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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용장사, 김시습을 보다

1그림자 길게 누운 벼랑 위 천년 돌탑낭랑한 염불 소리 이끼처럼 잠든 터에매월당 고독을 담은 비를 세워 합장한다 마애불 흐린 미소 시대의 통점일까닦아낸 눈물 자국 하루 더해 깊어가던용장골 묵상을 풀어 아린 사연 듣는다 2속세의 이름 접고 서른하나 설잠(雪岑)으로선비옷 훌훌 벗고 금오산 움막지어검은 옷 한 벌로 꾸민 세상 외려 넓었다&nbs

  • 이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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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행운 찾기

K시에서 기차를 탔다. 나는 오후 2시쯤 S대역에서 내려 20미터쯤 걸었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도를 건넜다. 봄꽃이 만발한 유치원이 보이고 코너를 막 돌아서 영지가 설명해 준 대로 어느 초밥집 앞으로 몇 걸음을 더 걸었다. 깔끔한 4층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긴장한 탓일까 미세한 두통이 일어났다. 건물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습

  • 이윤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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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실시리

오늘도 터미널은 저마다 시간 속을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누군가는 크고 허름한 가방을 또 누구는 앙증스런 가방을 손에 든 채, 출발과 정착이 엇갈리는 생의 이면(裏面)을 가슴에 안고 왔다 갔다 서성대고 있었다.막 출발하려는 버스 앞으로 검버섯 덮인 추레한 노인이 휘청휘청 걸어온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

  • 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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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너무 늦지 않았을까

1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퀘퀘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잇몸에 염증이 들었나?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코에 대보았다. 칠십이 넘으니 몸에서 냄새가 날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입 안에서 나는 냄새도 아니다.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다가 기어코 잠이 깨어버렸다. 새벽 세 시밖에 되지 않았다. 뻗어 나가는 상상력을 막기 위해 두리번거

  • 김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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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오사카 투표 참관인

돌연변이 재회나 만남을 더욱 기대했지만 그것은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민우는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기회가 있었는데도 민우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찾아왔었는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가령 화장실에 잠깐 갔다 온 사이나 아니면 이렇게 점심 먹으러 나왔을 때에 그러한 기회가 있었을는지 모른다.‘이쿠노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 김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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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별의 순간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내 어린 시절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때. 그래도 부모는 자식 하나만은 번듯하게 키워 보고 싶어 했다. 별 따기처럼 어려운 ‘사’자든 사람 만드는 것이 꿈이 되고, 시험 한방 통과하면 세상이 부러워하는 판검사가 되던 시절이었다. 전공 불문 너도나도 고시를 보고, 합격자의 이름을 쓴 현수막이

  • 안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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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의지의 꽃대

서늘한 공기 속에서 계절도 옷을 갈아입는다. 흰빛과 분홍빛이 어우러진 호접란 한 송이, 햇빛을 머금은 그 자태는 마치 한 마리 나비가 조용히 내려앉은 듯, 고요 속에 생명을 품고 있었다.호접란을 선물 받던 날이 떠오른다. ‘행복이 오래 머무는 꽃’이라는 꽃말과 함께 건네받았던 화분. 그때는 몰랐다.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켜준 ‘의지의 꽃대’가 내 마음을

  • 박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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