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 나팔꽃을 보았다. 올림픽공원 철제 울타리에 처연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붉은 자줏빛 꽃잎이 물먹은 휴지처럼 파란 잎에 매달려 있다니. 잎사귀 겨드랑이에 조롱조롱 매달린 반쯤 핀 봉오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 꽃을 피우지 못하면 그대로 시들어 버리게 된다. 애타게 기다리던 하루가 빗물에 녹아 버린다.나팔꽃은 저녁에 오므려졌다가 다음 날 다시
- 김일춘
비가 오는 날 나팔꽃을 보았다. 올림픽공원 철제 울타리에 처연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붉은 자줏빛 꽃잎이 물먹은 휴지처럼 파란 잎에 매달려 있다니. 잎사귀 겨드랑이에 조롱조롱 매달린 반쯤 핀 봉오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 꽃을 피우지 못하면 그대로 시들어 버리게 된다. 애타게 기다리던 하루가 빗물에 녹아 버린다.나팔꽃은 저녁에 오므려졌다가 다음 날 다시
워커를 잡고 집 밖으로 나갔다. 사고가 난 지 8개월 만이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고가 난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작년 초여름 세상이 온통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을 때였다. 시립도서관에서 열린 척수협회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가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음을 떼놓은 순간이었다. 행사 도중 노래를 부를 때 비눗방울을 날
방동리 여락서재(餘樂書齋)에도 가을빛이 완연하다. 깎고 돌아서면 곧 무성해져 서재 지기를 지치게 했던 잔디도 누렇게 변했다. 백일홍을 제외한 화단의 꽃들도 시들었다. 꽃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닥까지 늘어졌던 흰 수국은 제 색깔을 잃어 가고, 대신 울타리 철망을 덮은 장미가 새로 난 가지에 듬성듬성 작은 꽃송이를 매단 채 가는 계절이 아쉬운 듯 바람에 몸을
항공사 직원들에게 1년에 한 번씩 주어지는 왕복 무료 항공 탑승권, 이름하여 FREE SUBLO TICKET.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주위에서도 모두 부러워한다. 이 멋쟁이 선물을 나대로 뜻깊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항공사 직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효도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나에게 이 선물은 참으로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둬주길 바란다. 나는 어디서건 살아남을 테니까. 학교 기숙사를 신축하느라 내가 파헤쳐진다는 소문이 있다더군. 그래서 날 걱정한다는 걸 안다.설혹 둥치가 잘리고 뿌리가 파헤쳐진들 어떤가. 열매와 잎은 약재로 쓰임이 있겠지. 가장이는 바둑판이 되어 어느 심심한 아비의 벗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널빤지로 잘려
요즘은 종일 잠을 잔다. 형과 누나가 들어오면 잠시 애교 좀 떨어주어 간식을 받아먹고는 산책하러 나갈 시간을 기다리며 다시 가물가물 꿈속으로 들어간다.형과 누나가 결혼하면서 시골에 사는 집사의 곁을 떠나 내가 서울로 온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형과 누나가 결혼했다고 해서 근친혼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형과 누나는 성씨 자체가 달라 혼인에 아무런 제약이 없
시간의 여신이 자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을 때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 짙은 어둠을 뚫고 버스는 달려 내가 사는 도시에 내려놓고 바람처럼 다시 어둠 속으로 달려가 버렸다. 검은 입 속으로 사라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나는 한동안 차가운 바람이 부는 황량한 밤거리에 혼자 서 있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거리에 혼자 서 있으니 꾹꾹 눌러 가슴에 묻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새벽, 하늘엔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고요한 하루의 시작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파트 앞 황톳길은 벌써 맨발로 걷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들 사이로 나는 경보하듯 빠르게 걸었다. 수영, 이 작은 시작이 오늘을 조금 더 다르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수영을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고향을 한 번 생각해 본다. 고향을 떠난 지 어연 50년. 그러다 보니 내가 태어난 고향보다 현재 살고 있는 곳(서울)에서 더 많이 거주하면서 지방에 내려갔다가 서울에 오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한 마음이 든다.고향을 떠난 1970년대엔 고향이라는 주요 노랫가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때는 산업시대의 시작으로
만나고 헤어짐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헤어짐은 늘 익숙하지 않다. 정들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못 보게 되어도 아쉽고 허전한데, 하물며 가까운 사람이 다시는 볼 수 없는 생의 반대편으로 떠나간다면 그 이별은 슬픔이 겹겹이 쌓인 고통임을 말해 무엇할까.새해가 되어 시댁에 인사하러 갔다 작은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얘기를 듣고 시댁에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