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비추는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동네 개들이 그악스럽게 짖어댔다. 달리는 속도에 맞춰 심장 박동도 점점 가빠졌다. 경택은 더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멈춰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사위는 여전히 달빛에 젖어 있었다. 그는 달빛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개울을 건너고 들을 지났다.다시 잠시 숨을 고른 경택이 걸음을 재촉
- 정성문
1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비추는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동네 개들이 그악스럽게 짖어댔다. 달리는 속도에 맞춰 심장 박동도 점점 가빠졌다. 경택은 더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멈춰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사위는 여전히 달빛에 젖어 있었다. 그는 달빛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개울을 건너고 들을 지났다.다시 잠시 숨을 고른 경택이 걸음을 재촉
카페 사장이 무소르그스키의 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층 전체를 갤러리로 사용하는 카페 ‘그림자’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꼭 들른다. 나뿐 아니라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단순히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온다기보다는 허전함을 채우러 온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벌써 입구를 들어서면 어깨에 멘 가방끈이 바닥으로 밀려 내려가고 그것을 놓치
“우리 경태가 집을 나간 지 사흘째 됐는데 연락이 안 돼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기자님이 좀 찾아주세요.”경찰서 근처의 커피숍. 경태 모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와 붉고 푸른색으로 반들거리는 긴 손톱, 가슴골이 보일락 말락 드러나는 꽃무늬 원피스 등 단정하지 못한 차림새는 여전했지만, 표정은 간절했다. 경태 모가 서 기자의 손이
“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듬직한 정 팀장이 손에 핏줄이 생기도록 세게 악수를 했다. 정 팀장은 이번에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했고, 난 팀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그때였다. 김 양이 차를 갖고 들어왔다. 그녀가 찻잔을 놓으면서 말했다.“부장님! 이번 봉사활동을 어디로 가죠?”“그래, 이번 달에는 봉사활동 가는 달이지. 그래 갈 만한 곳을 정 팀장이 물색
대돌 씨는 7학년 6반이다. 100세를 산다 해도 3/4을 넘게 살았다. 90세를 산다면 15/18를 넘게 살았다. 나름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인생 목표를 무병장수하며 신선처럼 살기로 정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를 전제로 여러 가지 목표를 다양하게 추가하였다. 곧 죽을 게 아니고 오래 살 생각을 하니 미래에 계획을 세울 내용도 많고 목표도 다양해졌다.
“잘 지내지? 죽기 전에 조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한 겨.” 아침 출근길에 항암 치료 중인 막내고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소설(小雪) 추위에 손돌바람이 분다. 목도리를 여미고 휴대전화를 귀에 붙이고 걸음을 옮긴다. 고모의 목소리는 쓸쓸한 늦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버석거렸다.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 싫다고, 겨우 두 다리만 뻗을 정도로 작은 모퉁
“혹시, 이 교수님 아니신지요?”무언가 은밀한 일을 도모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낯선 듯 익숙한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름을 선뜻 떠올리지 못해 무안해할 그를 배려하려 “낯은 익은데 성함이 잘…” 하며 말끝을 흐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00학번 경제학과 제자이자 현재 지점장으로 근무 중이라는 그는 내 수업을 두 강
미시령터널을 빠져나오면 시원하게 트인 검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내리막길을 따라 6·25 전시에 특수 활동을 하던 유격군 부대의 수련장이 보인다.지난 추억에 젖어 계속 가다 보면 어느덧 바닷가 ‘아바이마을’에 이른다. 예전 같으면 전우들이 나와 반겨 주었을 것을 다들 고인이 돼 떠나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 담 곁에는 예전처럼 오징어가 널려 있어
현충일을 시작으로 재량휴업일과 연계하여 며칠간의 짧은 방학이 주어졌다. 이 기간을 백분 활용해서 손녀를 돌봐줄 계획을 세웠다. 뜻밖의 휴가를 보내게 된 딸아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약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지역에 떨어져 사는 이유로 딸아이의 육아를 돕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주말에는 사위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도와주고 있기는 해도
5월 말의 ‘연산동고분군’은 밤꽃 향기로 덮여 있었다. ‘나, 밤나무가 바로 여기에 있어, 찾아봐 줘’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무심코 지나치는 과객을 불러 세우는 강렬한 끌림이었다. 나뭇가지마다 자잘하고 몽글몽글한 흰 꽃들이 작은 포도송이처럼 한가득 달려 있었다. 그 수수한 모양새 뒤에 숨은 짙은 향기는 지나가던 이의 발걸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경주의 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