌 커다란 솥에서는 벌써부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솥뚜껑도 딸그락 소리를 내며 들썩인 지 오래다. 물이 끓어 넘치며 피시식 열 삭히는 소리를 낸다.나는 몇 시간 전부터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다. 사골이 제맛을 낼 때까지 진득하게 장작을 넣어줘야 한
- 최은하
아궁이에서 나무가 타닥거리며 타오른다. 나무 타는 냄새가 온 마당을 점령한다. 아궁이에 얹힌 커다란 솥에서는 벌써부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솥뚜껑도 딸그락 소리를 내며 들썩인 지 오래다. 물이 끓어 넘치며 피시식 열 삭히는 소리를 낸다.나는 몇 시간 전부터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다. 사골이 제맛을 낼 때까지 진득하게 장작을 넣어줘야 한
나는 목티 입기를 좋아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가을이 깊어지면 목이 있는 티셔츠부터 찾는다. 목이 따뜻하면 안심이 된다. 또 겨울이면 내복 입기를 좋아한다. 기후 감수성 함양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추위를 이기는 실속 대책이라 여기며, 실제로 입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나는 보릿짚 모자 쓰기를 좋아한다. 텃밭에 일하러 갈 때는 필수이다. 그리고 여
얼굴을 많이 바꾸었습니다여기까지오는 동안 바람은 때마다 불었지요나는 어제 태어났지만어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내일은 이미 내 속에 있었는지 모릅니다잴 수 없는 시간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라는데요 당신은 내 안에 있는데, 어디에도 없는오후가 무너지고 있었어요그늘을 만들다니요?나는 무게가 없는걸요비행운을 남기고 전투기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nbs
[지역특집] 경상북도지회 소개 1.태동에서 현재까지1962년 6월, 경북문인협회는 초대 회장 유치환을 중심으로 창립되어 경상북도와 대구 지역 문학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창립 당시 대구공회당 지하 다방에서 유치환, 이호우, 이윤수, 신동집, 박양균, 박훈산 등 30여 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었으며, 이후 19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되
1970년대 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이십대 후반이 된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스물여덟 이전에는 꼭 신춘문예에 당선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안 돼!’ 하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다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사람이 『현대시학』에서 시 1회 추천을 받은 것을 보았
오늘은 우리 동네 5일 장날입니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나는 동생 슬기와 함께 장터로 가보았지요. 채소와 생선들이 넘쳐나고, 고양이, 토끼, 강아지, 병아리 같은 작은 동물들이 철망 안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단연 고양이입니다.“형, 얘 좀 봐. 털빛이 너무 곱다, 그렇지?”“나는 그 옆에 있는 노랑이
낮은 짧아졌고 밤은 길어졌습니다. 차려입은 여인보다 화려했던 장미는 염천(炎天)의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으로 받아냈던 피의 향기를 갈 바람에 실어 어디로 보내는지 알 수가 없는 계절입니다.찬란했던 여름의 노을이 황홀지경 벅찬 가슴 물들였다면 석양이 구름을 만나 붉음을 토해 내는 가을의 노을은 머뭇거리며 계절이 두고 가는 흔적 앞에서 들숨과 날숨이 사라진 먹
가을은 그리움이다. 코끝에 스치는 나뭇잎 익는 냄새, 그 향이 서서히 다가와 내게 머문다. 개천변의 벚꽃잎도, 도로변의 은행잎도, 우리 집 목련 잎도 빨강, 노랑, 커피색으로 알록달록 익어 간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때문인지 아직 대지의 숨결은 무겁지만, 곧 가을 냄새가 공기를 바꿔 줄 거라는 기대에 마음이 가볍다. 귀뚜라미 울음이 시끄럽게 들리는 것을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뒷산 등산로에서 토끼를 만난 건 6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새끼 토끼 두 마리가 나타나 뭍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1∼2년이 지나도 식구가 불어나지 않아 의아해했다. 혹시 같은 종(種)끼리만 살고 있나 했는데, 어느 날 새끼 6마리를 데리고 나타나 식구가 8마리로 늘어났다. 동네와 가까워
새벽을 가르는 뿌연 박명이 이름 모를 섬의 자태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반짝이는 불빛 사이로 바다에 오른 배가 보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움직임을 알아챌 수 없도록 나아가고 있지만, 방향만은 제대로 알고 있다는 자부심 섞인 흐름이다.그 앞 낮은 건물 사이로 일찍 깨어나온 새 한 마리가 공중에 획을 그으며 날아간다. 힘찬 하루를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