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시곗바늘이 더 느릴 때의고통은 막막했다 끝날 줄 모르는 좌절이 더 크기만 한 십이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는 서로 부딪히며 제 음역을 벗어났지만나는 끝내 현을 놓지 않았다 일치하지 않은 소란이 썰물처럼사라지기를 바라며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분주한 거리엔 다행히도어두움을 걷어주는
- 장정순
느린 시곗바늘이 더 느릴 때의고통은 막막했다 끝날 줄 모르는 좌절이 더 크기만 한 십이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는 서로 부딪히며 제 음역을 벗어났지만나는 끝내 현을 놓지 않았다 일치하지 않은 소란이 썰물처럼사라지기를 바라며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분주한 거리엔 다행히도어두움을 걷어주는
지평선 너머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떠오른다 핑크뮬리, 그 꽃말처럼떠나간 연인을 마음에 심고나는 해마다 이 들판을 걷는다바람이 눈동자처럼 흘러밭고랑마다 놀란 숨결을 뿌릴 때면햇살이 붉은 탄성으로 터지고세상은 해종일 핑크빛을 슬어 놓는다햇빛도, 그림자도모두가 한 사람을 향한 빛깔이 되어억새처럼 바스러지는 오후를 지나나는 흐른 마음을 가만히 출력한
아-하 가는 건 세월이 아니라 내가 가고 가고 있구나! 세월은 가고 계절만 되풀이하고늘 제자리인데 내가 가고 있었구나 걸어가고 걸어갈 인생길이젠 지상에 머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이제 나는 꿈과 사랑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진정한 노후를 맞이해야 할 것 같다 불러도 세월은 들은 척도뒤돌아보지도 않고저만치 멀어져만 가고 있구나.
인간은 하기 어려워하는 것들나무는 덤덤하게 합니다 새봄이면 파릇파릇 귀여운 눈예쁜 옷들로 온몸 가꾸기여름이면 온통 푸른 세상 만들기가을이면 울긋불긋 여유로움 주기겨울이면 다음을 위해 가진 것들남김없이 내려놓기 비워야 채울 곳 만들어 짐을잘 아는 속깊은 나무의 마음입니다 앙상하다 춥겠다 그러지 말라며내려다봅니다속으로 속으로 풍성함
하는 일이라곤목숨을 거두거나 토막을 내는 일 도마 위에서 망나니 되어서슬 퍼렇게 번뜩이며 난타 리듬으로칼춤을 출 땐모두가 오금을 저리며 고개를 돌렸다 바다를 누비며 다닌 죄밖에 없는펄떡이는 고등어 대가리를 내리쳐 자른 날은 그 눈빛 마음에 걸려칼자국에 남은 핏물 씻어내며회한과 원망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지만어찌할 수 없었다&nbs
꽃시절 지나 연둣빛 초여름밤수분이 빠져버린 가슴별빛에 바사삭 부서진다 눈만 찡긋 해도달려와 줄 너의 웃음소리가뭇가뭇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어둠아 쩍 갈라져라바닷속 깊은 곳까지손 잡고 달려가고 싶다 막막한 언어의 실마리뒤죽박죽된 머릿속롤러코스터 타는 밤 이어지다 놓친 말끝앙다물고 붙잡아도높이와 무게를 모르고 놓친다
한 생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무성하던 감나무가몇 해 전부터 신경통을 앓더니 쓰러졌고단단하던 돌담장도 풍상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탈모증이 있었는지기와지붕은 듬성듬성 흙이 드러나고깔끔하고 단정하던 처마는치매를 앓은 듯 어릴 적 추억을 잃어버리고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가을이면 추수한 곡식들이 마당 한 가득 이었건만닭들만 한가히 마당을 헤집고 있
풋감 같던 사랑이 홍시로 익어 간다 가을이 흘리고 간 언덕 위 마음 하나 서리꽃, 몸이 먼저 알고 저도 모르게 붉어진다
가을비는 가깝지 않게 다가온다 밤에 묻어둔 눈꼬리를길게 늘어뜨리는 새벽완벽하게 동화하는 새의 첫 날갯짓이 일찍부터 비를 부를 모양이다 푸른 이파리마저아침 햇살이 힘겨운 듯붉은 숨들을 토해낸다 누군지도 모를 발걸음을차곡차곡 접어 놓은깊은 골목길 저쪽부터서서히 가라앉는 빗줄기들 밤새 잃어버린 언어들을가지런히 세워둘
문창살 다듬다가 세월을 쓰다듬다환하게 묻어나는 솔내음 향기 취해유년의 추억 속에서 유영하는 생채기 아리운 기억 찾아 물감을 풀어 놓고 필봉에 매지구름 강나루 건너가듯 살아온 세월 속에서 접어 놓은 화선지 휘영청 달빛 아래 멧짐승 울음소리호롱불 밝혀 놓고 누구를 기다리나빛바랜 사금파리만 다래다래 열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