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이마에 닿자마자 내 바깥을 먼저 지웠다축축한 온기 속에서 나를 더듬어 내려갔고, 손끝에 닿는 것은 살이 아니라, 빛이 닳아 가는 자리였다 기억은 얕은 물결처럼 떨리며 흩어졌다 사유는 그 사이를 조용히 미끄러졌다 닿기 직전에 스러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안쪽으로 천천히 잠겨 갔다 꿈은 내 형체를 절반쯤 접었다 접힌 자리마다 시간이 스며들었고,
- 박기준(양천)
안개는 이마에 닿자마자 내 바깥을 먼저 지웠다축축한 온기 속에서 나를 더듬어 내려갔고, 손끝에 닿는 것은 살이 아니라, 빛이 닳아 가는 자리였다 기억은 얕은 물결처럼 떨리며 흩어졌다 사유는 그 사이를 조용히 미끄러졌다 닿기 직전에 스러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안쪽으로 천천히 잠겨 갔다 꿈은 내 형체를 절반쯤 접었다 접힌 자리마다 시간이 스며들었고,
강원도 통리산골마을 냇가하교 시간이 되면 달려갔던 곳 산모퉁이 돌아 도달한 곳작은 물고기 떼지어 반기고 덩달아 물장구치며 기뻐했었다 신발은 그물이 되어송사리 올챙이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가곤 했었다 저녁이 스며들어 땅거미 지고 저녁 먹으라는멀리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 따뜻한 그 온기그리움으로 남
꽃과 나는한마음 너와 나는둘이 아닌 하나다 꽃은눈 안에 들어와다시 꽃이 되고 나는꽃 밖으로 나가다시 꽃이 된다
바람은 고요한데밭에 호박은어머니 탯줄에 기대무성하게 자랐구나! 자식의 머리가 커지면어머니가 자식의 탯줄을 잘라야,살 수 있으니, 고요한 바람도이별의 칼처럼 날카롭구나!
닷새에 한 번 읍내 장날우리 집 마당은동네 아이들 놀이터 평상시에는 새엄마 무서워우리 집 근처 얼씬도 못하던 아이들 새엄마 마을 어귀 벗어나기 무섭게 삼삼오오 몰려와 공놀이 고무줄놀이 줄넘기 나는 이편저편 깍두기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엄마 올 때쯤 되면 썰물 빠지듯 가버리고&n
올 때부터 떠날 준비를 하는 너아름다운 이별을 위해봄부터 수의를 짓는구나이슬에 햇살 입혀 옷감을 짜고보슬비로 촉촉히 물감 들여서하늘의 구름 따서 마름질하여바람결에 촘촘히 바느질하고매몰찬 폭풍에 구겨진 주름뙤약볕에 나긋나긋 다림질해서치맛자락 가득히 봄 새겨 넣고너만의 멋을 살려 품위를 갖춰 입고 꿈 심을 묘지 찾아 나풀나풀 가는구나 이내 몸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들판에 발자국을 먼저 놓는다 바람보다 먼저 달려간 꿈이 뒤돌아 손짓한다 다 닳은 시간의 끈을 쥐고 한 번 더 바람 쪽으로몸을 기울인다 넘어져도 좋다길은 끝나지 않기 위해스스로 끊임없이 펴고내일의 이름으로 흔들린다 미래는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달려가는 심장 속에서
끊임없이 부풀고 오므라드는 숨그 사이를 건너온 수많은 계절의 물결 때로는 저녁보다 무거운 어깨를 내려놓고 담장 너머 바람이 먼저 가 있는 곳을 꿈꾼다 한철 꽃들이 제 몸을 환하게 여는 날과 무채색 하루를 묵묵히 건너는 날들 사이 마음에는 어느새이름 모를 통증 하나 스며든다 자 이제 발걸음을 놓아 주렴괜찮
라오스 방비엥 이른 아침 구름 한점 없다하늘 높은 행글라이더 산등선 능선 따라 날으고열풍선 떠올라 바람 타고 흔들리며 흐른다 카르스트 둥그런 산들은 고요 속 강물 속에 비추니 휘돌아 흐르는 강물에감기어 흔들린다 카약보트 노 젓는 사공강물 위로 살처럼흔들리며 흐른다내가 살아가는 삶이흔들리며 흘러간다 흔들리며 유유히 흐르지 않는 것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싸늘한 공간그곳으로 향하는 이동식 침대 위깡마른 육체가줄줄이 늘어진 생명줄에 꿰인 채바람 빠진 풍선처럼 뉘어 있다 반쯤 감겨 있는 눈 주위에덜 마른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고초점 잃은 눈동자에익숙한 듯 낯선 모습이 어슴푸레 지나간다 ‘내가 이곳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혼미한 의식이 잠깐 흔들리는 사이&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