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의 하얀 척수가 뱀의 혀같이 나와서베란다에 핀 베고니아 꽃잎을야금야금 뜯어먹는다. 서녘을 향하던 해가 방향을 잃었는지긴 팔 뻗어와왜 그곳에 하릴없이 머물고 있느냐고 꾸짖는다. 삶을 사랑했으나수인(囚人)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눈흘김일 뿐,한여름 폭서 속에 어찌할 바 몰라서성대고 있는 거라고 짐짓 모르는 사연인 척,화분대에 눌어
- 김태연(부산)
뇌 속의 하얀 척수가 뱀의 혀같이 나와서베란다에 핀 베고니아 꽃잎을야금야금 뜯어먹는다. 서녘을 향하던 해가 방향을 잃었는지긴 팔 뻗어와왜 그곳에 하릴없이 머물고 있느냐고 꾸짖는다. 삶을 사랑했으나수인(囚人)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눈흘김일 뿐,한여름 폭서 속에 어찌할 바 몰라서성대고 있는 거라고 짐짓 모르는 사연인 척,화분대에 눌어
길고 무덥던 하늘 가슴이뜨겁게 쏟아내는 선혈에검은 구름 흩어진다 맑게 닦인 창 빨간 꽃잎이나를 들여다보다가 뭉클하게 가슴 연다 달려온 빗줄기는뜨거운 눈물로 맺혀떠나는 길에야 붉어지는 눈시울 자귀나무 실가지 틈에서 기다리는햇살 속 잎파랑이는갈색 옷을 급하게 갈아입는다 돌아올 날의 기약들빈 가지마다 걸린마지막 기차처럼 떠난다
높은 곳에서내려다보이는 한강은 하루종일 쫓던 해를석양 무렵에야 겨우 잡아 한입에 씹어 삼키고 빌딩에 걸려 있는 광고에서 펑펑 쏟아지는 맥주를실컷 받아 마신 뒤 술에 취해 길게 누워 있는해잡이 사냥꾼이다
긴 의식의 되뇌임 끝에서시간은 제 몸을 깎아 내일을 빚는다 풀숲 우거진 언덕 위버드나무 한 그루허공에 묶을 수 없는 그물을 늘어뜨리고 있다 햇살 속 개개비 울음이 스며들던 집그 마루에는아직도 식구들의 발자국이 묻어 있다 벗겨진 기둥은세월이 괴어든 지붕을 가까스로 버티고 갈라진 반자 틈에서적막의 각질이 바스러지듯 떨어져 나
숲길을 걷는 발걸음마다낙엽이 발길에 속삭이고바람은 나지막이 숨을 내쉰다 빛 한 줄기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면 마음속 깊은 곳,조용히 접어둔 기도가잎사귀처럼 피어오른다 작은 새의 울음,먼 산의 숨결모든 것이 고요 속에서내 안 깊은 고요를 밝혀준다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면숲의 침묵이나를 감싸안으며오늘 하루를 온전히 맡기게 한다
좋다네가 있어 좋다아침 눈을 뜨니곁에 있어준 네가 있어 좋다 동분서주 바쁜 시간툴툴 털고 문안의 발걸음반겨주는 네가 있어 좋다 두 손 맞잡고 나란히 누워 평안한 숨고르기 하는 네가 있어 참 좋다
하늘이 온통너네의 화지(畵紙)드냐이 큰 캔버스푸름 위에 농염칠 바람에 밀린 감성불평도 들춰내고온갖 형상 꾸미고서 내 상상 홀리구나 고개를 다시 드니 그 그림 지우고서 넌지시 하는 말 버릴 것은 버리라네.*음력 9월 가을 구름.
먼발치 어딘들…속마음 꿰뚫어기쁘고 즐거울 때 함께 웃고슬프고 서러울 때 같이 울으리 외로울 땐 말 없는 벗 되어쓸쓸함 나누고그리움 사무칠 땐사랑의 꿈 실어 바람에 나부끼리 문득문득 아련한 추억가슴 저리면 다독여 침잠하리 고뇌의 탄식 깊어지면무언의 눈빛으로 삭이리 밝은 빛 허리춤에 어스름… 별빛 고요한 영혼의 안식
덕풍천 징검다리 아래 피라미 떼아침햇살 먹어 은물결로 흐른다 유년 시절 서울 마포구 골목집에 살 때긴 언덕길을 지나면 검은색 기와집들이 다닥다닥나무도 꽃잔디도 없었다염리동 집 그날의 기억은 무채색이다 원예를 사랑하는 남편 덕분에집 안에 군자란 템파레 호접난이 웃고고무나무 관음죽 벤자민 이파리 윤기가 돈다 복스런 꽃들이 눈인사를 한
산전수전 역전의 용사훈장을 가슴에 단 노인들쭈그리고 앉아 햇볕 쬐고 있다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팔다리 뒤틀리고 만신창이 몸여기저기 숨 몰아쉬는 소리겨울이 깊어 간다 주소 잃어버린 방랑자들한데 모아 시름을 눕힌 합숙소 언제 빈손으로 떠날지 모르는 길 낡아서 서러운 세월 부자나 가난뱅이나잘난이와 못난이도울타리에 갇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