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성찰, 존재론적 자각 늦가을 햇볕 따가운 날노랗게 변색된 나뭇잎 한 장이내 앞에 걸어간다저 나뭇잎이 얼마나 오랫동안나무의 한 가족이었는지 나는 모른다저 나뭇잎도 지금 자신을 뒤따라가고 있는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내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는오직 당신만이 아실 터그러니 아무리 삶이 메말라 가는 세상이래
- 한상훈
1. 삶의 성찰, 존재론적 자각 늦가을 햇볕 따가운 날노랗게 변색된 나뭇잎 한 장이내 앞에 걸어간다저 나뭇잎이 얼마나 오랫동안나무의 한 가족이었는지 나는 모른다저 나뭇잎도 지금 자신을 뒤따라가고 있는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내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는오직 당신만이 아실 터그러니 아무리 삶이 메말라 가는 세상이래
오늘 아침 라면 냄새에 눈을 떴다. 벽을 뚫고 내 일상에 사전 동의 없이 침투해 오는 감각의 폭력, 프리미엄 오피스텔이라더니 옆집의 온갖 음식 냄새가 코앞까지 풍겨온다. 이 작은 공간에서조차 나의 권리를 온전히 지킬 수 없나 보다. 나는 박윤정이다.특수유치원의 교사.눈뜨자마자 의원면직을 고민하는 사람.사명감? 개나 주세요.그건 인력과 자원의 부족을
살구를 손바닥 위에 올려 귀를 기울이면, 계절의 숨소리가 천천히 맴돈다. 껍질의 가느다란 솜털은 잘 보이지 않아도 손끝은 알아차린다. 솜털을 따라 손가락으로 살짝 더듬으면, 그 위를 흐르는 햇살의 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보드라운 촉감은 벼가 익을 무렵 들판을 스치는 바람처럼 조용하다.살구의 색은 황톳빛을 중심으로 점점 연하게 가장자리를 향해 번진다. 햇살이
바다가 보고 싶다는 내 말에 남편은 영흥도로 차를 몰았다. 비린내가 퍼지는 선착장을 지나 산 넘어 해안가 쪽으로 접어드니, 처음 보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십리포 해수욕장이었다.울컥울컥 토해내던 해풍은 잠이 들었는지 아기 같은 숨을 고르고 있었지만, 벼랑에 남은 뚜렷한 흔적은 파도의 그악스러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산책길 늙은 소사나무 아래 임승훈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의 어느 날 오후,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던 중이었다. 7층 계단참을 막 디디려던 순간, 발밑에 흑갈색의 곤충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다리를 들자, 몸이 휘청하며 소름이 돋았다. 하마터면 내 발에 밟혀 압사할 뻔한 곤충의 처참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방비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는 건 사슴벌레였다.산이나 풀숲에서 겨우
어머님을 모시고 한의원에 왔다. 오래된 듯 삐걱대며 소리를 내는 낡은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접수를 받아 주는 직원 뒤로 벽면 가득 누렇게 바랜 종이 묶음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 한의원을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지 싶다.어머님이 이 한의원에 드나든 지도 어언 오십 년은 넘었다지. 혼사를 치르고 몇 해가 지나도록 애가 생기지 않아 다니기 시작했다는 한의원
오만원권 지폐 이미지는 신사임당이다. 마트에서 신사임당 그림이 에어컨 바람에 걸어간다. 느릿느릿 가다가 빨리 도망간다. 앗! 돈이다. 눈이 확 떠지며, 갑자기 주울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마네킹 셋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며 안 본 듯이 외면한다.신사임당이 말씀하신다.“너, 나를 빨리 잡아라! 쓰레기통에 들어가면 나란 가치가 없어진
새벽부터 텃밭에 나가 주저앉아 엉덩이로 밭을 뭉개고 다닌다. 밭을 엉덩이로 매는 건지 호미로 매는 것인지…. 자고 나면 잡풀이 쑥쑥 자라기 때문에 그 풀을 뽑아 주려고 꼬질꼬질한 목장갑을 끼고 챙 달린 모자를 쓰고 그렇게 하루 일을 시작한다. 텃밭은 있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무릎마저 수술하여 지팡이 짚고 겨우 걷는다. 자
어느 집 담장 밖으로 뻗어 나온 감나무 가지에 눈길이 머물렀다. 윤이 나는 잎사귀 사이로 동글동글 풋감이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감나무라면 가을볕에 발갛게 불 밝히듯 익어가는 풍경이 먼저일 테지만 어려서부터 늘 보고 자라서인지 풋감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은 내게 친근한 풍경이다. 잠시 눈 맞추는 사이 감나무의 사계절이 스쳐 갔다.고향 집 뒤꼍에는 두 그루의
동양인인 나는 지구인이다. 그러므로 평등할 권리가 있다. 미국에서 흑인 봉제사 파크스(Rosa Parks)는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는 요구를 단호하게 “No!” 하고 거부했다. 불평등을 마다한 이 언동으로 그녀는 14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1955년의 일이다. 5년 뒤, 흑인 목사 킹(Martin Ruther King)은 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