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반사되는 날은 햇빛 차단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나간다. 바닥이 양탄자처럼 푹신한 재질로 발끝에 닿는 느낌이 마치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 듯하다.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내 또래 여인과 세 마리 느린 ‘시추’의 모습이 다물어 있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날 향해 달려오는 노견의 모습에서 마치 ‘라미’인 듯 착시 현상이 일었다
- 이경선(청윤)
볕이 반사되는 날은 햇빛 차단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나간다. 바닥이 양탄자처럼 푹신한 재질로 발끝에 닿는 느낌이 마치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 듯하다.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내 또래 여인과 세 마리 느린 ‘시추’의 모습이 다물어 있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날 향해 달려오는 노견의 모습에서 마치 ‘라미’인 듯 착시 현상이 일었다
고등학생 때였으니 50년도 훨씬 전이었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라는 책을 제목에 끌려 단숨에 읽었지만 실망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여자는 일부종사(一夫從事)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혼을 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도 정을 주는 여자가 귀여운 여인이라고?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남러시아 아조프해 항구 타간로그에서 식료품 잡화상의
제주도! 설렌다. 첫 만남인 양 나를 반겨준다. 사르륵 사르륵 안개비가 내 얼굴을 감싸 안는다. 축축한 공기에 젖어서야 우산을 받쳐 들고 나무 계단을 오른다. 오후 4시, 내려오는 사람은 있는데 오르는 사람은 없다. 빼곡한 비자나무와 작살나무 숲. 삐죽한 화살촉을 내민 화살나무 숲을 구불구불 오른다.성산일출봉, 해발 180미터 안내판이 나타난다. 드디어 성
6월로 접어들자 산천초목이 온통 녹색으로 수놓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예정에 없이 갑자기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해서 순천 송광사의 템플스테이를 바로 예약했다. 그곳을 선택한 것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거주하셨던 불일암을 찾아 스님의 향수를 다시금 되새겨 보고 싶었다.수필집 『보석을 찾는 마음』에 수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며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은 다행히 소강 상태였다. 버스에서 내리며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내려놓는다.내 깐에는 지방에서 1박 2일 동안 열렸던 시상식 행사에 쫓아다니는 게 힘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가방도 풀지 못한 채 누워 버렸다. 수상자만 열댓 명이 넘는 시상식에서 사회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등단
미니버스는 가락시장역 3번 출구 쪽으로 머리를 튼다. 버스는 미끄러지듯 서서히 인도 쪽으로 바짝 붙여 정차한다. 문이 활짝 열렸다. 청소년인지 성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연령층의 남녀 십여 명이 주르르 내린다. “선영아, 안녕.”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들은 척만 척, 본 척만 척 빠른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역 안으로
사부작사부작 찰흙을 가지고 놀았다. 끈적끈적하면서 질척질척한 감촉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착한 흙이었다. 여섯 살 어느 해 방 안에만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찰흙이란 것을 주셨다. 찰흙은 어머니의 수제비 반죽 같았다. 밀가루를 반죽하는 어머니 옆에서 손가락으로 반죽을 꾹꾹 눌러 보는 것처럼 찰흙도 눌러지는 게 좋았다. 질척이지만 매끄러운
제주에서 한 달 보내기로 작정했던 것은 취업 때문이었다.정말 별 볼 일 없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려 했지만 복학할 등록금이 없었다. 몰락한 집안 형편에 도피적으로 군대를 갔지만 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저도 집안은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내 머리로나 체력으로나 나는 복학해 보았자 결코 공부로는 승부할 그릇이 못 되었다. 그래 취직이나 하자. 그러나
담장에 활짝 핀접시꽃은레이더 장치 ‘엄마, 사랑해요∼ 오빠, 보고 싶어요.’ 말하면 하늘나라 계시는그리운엄마 목소리 다정했던오빠 목소리 메아리쳐오는 듯하여 귀 기울여 본다.
이른 아침할아버지가 ‘에헴 에헴’ 문살 두드리면 ‘아버님, 어머님 잘 주무셨어요’엄마의 공손한 인사 ‘달가닥 달가닥’할머니 주방 두드리면 ‘오늘 미역국 어때요’ 엄마의 오늘 음식 온 집안 구수한 냄새 콧등 두드리면‘식사합시다’아빠의 힘찬 목소리 식탁에온 가족 한자리 모여 할아버지의 넉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