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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5 - 유엔사, 한미일 군사관계의 핵심축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유엔사의 정체

유엔의 이름으로 유엔의 깃발을 들었으되

유엔의 손에 묶이지 않았고,

유엔의 권위를 빌렸으되

유엔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며,

평화의 언어보다

정전유지를 통한

한반도 군사대치와 분단유지의

안전판을 바탕으로

미국이 중러를 지근거리에서 견제할

한미일 3각군사협력체제의

핵심축이 되어 동북아 미래를 통제할

막강한 군사 잠재력을 지니고 엎드려 있다.

1950년, 한반도에 전면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은 유엔의 결정으로

유엔사 깃발을 앞세워

사령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사령부의 심장은

워싱턴을 향해 뛰었고,

그 골격은 미국의 전략으로 세워졌으며,

그 그림자는 미국 정부의 손길 속에 놓였다.

유엔사의 얼굴은 유엔을 닮았으나

유엔사의 몸은 미국을 향했고,

유엔사의 언어는 국제를 말하였으나

유엔사의 기능은 미국의 동북아,

한반도 관리 장치였다.

이름은 국제였으나

실체는 국가였고,

명분은 보편이었으나

작동은 패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었다.

과연 이것이 유엔인가,

아니면 유엔의 가면을 쓴 미국의 사령부인가.

과연 이것이 평화의 장치인가,

아니면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전초인가.

질문은 오래되었고

대답은 늘 불충분했으며,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엔사는 유엔안보리의 통제를 받지 않았고

사무총장의 지휘도 받지 않았으며,

유엔을 대표하지도 않으면서

유엔기를 달고 서 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질문한다.

누가 분단의 문을 여는가.

누가 통일의 길을 막는가.

누가 분단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가.

유엔사는 말한다.

우리는 정전을 지키는 자라고.

참전국들의 연대를 유지하고,

충돌을 방지하며,

평화를 준비한다고.

반면 다른 목소리는 말한다.

유엔사는 미국의 전략이 입은 또 하나의 옷이며,

동북아 질서를 움직이는

숨은 장치라고.

진실은 아마도

어느 한쪽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운명이

아직도 한반도가 1953년의

문턱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정전은 살아 있고,

유엔사는 남아 있으며,

평화협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압록강의 물결이

동해의 파도와 만나는 날,

철조망이 녹슬어 흙으로 돌아가고,

군복보다 농부의 옷이 많아지는 날,

유엔사도,

주한미군도,

정전선도,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한반도는 계속 묻는다.

전쟁은 끝났는가.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분단의 긴 그림자 아래에서,

역사는 오늘도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포화가 반도의 허리를 가르던

1950년의 잔혹한 여름,

소련의 거듭된 유엔 안보리 불참 속에

결의문 제82호와 83호, 84호로 탄생한

다국적군은

유엔 깃발을 사용하며

스스로 유엔이라 칭하지만

유엔의 사무총장도, 안보리와 무관한 채

미 국방부를 통해

워싱턴의 백악관에만 보고하고 지휘를 받는

기이한 군대로 탄생해

오늘도 한반도 정전의 수호자라며

미국 극동 전략의 한 축이 되어 있다.

평택의 거대한 미군 요새 한 빌딩에 둥지를 튼

유엔사 사령관 머리 위에는

세 개의 왕관이 얹혀 있다.

성조기를 품은 주한미군과

연합의 방패인 한미연합사 사령관의 모자.

미군의 한 장군이

세 가지 형상으로 나타나

한반도의 안보를 관장하니,

그것은 삼위일체의 무소불위 권능이며

미국 군사주권의 신묘한 연출이다.

1953년 정전협정 제4조 60항이

명령한 '석 달 안의 외국군 철수'와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위 정치회담의 약속은 70년 동안 내팽개친 채,

유엔사는

오직 통제의 그물망을 유지하는 것만이

평화라 외치면서

양파껍질 같은 한미동맹 지배 구조의 하나가 되어

워싱턴 백악관의 전략 두뇌가 계산하는

미 국익을 챙기고 있는데

한반도의 남쪽 조정은 침묵으로 추종할 뿐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는다.

점령과 피 점령 흡사한

한미간 군사적 예속 구조 속에서

유엔사는

정전의 문지기,

분쟁의 조정자,

평화의 수호자처럼 보이되

실은 평화 이후의 질서를 관리하는 자.

유엔사는 그렇게

멈춘 전쟁 위에 미래를 설계하며

만반의 태세로 서 있는 전쟁의 도구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는

다음 전쟁과 그 이후에

미 국익을 챙기기 위한

전략 추진 속에 발견된다.

동북아와 한반도에 큰 변화가 오더라도

미국은 이미 대비해 두었고,

정전이 평화로 바뀌더라도

그 공백을 비우지 않을 준비를 해 두었으며,

전쟁이 다시 오더라도

즉시 작동할 장치를 유엔사가 버티고 있다.

그 장치의 중심에는

한 사람에게 씌워진 세 개의 모자가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모자,

한미연합사령관의 모자,

유엔사령관의 모자.

