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집앞뒤 잔디결 위에노랑 눈을 단 진초록 이방인화마의 구름을 지나왔는지 청보리처럼 일어나주인보다 깊이 내려간 뿌리초원의 방향을 기억한다 손길이 오래 머물지 않는 자리 흙은 말없이 결을 묶고어둠에서 단단한 맥 하나 이어진다 바람이 마른 계절에도지워진 자리 끝에서망설이는 손끝 아래끝내 올라오는 것은시간이 물고 있던
- 구재창
살고 있는 집앞뒤 잔디결 위에노랑 눈을 단 진초록 이방인화마의 구름을 지나왔는지 청보리처럼 일어나주인보다 깊이 내려간 뿌리초원의 방향을 기억한다 손길이 오래 머물지 않는 자리 흙은 말없이 결을 묶고어둠에서 단단한 맥 하나 이어진다 바람이 마른 계절에도지워진 자리 끝에서망설이는 손끝 아래끝내 올라오는 것은시간이 물고 있던
호젓한 길섶 너머홀로 핀 작은 들꽃 불러보고 싶어도 이름 모를 꽃이기에 아련히먼 그리움의너의 이름 불러본다.
생과 사에서 찰나로 휩쓴 검은 화마여 어쩌자고 안 태 고향 태마저 다 태우는가 갈라산 안동 시내로 날아다닌 불기둥 긴박한 대피 문자와 매케한 검은 연기에 정신줄 잃은 통장과 여권만 챙겨 들고 목숨만 가방에 담아 피난길에 오른 몸 딸네 집 나흘간 머물다 돌아온 행적에 한 줌 검불 앞의 나약한 인간
애닳다돌아보기 아쉬움여전하오 표연히떠나오니 그 마음알으소서 한없는안타까움에미어지는 인연이오.
유리로 세운 하늘, 빛은 위로 쌓이고별 대신 켜진 창들 서로 얼굴 덮을 때별 찾다 멈춘 그 자리 바닥에 눕는 사람 내려갈 층이 없는 버튼 없는 승강기누구의 등을 딛고 위로만 오르는가?마천루 유리창 밖엔 떠밀려간 사람들 빌딩 안은 사람 온기, 뼈를 에는 바깥 공기 신문지 한 장 무게 바람에도 뒤척일 때 욕망의 도장 찍혀서
“오늘 김형기 군과 서연화 양을 부른 것은 국문학 교수로서 할 말이 있어서일세.”형기와 연화는 연구실도 아닌 사범대학 건물 뜰 앞 널따란 바위로 영문도 모르게 불려 나왔다. 형기는 연화에 대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감정으로 김 교수가 주선한 뜻밖의 만남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태연해야만 한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숨겨진 마음을 들켜서는 안 된다’
가을이 가까워진 새벽, 안개가 산자락 아래 얕게 깔리고 있었다. 바다가 가까운 둔덕 위, 쪽밭과 살림집을 품은 공방은 희미한 윤곽만 드러내고 있었다. 실바람에 쪽대가 길게 흔들렸다.안개 속에서 정아는 쪽잎 사이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쪽의 밑동을 움켜쥐고 낫을 그었다. 연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마다 벤 쪽이 가지런히
1남자의 오토바이는 빗물이 차오르는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달렸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4차선 도로는 텅 비어 있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배달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자는 헬맷을 쓴 머리를 단호하게 저어댔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남자는 굵은 빗줄기가
내가 처음 소개팅을 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부부가 맺어지는 것이 얼마나 엉뚱하게 시작되는지 전혀 짐작도 못했는데 진짜 결혼을 해버렸다. 모든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알게 모르게 얽혀 있다. 각자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삶으로 돌아와 그때 그런 일이 생겼고 그런 것들이 모여 또 다른 일이 일어나면서 인생길을 수놓기도 하고 아프
나주 송정리 장이 서는 날이다. 송정장은 오일장으로, 사흘 있으면 설이니, 이른바 그믐장이다. 아침부터 장터 입구에는, 트럭에서 내리는 상인들로 북적였다.영광통 앞으로, 시내 중심가 도로 안쪽을 따라 상인들의 차량이 늘어서고, 인도에 펼쳐진 좌판에는 채소와 생선, 과일이 가득했다.새벽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장터는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이런 날을 두고 여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