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낭독한 ‘백주년 기념 축하글’ 안에 나의 십 년도 함께 담겨 있다는 걸 그들은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그곳에 속한 사람도 아닌 내가 왜 꼭 그 글을 낭독하고자 했는지 말이에요. 경상북도에 세워진 첫 성당으로 지금은 본당 건물과 사제관이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가실 성당에 처음 간 건 십 년 전 아들과 함께였어요.그 무렵 아들은 왜관 수도원 선물방에서 일
- 이정원
그날 낭독한 ‘백주년 기념 축하글’ 안에 나의 십 년도 함께 담겨 있다는 걸 그들은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그곳에 속한 사람도 아닌 내가 왜 꼭 그 글을 낭독하고자 했는지 말이에요. 경상북도에 세워진 첫 성당으로 지금은 본당 건물과 사제관이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가실 성당에 처음 간 건 십 년 전 아들과 함께였어요.그 무렵 아들은 왜관 수도원 선물방에서 일
아직 매운 바람이 보도 위로 구른다. 정월 대보름을 눈앞에 둔 뒷산에는 연 띄우는 아이들의 손재주 자랑에 시끄럽다. 그 소리에 선잠이 깨어 하품을 하니 오장육부의 뼈 마디마디가 잘근잘근거린다. 삼동(三冬)을 앓는 체질 탓일까. 나른히 저려 오는 피로함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찢어진 문틈으로 반사되는 햇살이 케케한 먼지를 날리고 있다.그 초점에 어리는 달력
나는 집에만 있습니다. 열다섯 살이니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지만 자퇴했어요. 학교 성적은 하위권이었어요. 학교가 정말 다니기 싫었으니, 공부는 당연히 안 했죠. 그렇다고 게임에 빠져 있거나 왕따도 아니었어요. 물론 불량 청소년도 아니고요. 모든 게 다 귀찮고 움직이는 게 싫어요. 그래서 엄마는 답답한 마음으로 어디 가서 나쁜 짓이라도 하라며 한숨을 내쉬어
*금천구 독산역은 네 줄의 선로로 이루어진 복복선 구조로, 승강장이 양쪽 끝에 비좁게 자리 잡고 있다. 어둡고 컴컴한 역 구내를 빠져나가려면 선로 위로 지어진 역사로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는 가파른 계단과 긴 줄이 늘어선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이곳은 과거 한국 수출산업국가산업단지가 있던 구로구 가리봉동과 독산동을 합쳐 만든 금천구 가산동에 속한다.변
“김 부장 이 개새끼, 납작한 두꺼비같이 생겨가지고, 천박한 원숭이 같은 새끼.”시은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욕설을 마구 내뱉는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양화대교에는 이미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자동차의 전조등만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겨울밤의 쓸쓸한 다리 위에서 시은은 홀로 방황하고 있다.“야, 그만 좀 해라. 내가 김 부
세상을 공포에 빠트렸던 ‘폐페스트’ 대유행이 끝나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회복기에 접어든 그해 5월, 거대 도시 에코폴리스(ecopolis) ‘평화시’에서 그 기괴한 일이 발생한 것은 어린이날을 불과 사흘 앞둔 5월 2일 밤이었다. 무진동 차량 운송사 ‘KR’의 김민수 대표는 그날따라 혼자서 늦은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 보유 차량 20대가 모처럼 모
나오는 사람_ 한사람(고양이 이미지)|다른 사람(개 이미지)|또 다른 사람(호랑이 이미지)|더 다른 사람(코끼리 이미지)|그 사람(쥐 이미지)때_ 언제든곳_ 어디든 *이 연극에서 연기자의 음성은 감정에 따라 주고받는 대화라기보다, 중얼거림이나 귓속말 혹은 낮게 속삭이거나 숨소리가 드나드는 방식으로 들렸으면 한다. 대사를 해야 할 때 아예 침묵하는
[기획연재] 수필 창작과 이론7 1. 수필의 문장(문장의 중요성과 좋은 문장을 쓰는 방법)문장(文章)이란 한 줄거리의 사상이나 느낌, 또는 생각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글자로서 기록하여 나타내는 단어의 결합이다. 다시 말해 여러 개의 단어들을 흡사 염주알 꿰듯 적절히 엮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 놓은, 하나의 글월이 바로 문장인 것이다.이
-너는형도 동생도 없어서…-할머니걱정 마세요!친구도내가 선택하는 가족이에요. 강아지, 고양이, 반려식물들처럼.지금도대가족인 걸요. 모두 데려와 볼까요?
해거름에 밖으로 나갔다. 강둑에 늘어선 목련이 유백색 피부를 드러냈다. 둑길은 희미하게 밝아 목련빛이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목련. 시를 좋아하던 그미도 꽃망울 속에서 어렴풋이 나타났다. 달빛 흐뭇한 밤이면 아파트 벽에 그린 목련도 미소를 머금었다. 강둑을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다.봄바람은 아직도 찼다. 바람은 아가씨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조붓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