하나의 머리 위에 셋의 권능이 겹치고,

하나의 인물이 셋의 역할을 맡으며,

하나의 명령이 셋의 이름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편의라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이 필연적 구조임을 안다.

구조란 우연의 반복이 아니라

계획의 축적이며,

명분의 분장 뒤에 숨은

AI로 계산한 미래의 자산이다.

미국은 유엔사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과 문제제기를

노련한 스포츠 선수처럼

이리저리 피해 빠져나가면서 구실과 명분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는 과정에서

유엔사가 터를 잡고 있는

한국 정부, 국회는 침묵하거나

미국을 돕는 논리를 추상적으로

국민에게 가뭄에 비 내리듯

찔끔찔끔 내놓는 일이 반복되고

한국 사회는 헷갈려 하면서

미국에 결정타가 되지 못하는

구호나 항의를 하면서 세월은 가고

불편한 현실은 콘크리트 질서처럼 굳어진다.

그리하여 유엔사는

전쟁을 끝내는 기구가 아니라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기구가 되고,

평화를 선언하는 기관이 아니라

평화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영원히 관리하는 장치가 된다.

미군장군이 유엔사의 깃발을 올리고

통행허가권을 흔들면

남북정상이 합의한 북녘의 철길을

점검하러 가려던 기차가

군사분계선 문턱에 막혀 멈추었고,

타미플루 인도적 약품을 싣고 가려던

화물트럭의 바퀴마저

정전협정의 조항을 들이댄

유엔사의 손짓에 제동이 걸렸다.

경기도 지방정부가

도라산 전망대 현장 집무실을 설치하려 하자

유엔사는

"규칙을 이행하는지 점검하노라"

상급기관처럼 군림하며 통제하면서

부지사가 3보 일배로 항의하게 만들었다.

그 뿐 인가.

미국 정부는 향후 유엔사가 북한 땅 진군 시

남한 정부가 아닌 자기들이

그곳을 점령 통치하겠다고 떠벌린다.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으로는

한반도 군사상황의 현재를 통제하고

유엔사령관을 통해 한반도 미래를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전협정 세계 속에서

유엔사는 남아 있었고,

전쟁은 멈췄으나

전쟁의 체제는 멈추지 않았다.

유엔사 본부가 있는 평택 미군기지에서

멀리 바다를 건너가면

일본의 7개 항구와 기지 위에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다.

그것은 후방이지만 뒤에만 있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으며,

일본 땅 위에 있으되 일본의 것이 아니고,

일본의 주권이 닿지 않는 곳에서

워싱턴의 의지에 따라

미래의 전략 추진과 패권 장악 태세를 준비하고 점검한다.

평택의 작은 본부 하나가

일본의 7 곳에

거대한 항구와 비행장을 거느린 채,

미래의 전쟁을 대비하며

거친 숨을 숨기며 엎드려 있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단순한 지원 거점이 아니다.

그것은 동북아와 한반도 유사시

6.25 때 했던 것처럼

미군에 동참할

참전국의 병력과 장비가 모이는 장소이며,

일본을 경유해

한반도 남쪽에 투입될 군사력의 집결지이고,

미래의 작전이 출발하는 문턱이다.

오키나와와 혼슈의 군항들,

요코스카와 요코다,

사세보와 가데나,

화이트비치와 후텐마,

캠프 자마까지,

그 이름들은 지도 위의 점이 아니라

전쟁의 가능성에 대비해 연결된 네트워크다.

그 선들은 현재를 향해 그려졌으나

실은 미래를 향해 이어져 있고,

그 점들은 지금의 기지이지만

다음 위기의 도면이기도 하며,

그 구조는 일본의 토양 위에 놓였으되

미국의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

일본은 후방을 제공하고,

미국은 이를 운용하며,

유엔사의 이름은 그 위에서 춤을 춘다.

여기서 다시 드러나는 것은

이름과 실체의 거리이다.

유엔이라 불리지만

유엔이 아니고,

다국적이라 말하지만

핵심은 미국이며,

평화를 말하지만

전쟁의 대비와 맞물려 있다.

그리하여 유엔사 후방기지는

배보다 배꼽이 큰 장치처럼 보이고,

작은 이름 아래 큰 힘이 숨어 있는

거대한 역설이 된다.

그 역설은 한국만을 향하지 않는다.

일본을 향하고,

미국을 향하고,

동북아 전체를 향한다.

유엔사는 한반도에만 머무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한미일 3각 군사관계의 핵심 축을 이루고,

정전의 관리인이면서

동북아의 군사구도를 지배한다.

보이지 않지만 연결하고,

드러나지 않지만 지탱하며,

말하지 않지만 작동한다.

평택의 유엔사 사령부 직원은 1백 여 명이라 하나

일본에 엎드려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는

가공할 군 기지로 버티고 있다.

유엔에서 1970년대를 전후해

유엔사 해체 목소리가 높아지자

미국 정부는 유엔사를 한 줌의 군대로

만드는 시늉을 하면서

박정희와 한미연합사를 새로 만들어

대체하는 신묘한 재주를 부렸다.

