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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무의 눈물

여름이 길게 하품하던 날산그늘이 마을에 내려앉을 무렵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밭으로 갔다김장 배추와 무를 심는다며흙을 가르던 손길햇빛보다 뜨거웠다태양이 녹아버릴 것 같은 오후소 끌려가듯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첫서리 내리던 날땅속에서 하얗게 건져 올린 무그 속엔 아버지의 땀이 스며 있었다 토굴 속에서 겨울을 나며가족의

  • 조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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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정(情)·2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만면에 구김살 하나 없는 가만한 웃음은 달빛처럼 주위를 밝힌다 대학 졸업 60주년 행사에 팔십 중반의 노부부가 미국에서 머-언 길을 이렇게 찾아왔다 비는 끈질기게 퍼붓는데 저 부부의 얼굴에는 비 그칠 무렵 꽃이 내뿜는 젖은 향기가 떠나지 않는다 젊은이 둘이 계단을 내려주니 노년의 남편 L동기가 익숙하게 밀고 숲길을 나선다 빗속을 걸어

  • 심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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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모모

아주 가까운 곳에 오래된 간판이 있다오랫동안 방치한 듯건물 외벽에서 덜컹거리는 늙은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화분에서잡초가 피고 지기를 하였는지마른 풀잎과 약간의 꽃들이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멈춰버린 과거가오래된 이름으로 덜컹거리고새들은 삼삼오오 텅 빈 거리에서 독한 술을 먹고 있다 어둠과 허름한 점방 사이에우리의 도시는 지

  • 이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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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박물관은 살아 있다

고수동굴은켜켜이 쌓아온 건축물이다 트렁크처럼 입을 크게 벌린적요 속으로 들어간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포스트잇처럼옆새우 서식지도 보인다 햇빛 한 방울 없는 웅덩이에잠들어 있는 어둠의 발자국들 300℃ 넘는 화산 해저에서열수 분출공의 생명체들이내 심장에서 팔딱거린다 휘어지고 꺾이고 상처가 상처를 끌고 가는 투명한 기

  • 강명수(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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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입술 몽타주

입 밖 낯선 혀들을 꺼내기 위해입 속 낯익은 혀를 괴롭히며헝클어진 밤을 녹슨 흉기처럼 더듬거리는 너는 꺼져 가는 호흡에 켜진 조등 같고 시답잖은 꿈을 듣듯질질 끌리던 머리채마저 우발적인 익명으로 뭉뚱그리고 싶은 제복의 하품엔훼손된 적 없는 서사의 윤곽이 들리고 목격된 적 없는 어둠을 밀봉하듯합의된 아랫도리로 몰아가는 비실

  • 최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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