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서동처(猫鼠同處)는 본디 ‘고양이(猫)와 쥐(鼠)가 같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원래 고양이는 쥐를 잡는 게 자연이 맡긴 역할이고 천적 관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오월동주(吳越同舟)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부정한 결탁을 방지하고 감시해야 할 존재들까지 한통속이 된다면 세상에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 인간 세상 또한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만일 우
- 한판암
묘서동처(猫鼠同處)는 본디 ‘고양이(猫)와 쥐(鼠)가 같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원래 고양이는 쥐를 잡는 게 자연이 맡긴 역할이고 천적 관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오월동주(吳越同舟)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부정한 결탁을 방지하고 감시해야 할 존재들까지 한통속이 된다면 세상에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 인간 세상 또한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만일 우
문을 열자, 고개를 5도가량 기울인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좌반구와 우반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어쩔 수 없는 것처럼 고개를 삐뚤하게 한 채로 잔뜩 찡그리고 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얼굴 근육을 모두 활용하여 표정을 일그러뜨림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아직도 세상으로 나올 준비가 안 되었나 보다. 행여나 호랑이가 동
오늘 서재에서 20년이 된 낡은 종이에 그려진 젊은 날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다. 몇 번의 이사로 방치해 두다시피한 40대 초반 나를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을 보노라니 그리움이 아련히 떠오른다. 20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한창 삶이라는 빠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한 30대의 젊은 청년이 한 장의 종이에 남겼고, 그 붓끝마다 그의
“약만 타서 올 거야! 식사는 갔다 와서 하자. 배고프면 과일 한 조각 먹든지….”남편이 집 근처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현관을 나서면서 한 말이다. 이게 뭐지. 그날은 그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깊고 단단한 마음이 깃든 듯 들렸다. 사랑은 커다란 고백이나 거창한 선물 속에 있지 않은 것처럼, 기댈 수 있는 믿음과 신뢰가 담겼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
가을빛을 머금은 찬란한 햇살이 창가를 스치며 천천히 강의실을 물들인다. 정돈된 책상과 의자 위로 금빛 빛줄기가 길게 드리워지고, 아직은 텅 빈 공간에는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다. 햇살을 따라 창가를 부유하는 먼지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후의 이 정적은 곧 시작될 무언가를 기다리는 풍경이다.이윽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침묵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달아오른 그들의 눈빛은 한 곳을 향했다. 다농관 다뤼 회랑으로 향하는 계단 최정상에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이 서 있었다. 조각상 주변은 사람들로 혼잡했다. 곳곳에서 낯선 이와 부딪치고 동선이 엉켰다. 그러나 그만한 접촉은 대수롭지 않은 듯 지나쳤다. 당당히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진하듯 서
환자 셋은 하늘로 치솟고 싶어 하는 한 묶음의 풍선 같았다. 그들은 조금 전부터 취중에 오가는 말이 들뜨기 시작하더니, 오늘 퇴원한 서씨 아저씨가 두 손을 펴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으면서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70대 중반의 애칭이 ‘큰형님’은 바로 손뼉 속도에 맞는 흘러간 노래를 뽑았다.“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신입 환자 강씨는 멀뚱하게 앉
“아이고, 오늘도 안 피네!”“꽃잎이 조금 더 벌어졌나요?”“아니, 그대론데.”아내 성주가 몹시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조금도 변화가 없나요?”건우가 물었다.“어제 그대론데…. 야, 너 이름 바꿔야겠다.”“뭐라고 바꿔?”“약백합이라고 이름을 바꿀 거야.”“약백합? 약초는 아닌데….”“약초 말고, 꽃은 안 피고 사람 약만 올리는 백합.”&n
가끔 집 가까이 있는 병영성에 간다.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병마절도사 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으로 경상좌도 병마절제사 영이 이설되었다고 한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 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 우병영 성과 일시 합치되었고,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 병
51:49 단지 숫자 쌍일 뿐이다. 100이라는 완전한 수를 반으로 나눈 50을 기준으로, 하나는 1을 더 가졌고 하나는 1을 덜 가졌다. 수학적으로는 미미한 차이지만, 인간사에서는 세상을 나누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1이라는 작은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좌절이 된다.노조 일을 하며 이런 조합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결정을 앞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