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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피고 지는 복사꽃

인왕산 치마바위에 올랐다. 주말이라 등산객 대부분이 MZ세대들이었다. 한양 도성 순성길을 따라 가파른 바위산을 힘겹게 오르니 정상에 달했다. 복사나무 한 그루가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채 호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2025년 4월 말, 20여 명의 산악회원은 수성동 계곡 소나무가 있는 입구에서 잠시 몸을 추슬렀다. 인왕산 동쪽 아래 있는 수성동 계곡은 예로부터

  • 차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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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혈혈무의(孑孑無依)의 가배일(嘉俳日)

가배일 연휴 첫날부터 가을비가 푸슬푸슬 내렸다. 깨어보니 야심한 1시경이었다. 전날 하다만 만문(漫文) 작업과 번역 작업을 쾌적하게 갈무리했다. 조식을 끝내고 모처럼 온양온천에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마음이 두근거리고 시원한 감동이 왔다. 전철 종점인 천안역에 내려 점심을 먹었다. 요즘 시니어 교통카드를 받은 후 여가선용이 달라졌다. 이 카드로

  • 박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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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비가 내린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 비가 내린다. 논바닥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모은다. 맑게 윤이 나는 빗방울을 손끝에 문질러 본다. 비 젖은 하늘과 바람을 마음에 들인다. 어려서는 부모님과 많은 형제 덕에 비 맞을 일이 적었다. 늘 마중 나온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가 비를 그을 수 있었다. 비 맞은 일이 적은 만큼 느닷없이 오는 비를 맞고 싶었다.비가 내리면 빗속을 거

  • 양미경(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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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진눈깨비 사설(辭說)

낮게 깔린 재색의 하늘가에 늘어선, 습기를 머금은 감은빛 구름들이 점점 응축의 강도가 세어지면서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여실하다. 툭 건드리면 지상으로 후드득 쏟아져 내릴 기세다. 창문을 세차게 뒤흔드는 바람의 강세도 심상치 않다. 폭풍전야다.드디어 진눈깨비가 몰아치며 헐벗은 나뭇가지 위로 우두둑우두둑 거칠게 내려앉았다. 오는 봄을 재촉하려는 듯, 가는 겨

  • 송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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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재미를 사는 재미

이집트에서 물건 사면서 게임하듯 흥정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비싸게 샀든지 덜 주고 샀든지 간에 흥정은 긴장감을 높이며 스릴을 맛보게 했다. 칸 엔칼릴리 재래시장 골목을 지나가면서 들리는 호객 행위가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웠다.솔직히 말해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장에 가서 보던 풍경이 되살아났다. 콩나물 한 줌 더 얻으려고 덤을 달라고 떼쓰던

  • 신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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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가족은 고니다

인간관계는 가까운 만큼 상처 주기 쉽고, 가까운 만큼 상처가 깊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감싸고 편드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누군가 가까이 있을 때 관심을 갖고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고 배려하면 행복은 더욱 가까이 찾아온다. ‘귀곡천계(貴鵠賤鷄)’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고니는 귀하게 여기고, 닭을 천하게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사

  • 박재만(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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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꽃에 깃든 나비

무료한 눈가에 생기를 돋게 하는 아이의 청량한 웃음소리.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창가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존재들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꽃이다.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모양의 꽃잎. 거기에 고유한 향기가 더해져 각각의 특별한 꽃이 된다.꽃은 눈길이 가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잠깐

  • 박용신(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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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어느 늙은이의 일상

노년의 하루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내일 같아 매일매일이 길고 무료하기만 한데, 해 질 무렵 돌이켜보면 어떻게 하루해가 지났는지 까마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느지막이 일어난다. 물론 중간에 자다 깨는 일이 잦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또 늦게 깨어나서도 바로 잠자리에

  •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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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암(癌)을 마주하며

지난 연말은 내 삶에 있어서 파노라마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며 들어올지 상상도 못했다. 삶이라는 것에는 늘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이 파도처럼 리듬을 타듯이 찾아오기는 한다. 나의 2025년 연말이 그랬다.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난 분명 롤러코스터를 타고 양쪽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고맙게도 2025년도 충북

  • 강대식(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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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절하는 소나무

<왕과 사는 남자> 영화 관객이 1,650만 명을 넘어섰다. 나도 지난 섣달그믐날 보았다. 『단종실록』의 활자가 아닌 엄흥도의 충절을 앞세운 영상으로 보니 단종의 슬픔이 더 절절히 느껴졌다. 실록은 왕위를 찬탈한 세조 대에 쓰여서 진정성이 부족한 탓이었을 게다.4년 전, 『단종실록』을 읽고 영월에 다녀왔다. 장릉에 들렀다가 청령포 앞에 서니 서강

  • 최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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