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엔 어수선한 꿈을 꾸다 깨어났다. 날마다 극심한 사회의 갈등으로 혼란하고 불안했던 마음 때문이지 싶다. 가만히 누워 마음을 안정시킨 후 주방으로 나가서 미지근한 물을 한 컵 천천히 마신다. 밤사이 경직된 근육을 몇 가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후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면 또 하루가 펼쳐진다. 은은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거실을 둘러봐도 아직도 집
- 이흥수
새벽녘엔 어수선한 꿈을 꾸다 깨어났다. 날마다 극심한 사회의 갈등으로 혼란하고 불안했던 마음 때문이지 싶다. 가만히 누워 마음을 안정시킨 후 주방으로 나가서 미지근한 물을 한 컵 천천히 마신다. 밤사이 경직된 근육을 몇 가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후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면 또 하루가 펼쳐진다. 은은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거실을 둘러봐도 아직도 집
화천 오음리 근방 병풍산 자락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춘천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2년이 된다. 도시는 모든 소리가 공해의 소리로 잠을 깬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의 소리와 신록으로 물든 초록빛에서 잠들었던 주변의 꽃들의 화사한 미소를 보며 새벽을 맞는다. 사방에서 들리는 이름도 모르는 산새 소리도 좋지만 멀리서 크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함께 창조의
“당뇨네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잘 챙겨 드시고 3개월 뒤에 뵙겠습니다.”당뇨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당뇨까지 걸렸구나’가 아니었다. ‘왜 저렇게 혼내는 것처럼 말하지?’였다. 당 수치가 기준치보다 얼마나 높게 나온 건지, 앞으로 당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려줄 줄 알았다.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듯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올 4월 중순, 대구에 사시는 친척 언니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셨다. 4월 25일 진주여고 100주년 개교 기념일에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시 한 편을 낭송할 예정인데 딸인 내가 골라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모교인 진주여고 후배 되는 분과 직접 이 일에 대하여 서로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두꺼운 시전집을 들춰 보기도 하고 내가 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슬픔도,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60여 년 전, 좀처럼 내 곁을 떠날 것 같지 않았던 어머님이 세상을 뜨셨다. 황망 중에 집에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운구 행렬이 집을 나서던 날과 묘지에서 하관식이 있었던 때는 그렇게는 보내드릴 수 없다고 몸부림치던 내
노을은 평안이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노을은 하루의 노동을 끝낸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평안이다. 고개 하나 돌아 마상천 둑길에 들어서면 홍시의 붉음보다 더 붉은 그림을 흘려놓고 서서히 지상의 아쉬운 작별을 남기고 멀어진다. 뒤이어 오는 붉은 해는 형제봉 사이를 넘어 손톱만큼 남기다가 꼴깍 저물어 가면서 하루의 이야기를 모두 안고 돌아간다.그 모습이
볕이 반사되는 날은 햇빛 차단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나간다. 바닥이 양탄자처럼 푹신한 재질로 발끝에 닿는 느낌이 마치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 듯하다.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내 또래 여인과 세 마리 느린 ‘시추’의 모습이 다물어 있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날 향해 달려오는 노견의 모습에서 마치 ‘라미’인 듯 착시 현상이 일었다
고등학생 때였으니 50년도 훨씬 전이었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라는 책을 제목에 끌려 단숨에 읽었지만 실망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여자는 일부종사(一夫從事)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혼을 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도 정을 주는 여자가 귀여운 여인이라고?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남러시아 아조프해 항구 타간로그에서 식료품 잡화상의
제주도! 설렌다. 첫 만남인 양 나를 반겨준다. 사르륵 사르륵 안개비가 내 얼굴을 감싸 안는다. 축축한 공기에 젖어서야 우산을 받쳐 들고 나무 계단을 오른다. 오후 4시, 내려오는 사람은 있는데 오르는 사람은 없다. 빼곡한 비자나무와 작살나무 숲. 삐죽한 화살촉을 내민 화살나무 숲을 구불구불 오른다.성산일출봉, 해발 180미터 안내판이 나타난다. 드디어 성
6월로 접어들자 산천초목이 온통 녹색으로 수놓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예정에 없이 갑자기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해서 순천 송광사의 템플스테이를 바로 예약했다. 그곳을 선택한 것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거주하셨던 불일암을 찾아 스님의 향수를 다시금 되새겨 보고 싶었다.수필집 『보석을 찾는 마음』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