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연혁우리 (사)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지회(이하 ‘대전문인협회’)는 1962년에 (사)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로 창립되었다. 1989년 1월에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사)한국문인협회 대전직할시지부로 되면서 충남문인협회와 분리되었다. 1995년에 직할시가 광역시로 명칭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대전문인협회의 발전을 위해
- 원준연대전광역시지회장
1.연혁우리 (사)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지회(이하 ‘대전문인협회’)는 1962년에 (사)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로 창립되었다. 1989년 1월에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사)한국문인협회 대전직할시지부로 되면서 충남문인협회와 분리되었다. 1995년에 직할시가 광역시로 명칭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대전문인협회의 발전을 위해
내 삶에 있어 문학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깨달음에 자아를 찾아가는 순수 정화 그 자체였다. 지나간 30대 후반쯤 젊은 날들을 병마와 맞서야 하는 홀로의 시간이 있었다. 십여 년 이상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라 생각하며 그 말에 아무 불만 없이 만족하게 살아오던 중 의외의 작은 병치레에서 새로운 큰 병을 만나게 되었다.
1“말씀하세요. 여기는 119입니다. 여보세요!”전화를 걸어 놓고 우는 소리에 놀라서 당황한 119 접수대원이 다급히 물었다.“우리 엄마가 없어졌어요. 흑흑.”“그곳이 어딥니까?”“여기는….”접수대원은 아이가 알려주는 위치를 받아 적었다.“알았어요. 바로 출동할 테니 울지 말고 기다려요.”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반장님, 그곳은 깊은 산
나의 문학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나는 늘 아버지가 그리웠다. 꿈 많은 소년으로 자라면서 아버지를 한 번만이라도 불러보고 싶었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만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어려웠지만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로 힘들게 번 돈으로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20리 길
나는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포리 737번지에서 아버지 홍건표, 어머니 황필봉의 2대 독자로 태어났다.아버지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일본군에 징병으로 끌려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화병으로 피를 토하며 돌아가셨고, 집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두 명의 청상과부뿐이었다. 그때 나는 한 달도 안 된 핏덩이 갓난아기였다. 스물한 살의 꽃다운
2025년은 광복 80년이자 민족 시인 윤동주 순절 80년이다. 윤동주 시인 80주기를 맞아 연세대 윤동주 기념관에서 추모식과 전시회, 학술 포럼을 개최했다. 일본의 경우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2월 16일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였으며, 릿쿄(立敎) 대학에서는 교정에 기념비를 세워 10월 11일 제막식을 가졌다. 동시에 윤동주 시인이 릿쿄 대학에
볼록볼록.불룩불룩.하얗고 둥근 구름 한편에 무언가 손톱만 한 움직임이 들쑥날쑥거리고 있습니다. 위로 봉긋, 다시 아래로 움푹. 그러다 희미하게, 규칙적인 한 소리가 들려옵니다.“핫둘, 핫둘!”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그맣고 동그란 한 녀석이 열심히 앞구르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좋은 아침! 근데 좀처럼 이쪽에서 못 보던 분이시네요?” 근사하게
내가 왜? 어떻다고?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뿐인데, 친구들은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나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면 되니까. 나는 혼자서도 잘 노니까.선생님은 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인사 하나는 잘한다며 ‘인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내 꿈은 유튜버가 되는 것이다. 친구
[기획연재] 수필 창작과 이론12 우리는 더러 어떤 훌륭한 소설이나 시, 또는 수필 등과 같은 글을 읽게 되면 ‘나도 저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없을까, 나도 이 작가처럼 훌륭한 작가가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 줄 수 있는, 그런 멋지고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을까’ 또는 ‘나도 수필가가 되어 정말 멋지고 수필다운 수필을 써 보았으면…’ 하고
등장인물_ 우진|미려|수정|능구때_ 현대 곳_ 어느 산속무대_ 울창한 숲 가운데 꽤 넓은 네모진 공간 ‘영혼의 정원’. 이곳은 전에 마을 사람들이 다툼이 있을 때 와서 화해를 하던 곳이다. 근자에는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아 칡넝쿨 얽서리로 뒤덮여 있던 것을 걷어내고 ‘영적 친족 4인회’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3시 임간 피정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