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두 덩이가 든 가방을 메고 논두렁길을 걷는다. 쌀밥 한 번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대를 건너온 나에게는 이보다 더 배부르고 흐뭇한 순간이 있을까. 한데 황금물결을 이루어야 할 들판이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잘라 놓은 시루떡처럼 반듯반듯한 논에는 벼 대신 잔디가 자란다. 마을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일손이 부족하고 쌀 수요도 점점 줄어 대체 작물로 잔디
- 허문정
떡 두 덩이가 든 가방을 메고 논두렁길을 걷는다. 쌀밥 한 번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대를 건너온 나에게는 이보다 더 배부르고 흐뭇한 순간이 있을까. 한데 황금물결을 이루어야 할 들판이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잘라 놓은 시루떡처럼 반듯반듯한 논에는 벼 대신 잔디가 자란다. 마을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일손이 부족하고 쌀 수요도 점점 줄어 대체 작물로 잔디
내 나이 종심이다. 불혹을 넘긴 자식들이 있어도 가끔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 되어 서글퍼진다. 고향 옛집을 지도 앱으로 찾아서 도시계획으로 바뀐 도로와 길목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아 헤맸다. 사라진 건물도 많은데 50년도 더 된 고향 이층집이 건재하고 그곳 아래층은 약국과 약재상이 들어서 있다. 앞집은 일본 양
잿빛 구름이 드리운 11월. 목화밭으로 향한다. 가을걷이도 마무리된 들녘을 바라본다. 읍내 쪽으로 뻗어 나간 길 끝을 보며 땅바닥에 퍼져 앉았다. 설움이 목구멍을 타 넘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절규로 변했다. 언니야! 언니야! 그 절규가 허공이 삼켜 버렸다.불과 몇 시간 전 언니는 빨강 치마 노랑 저고리를 입고 할아버지를 대동하고 울며 차에 올라 시집을 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하고 섬세한 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세상을 주도해 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손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타인과 악수를 나눌 때 우리는 손의 촉감으로 상대방과 교감을 느끼고 관계를 형성한다. 손은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가장 직접적
해마다 10월이면 우리 기타반은 연주회를 연다. 우리 동네 문화센터 기타반원에다 여타 지역 센터에서 기타를 배우는 이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다.올해는 이천의 한적한 마을 어느 교회 앞 작은 공터 가설무대에서 열었다. 예년에는 실내에서 하더니 올해는 마땅한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청중은 연주자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이었고 어쩌다 교인들도 간혹 보이기도 했
살면서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길을 선택함에는 늘 희비가 엇갈렸다. 어릴 적엔 논밭두렁 멋대로 구부러진 길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고모댁에서 중학교 다닐 때부터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시내의 길과 집들은 모두 낯설지만, 신기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 부모님은 왜 힘든 농사일만 하고 시내에 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퇴 선물로 자전거 선물을 받았다. 나는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몰랐다. 남편은 장안공원이나 수원종합운동장 주차장 주변에서 자전거 강사가 되어 잡아주고 밀어주곤 했다. 내가 조금씩 자전거를 타게 되자 함박웃음으로 좋아했다. 아이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흐뭇해하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환갑이 넘은 부부의 자전거 연습은 한 달이 가기 전에 혼
어머니는 늘 쉼 없이 움직이셨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얼 그리 하시는지 그 모습을 하나하나 뚜렷이 떠올릴 수 있으며, 특히 웃음 짓는 표정에서 눈물 글썽이던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아련하게나마 되새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나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깊은 밤 목욕재계하고 하얀 대접에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두
호주제가 폐지된 지도 한참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 이 사안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본다. 나는 아직도 이에 해당하는 문제에 연루된 게 없어 잘, 잘못 되어 가는지에 민감하지 못하다.예부터 우리나라는 불교와 유교 문화를 이어 오면서 남존여비 사상으로 씨족이 형성되어 이어져 왔다. 성(姓)을 하사받고 시조(始祖)가 정해지면 그 성씨를 중심으로 가계(家系)
따뜻한 녹차를 숨 깊숙이 들이마신다.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몸으로 들어가자 더위도 식고 몸이 열린다. 장마가 끝나고 습한 더위로 가마솥처럼 달궈졌던 나는, 더위가 먼 과거의 일이었던 것처럼 마냥 편하게 하릴없이 부드럽고 따듯한 차를 즐겼다.절 주인은 꽃처럼 지긋한 미소와 꽉 찬 정성으로 차를 만들어 찻잔이 비면 따라주기를 반복한다. 나는 차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