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가 느긋하게 내려온다. 어느덧 바람이 바뀌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꽃샘바람이다. 그야말로 봄바람이다.바람치고는 이놈의 봄바람이 조금 묘하다.괜히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다.따지고 보면 봄과 바람은 엄연히 다른 의미의 명사다.그러나 이걸 붙여서 합성어를 만들어 놓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사실 우리말에 바람이 들어가면 왠지 부정
- 이자야
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가 느긋하게 내려온다. 어느덧 바람이 바뀌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꽃샘바람이다. 그야말로 봄바람이다.바람치고는 이놈의 봄바람이 조금 묘하다.괜히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다.따지고 보면 봄과 바람은 엄연히 다른 의미의 명사다.그러나 이걸 붙여서 합성어를 만들어 놓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사실 우리말에 바람이 들어가면 왠지 부정
관세음보살님 정말 다 보고 계시는지요.이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다 보고 계시는지요.세상 사람들이 정말‘그렇게까지’해야 하는 까닭을 다 보아 알고 계시는지요.얼마나 고고한 마루에 오르려기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그 눈물을 다 보아서 아시는지요.정말로 세음(世音)을 관(觀)하셨는지요.답답하다.정말 답답하다.답답한 내 안을 드러내 보일 수 없어서 답
산천의 나뭇잎들이 연초록으로 봄의 기운이 완연한 이때 서울에서 막내 동서 내외가 승용차로 왔다.올해 농사 준비를 돕고,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구경하고 싶어도 못 가던 고창 청보리 축제장을 같이 가자고 해 아침을 일찍 먹고 그곳을 향하여 세 시간여 운행하여 도착하였다.우리가 너무나 일찍 도착한 데다 주요 행사가 없는 날이어서인지 관람객이 별로 없다.그
오늘 저녁, 할머니의 파제(罷祭)와 함께 헤어져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일 년에 단 한 번이지만 지팡이를 통해 할머니의 숨결과 함께 어렸을 적 베풀어 주셨던 따뜻한 마음이며 손길을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젠 이마저 맘매로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착잡하기 그지없다.사실 할머니 제사 주제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참사(參祀)한 가족들은 모두 한마디씩 구시
내일모레 추석 명절에 귀성전쟁이 시작된다고/ 작은 나라가 들썩들썩이는데/ 우린 결혼 10년 만에/ 참으로 한가로운 추석을 맞는가 보다// 경상도 의성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서울 가까이 사는 두 아들들/ 해마다 겪는 귀성길 초죽음에/ 우리가 올라갈란다 선처하시고// (중략)// 들이며 산들이 묵묵히 내어 놓은 터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신도시 큰아들네로/ 시
하릴없이 빈둥댄다. 그마저 따분하다. 동네 한 바퀴 돌듯 인터넷 마을에 접속한다. 유장한 강물의 물빛과 쏟아지는 달빛이 내 손길을 잡아챈다. 무심히 클릭한다. 잡념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부랑자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가난해도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아무르강을 건너며 벼랑길을 걷는 사람들.그들은 가족의 주검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면서도 결코
걷기가 건강에 도움 되는 것이야 익히 안다.일본 저명 의사의 저서『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도 읽어 보았다.살아온 햇수가 시렁에 올려놓은 이불처럼 수북하게 쌓이면서 알던 사람도 시나브로 멀어지고 가끔씩 주고받던 소식도 뜸해진다.시간이 남아돌아 시작한 걷기가 이태나 된다.일주일에 서너 번 꼴로 걷기 운동을 하는데 거리를 따져 하루에 3킬로미터 남짓
깊어 가는 가을, 코발트 빛으로 투명해진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이따금 그려진다.눈썹이 참숯처럼 짙고 눈동자가 가을 별빛같이 맑았던 H선생님의 모습이.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육 학년 시절의 담임이었다.다섯 자 오 푼이 될까 말까 한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소년티가 풍기는 때 묻지 않은 얼굴 모습, 그리고 은방울처럼 낭랑한 목소리를 지닌 분이셨다.선생님은 틈
밤길을 걷다 보면 고요한 밤하늘은 달이 흰 구름과 숨바꼭질을 한다.달이 숨는 것인지,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이 밤 희끄무레한 달빛은 오늘따라 어릴 때 고향에서 바라보던 하현달 생각이 난다.뒷마당 울타리에 서 있던 높은 참죽나무에 달이 걸려 있던 겨울밤은 너무도 쓸쓸하였다.깜박이는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고 있을 때면, 윗방에선 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충청도 부여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어언 반세기나 지났다. 지금도 어렴풋이 고향의 강물은 동심으로 흐른다. 둥구나무와 시골길이 아득하여 소풍날처럼 설렌다. 나의 시심은 늘상 그렇게 고샅길을 지나 도시의 신작로에 닿았다.이처럼 내 작은 문학의 언저리는 맨먼저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동심의 울 안에서 움을 틔운 새싹들의 떨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