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눈 흩어지는 어느 겨울창문을 두드리는 눈발 바라보며무 한 개 가로 베어 반쪽 먹고남은 반쪽 방 한편에 두었다 며칠이 지났을까방구석 덩그러니 놓여 있던 잘린 무, 한쪽에선 검은 곰팡이 피어나고다른 쪽에선 연둣빛 싹이 자라고 있었다 칼날 지나간 자리육신을 도륙당했으나 죽지 않았고부패했으나 무너지지 않았던 무,천장 향해 시나브로 꽃을
- 이태범
밤눈 흩어지는 어느 겨울창문을 두드리는 눈발 바라보며무 한 개 가로 베어 반쪽 먹고남은 반쪽 방 한편에 두었다 며칠이 지났을까방구석 덩그러니 놓여 있던 잘린 무, 한쪽에선 검은 곰팡이 피어나고다른 쪽에선 연둣빛 싹이 자라고 있었다 칼날 지나간 자리육신을 도륙당했으나 죽지 않았고부패했으나 무너지지 않았던 무,천장 향해 시나브로 꽃을
가끔 누구에게든 안부를 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안녕하세요네 오랜만이네요 잘 계시죠네 잘 있어요 이런 말들이 상상 속 얼굴에서 말을 건네고 답을 듣는 동안휴대폰 주소록만 훑어보는나를 발견하게 된다 안부란 잘 지내고 있을 소식에게만묻는 일이지 예정 없이 옷장을 열어보고나를 비운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이제쯤 의류수거함에
생과 사빛과 어둠의 경계어둠으로 꺼져가고빛으로 살아나는가 늦음과 빠름이 정해진 정사각 미명(微明)의 조명 산 자의 영혼과죽은 자의 넋 서로 갈 길 다른두 갈래의 길열림도 닫힘도누름 없이 머뭇거린다.
하늘을 날아서훨훨 날아서푸른 비단 위에 붓을 휘두른 듯붉고 푸른 초록과 보랏빛의 노래가바람에 실려 흩날린다 나는 붉은 새의 날개를 두르고오렌지빛 지붕 위를 뛰어올라뒤집힌 낮별들의무중력 꿈결 속에서너와 함께 아름다운 빛의 강을 건넌다 너의 손끝은 은빛실 나의 심장은 푸른 종 서로가 교차하며 울리는 종소리는두려움마저 그 빛 속에 녹아
구순(九旬)의 어머니가 기억을 되감으신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다는함지박 매만지시며나뭇결 닮은 미소를 지으신다 시간의 흔적시간의 결을 들추고감성의 결을 꺼내시는 어머니종부의 길옹이진 삶이었지만결 고운 사람이 옆에 있어생명의 나이테를 그릴 수 있었다는 어머니 함지박의 과줄달콤하게 녹는 시간오르골처럼 감기는 담소(談笑)만질수없는세월사십
푸른 연기를폐 깊숙이 들이마신다 시리도록푸른 하늘 사이로뼛속 깊이 밴 땀냄새지독히 힘겨운 민낯 후하고가슴속에 쌓인고통의 찌꺼기를 쏟아낸다 언제부터인가아픔이차곡차곡 슬픔으로 쌓이고 쓰디쓴담배 연기 사이로 눈물이 고인다.
전라도 신안, 천사의 섬하늘을 나는 천사가 아닌천네 개의 섬이 있는 곳 안좌면에서 반월도, 박지도세 섬을 잇는 보랏빛 다리사람들은 그것을 퍼플교라 부른다 다리도 지붕도 보라색길도 꽃들도 보라색온통 보라빛 세상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녹색으로 둘러싸인 산들보랏빛 마을과 다리가삼색으로 조화로운 마을을 이룬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
내가 너를,아름답다 하는 건황혼을 사랑해서도 아니고내가 너를,아름답게 보는 건,마지막 길에도 사랑할 줄 알고떠날 때 고운 웃음을 보이는 것이라네 구르는 돌에는이끼가 끼지 않듯.인생도 고운 마음엔 늘 꽃이 핀다네.
벽에 걸린 초상화어머니는 우물 속 블랙홀이다언제나 이명 속에서 웅웅대는 블랙홀이다 내 안 바닷새들 뒤척이는 밤이면뒤란 곁, 살구나무 아래 우물 속어머니는 초승달로 떠오르고이끼 낀 두레박을 내려 어머니를 만지면 어머니는 천 조각의 거울로 깨어진다 내 아픈 은유의 나라일렁이는 거울 속으로 사다리를 내리면 나의 창세기 그 시절
너도 나도정수리털끝부터발가락끝톱까지육체의 공간에서모래알 표정을 짓고, 어떤 이는 잃어 버렸다어떤 이는 다시 생겼다입술로 마음으로 부르고불러보는 우리는그렇다, 사람이다. 담담히 앞을 보다가도갸우뚱 기우뚱배시시(時時) 간간(間間)이눈동자 웃음소리 내니숨소리도 따라 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