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늘예고 없이 찾아온다 오후 햇살이 가만히내려앉는 시간에도마당의 꽃잎이 흔들리는 모습에도 문득 네가 스며든다 호숫가를 천천히 걷다풋풋한 풀 내음을 맡으면너와 나란히 걷던 날들이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구름 사이로 번지는 붉은 빛에 괜스레 마음이 젖는다너도 어디선가이 노을빛을 보고 있겠지…
- 최상경
그리움은 늘예고 없이 찾아온다 오후 햇살이 가만히내려앉는 시간에도마당의 꽃잎이 흔들리는 모습에도 문득 네가 스며든다 호숫가를 천천히 걷다풋풋한 풀 내음을 맡으면너와 나란히 걷던 날들이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구름 사이로 번지는 붉은 빛에 괜스레 마음이 젖는다너도 어디선가이 노을빛을 보고 있겠지…
[경기도 동두천지부] 1.동두천의 유래조선 세조 때(1466년) 양주가 목(牧)으로 승격되면서 여러 면(面)이 정비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담면(伊淡面)이었다. 이담면은 현재 동두천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이었고 당시 중심 마을은 가정자리(柯亭子里)였다고 전해진다. 가정자는 조선 영조대 도승지를 지낸 이중경(李重庚)이 벼슬에서 물러나 현 동두
사람의 삶에는 유난히 오래 머무는 계절이 있다.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바래지지 않는 빛깔과 냄새, 그때의 공기와 체온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간. 내게는 1990년의 가을이 그렇다. 내 기억은 늘 코스모스 길에서 시작된다.분홍빛과 흰빛 코스모스가 바람 따라 한들거리던 증평의 작은 길, 나는 남편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방에는 소박한 점심 도시락
내 나이 아주 어려철 아직 나지 못했을 때 내 나이 조금씩 더해턱수염 까칠까칠해 올 때 내 나이 한참 들어고향 박차고 뛰쳐나올 때 한 장의 흑백사진에 그려진숨은 그림은 그대로의 명암(明暗)밖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숨어버렸지 내 나이 혼자는 어려워아내 얻어 같이 섞을 때 내 나이 이제는 부끄러워어린것
1누에는 제 몸을 뽑아껍질을 직조(織造)하지만사랑은 영혼을 뽑아진실을 가두는 慈善을 베푼다. 2내어주는 아량보다베풀어 받는 은혜(恩惠)의색깔 잃은 것을 그리워하기보다 아까와만 하는 그물에밀물이 썰물을 덮쳐네 마음 걸려 들어오고. 3바랐던 것, 실뿌리잎마디 숨소리까지보듬고 가꾸기를 원했던 것은 네가 나의 봉오리로여
신부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저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거울을 보고 또 보면서저의 미모에 자만하며 우쭐했습니다 제 교만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어떤 중년 부인이 고해성사를 했다 생각은 죄가 아니고 착각일 뿐이지요 혹간 착각을 죄로 착각하는 분도 있지요 자매님은 걱정 안 하셔도 되겠네요부인의 고해성사를 경청한 신부님은&nbs
내가 무슨 큰 죽을죄를 지었나요가해자를 들이받고 도주한 정당방위인데 가산 늘려주려고 아기 낳아 주었고요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온갖 힘든 논밭 쟁기질 혼자 다 하며한평생을 주군에 충성을 다 바쳤는데 나이 들어 기력이 좀 떨어졌다고돈벌이 아이도 낳을 수 없을 거라고형장으로 무작정 끌고 가, 토사구팽목숨 보전하기 위해 도주한 죄의
화재에 휩싸인 닭장에서수탉들은 다 빠져나갔는데병아리를 품속에 꼭 껴안은 채 어미닭만 까맣게 모두 타 죽었다 사람이나 동물나라에서도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말나직이 말하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물컹해지는 엄마, 어머니!
우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고 있다. 인생과 일상의 모든 사물을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시는 처음부터 쓸 수가 없다. 시는 내가 걸어온 인생길의 발자취이고 나의 삶 그 자체다. 시를 쓰며 여생을 일거리처럼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이기에 인생은 즐겁다. 철철 끓는 쇳물도
충남 홍성이 나의 고향이다.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신 곳과는 저울산을 경계로 한 이웃 동네다. 어렸을 때는 가끔 놀러도 다니고 눈으로 고택을 바라보며 자라나면서 두 애국지사에 대하여 자세히는 몰랐지만, 성숙해지면서 나도 두 어른처럼 양심에 불을 붙여 놓고 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였다.유년 시절은 주로 산과 들을 친구들과 뛰어다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