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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엄마와 까치무릇꽃

겨울이 머물던 자리에 봄햇살이 내려오면 꽁꽁 얼었던 대지는 긴장을 풀고 포실포실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햇살이 미처 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설령 겨울의 미련이 잔설로 남아 있더라도 머잖아 앙증맞은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사계 중 유독 겨울을 좋아하건만 봄이 오는 초입에 햇살의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온몸을 휘감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전율한다. 대

  •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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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활자 송이

고인쇄박물관을 나서자 둥글둥글 솔방울 모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주먹만 한 솜방망이에 줄줄이 꽂혔던 막대사탕처럼 가지 끝에 앙증맞게 매달린 밀랍 가지에 가슴이 설렜다. 새롭고 신기했다.가지는 나무나 풀의 원줄기에서 뻗어 나온 줄기이며, 근본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말하기도 한다. 팸플릿의 밀랍 가지라는 말이 생소하여 이 말을 인터넷에서 찾았더니, 고려시대 금

  • 남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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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안녕하세요

우리는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인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요즘 날씨는 봄이 왔다고 하는데도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춥다고 할 만하다. 외출하기가 예전처럼 쉽지는 않아도 웬만해서는 걸어 다니려고 하는데, 보름 전에 빌려왔던 책자의 반납 통지가 카톡으로 날아왔다. ‘내일은 빌려 가신 도서 반납일입니다’라고.빌려 온 책은 다 읽

  • 이정웅(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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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하린이와 기억의 공방

아빠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어느 날부터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금기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거실 한복판에서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웃던 가족사진은 먼지 쌓인 창고 구석의 낡은 담요 아래로 밀려났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모든 흔적을 지워 나갔습니다. 엄마의 하늘색 꽃무늬 찻잔은 유리 진열장 제일 높은 칸에 갇혔습니다.하린이가 식탁에 앉아 젓가락만 재까닥대다 입을

  •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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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마술 카페

서연이는 상추에 오리고기를 싸서 볼 가득 넣었다. 선생님이 바삐 밥을 먹으며 말했다.“빨리 먹어라. 흡연 예방 캠페인이 있으니.”서연이는 흡연 예방 캠페인이라는 말에 목이 콱 막혔다. 아빠가 생각나서였다. 아빠는 어제 몰래 세탁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관리실에서 또 연락이 왔다. 윗집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민원이 들어왔단다.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 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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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변신(變身)

때_ 2026년 4월 현재장소_ ○○시 외곽에 위치한 세련되지만 어딘가 긴장감이 흐르는 ‘털털한’ 왁싱숍인물_ 늑구(엉겹결에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원장(냉철하지만 다소 털털한 성격의 프로페셔널한 왁싱숍 주인)|카페 사장(늑구의 아르바이트 카페 주인)|추격자들(늑구를 쫓는 사설 포획팀장과 팀원들)|여인(늑구가 짝사랑하게 된 카페 손님) 1장_ 털,

  • 이종수(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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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검은 뼈, 하얀 종이——강경호 시집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울다』에서의 ‘초혼과 송별'

1. 죽은 이를 부르는 목소리서정시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사유를 언어로 형상화하는 문학 장르이다. 특히 죽은 이를 기억하는 시에서 언어는 부재한 사람을 다시 부르는 목소리가 되기도 하고, 그가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송별의 말이 되기도 한다.오래전부터 한국 시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 말을 건네는 작품들이 있었다. 『삼

  • 강나루(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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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농촌생활에서 얻는 것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생활을 꿈꾸지만, 쉽게 정착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러 환경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작은 땅조차 가질 수도 없고 경작도 할 수 없게 됐다. 한때 그 많은 귀촌 귀농인이 하나둘 짐을 싸서 돌아가고 농촌에는 그들이 떠난 덩그레한 새집들이 잡초에 둘러싸여 또 하나의 폐가가 되고 있다.농업경영체 등록을 못하면 땅을 살 수도 없고,

  • 이동배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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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그 집엔 감나무를 심지 않는다

종종 뉴스에서 나올 법한 기사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해 말문이 막혔다. 몇몇 방송기자들이 취재차 응급실에 들어와 환자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소란을 피웠다. 사생의 순간에 장호가 한마디 하자 기자들은 조용히 물러갔다. 잘못되면 한 마을에 쌍초상 치르게 생겼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덜덜덜 콤프레샤 소음과 이쪽저쪽 석고보드에 타카 치는

  • 황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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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기억의 파편

코로나19로 인천 집에서 재택근무 중이다. 현석의 회사는 서울 충무로 골목에 있다. 직원 네 명의 단출한 광고 대행사이니 사실상 자영업자나 다름없다. 그는 아직 스스로를 해고하지 못했다. 어느덧 육십 중반,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해야 할 일이다. 요즘은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일도 푹 줄었다. 사무실에서 빈둥거릴 바에야, 핑계 삼아 재택근무하는 게 속편

  • 김시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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