현해탄 바다를 건너 열도의 땅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대한 유엔사 후방기지가

거인처럼 엎드려 있으니,

평택의 유엔사는 한 줌의 소수 군인만이

자리를 지키는 허깨비 같으나

일본의 후방기지는 산천을 뒤흔들

가공할 잠재력이다.

일본의 주권조이 치지 못하는

일곱 개의 거대한 치외법권 지대가 후방기지다.

그곳은 주일미군의 심장이요,

유사시 반도로 진격할 열강의 병참기지로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 SOFA를 만들 때

승전국의 위세를 발휘하여 만든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의 핵심 거점이다.

미국은 한국 전쟁을 통해

중국과 소련의 위력을 파악하고

두 거인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한일 두 나라를

군사적으로 엮어놓은 것이다.

당시 한일 두 나라는 냉랭한 관계였지만

미국은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한일 두 나라와의 안보조약과 유엔사 후방기지를

연결시킨 연합 군사체제를 만들어

향후 한반도 포함 동북아 유사시

7개 기지를

일본 정부와의 사전 협의 없이

미국의 의사대로 활용할 장치를 만들었다.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은

이런 사실에는 침묵한 채

유엔사가 유령단체라는 것만을

고래고래 외치고 있는데

이런 가짜뉴스는

워싱턴의 백악관을 불펀하게 만들기는 커녕

즐겁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미국은 6.25 때

유엔사 후방기지를 참전국 병력을 집결시킨

거점으로 활용해

한국 광주 공군기지 등으로 실어 날랐다는데

이런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작업을

지난 70 여 년간 지속적으로 실시해

오늘날 호주와 캐나다, 프랑스와

뉴질랜드, 필리핀과 타이, 터키와 영국 등이

공식적으로 동참해

북한 선박 공해상점검 등의 군사행동을 하고 있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주일미군의 완벽한 병참 지원 아래

언제든 다국적군을 결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고

한반도 남쪽의 장성들과 영관급 장교,

국회의원, 언론인들이 매년 그 기지로 초청되어

한반도 평택의 머리보다

일본 열도의 배꼽이 더 거대한 기형적 안보구조와

미군의 ‘fight tonight' 태세에 감탄하니

그들의 뇌리 속에

유엔사 깃발의 위세가 깊게 각인되면서

주한미군의 선전홍보 전략의 가성비가 확인되더라.

돌이켜보면,

1975년 9월 22일,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사 해체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워싱턴이 유엔사를 해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키신저는

1976년 1월 1일이라는

구체적인 해체 시한을 제시하며

해체를 약속했고,

이는 미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보낸

공한을 통해서도 공식화되었다.

그 직후인 1975년 11월 18일

제30차 유엔총회는

유엔사문제와 관련해 두 개의 결의안을 동시에 채택했다.

서방측 결의안 (A안, 3390 A호)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유지 장치가 마련된다는

전제 하에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사를 해체하자는 내용으로

조건부 해체를 주장했다.

공산권 결의안 (B안, 3390 B호)은

중국, 소련 등이 제안한 것으로

유엔사의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해체와

모든 주한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두 결의안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은 유엔사가 안보리 결의에 의해

창설된 기구이므로,

해체도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며

총회 결의만으로는 해체가 불가능하다는

법적 해석과 함께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직접적인 서명자이자 감독 기관으로

유엔사가 해체되면 정전협정을 유지할

공식적인 당사자가 사라져

한반도 정전체제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자체를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면서

미국이 제안한

유엔사 해체 후 정전협정 관리 권한을

한국군으로 이관하는 방안에도 반대했다.

결국 유엔사 해체는 실행되지 못했다.

미국은 이후 1978년

한미연합사(CFC) 를 창설해

유엔사의 전시 작전 통제 등 핵심 군사 기능을 맡게 하는 한편,

유엔사 자체는 해체하지 않고

그 기능을 축소한 채 존속시켜

유엔사는 오늘날까지

유엔사 후방기지와 함께 남아있다.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가

한반도의 정전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유엔사를 해체하라며

총회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과 함께

부트로스 갈리도,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도,

디칼로 사무부총장도 일찍이 자인했듯

유엔사는 유엔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직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전쟁의 도구일 뿐이다.

부트로스-갈리는 1994년 6월

북한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공식 서한에서 입장을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953년 유엔사를

이사회 통제 기관으로 설립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러한 사령부의 창설을 권고했고,

그것이 미국의 지휘권 아래 있도록 명시했다.”

코피 아난은 1998년

유엔사는 유엔의 예산과 관련이 없으며,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조직이라며

공식적으로 유엔사의 지위를 확인했다.

로즈마리 디칼로는 2018년 9월 17일

유엔 안전보리 브리핑에서 공식적으로

"유엔사는 유엔의 작전이나 기관이 아니며,

유엔의 지휘와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 세 차례의 공식 확인은

유엔사가 명칭과 달리

유엔의 통제를 받지 않는 별개의 조직임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유엔사가 한국 땅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의 하나는

미국의 논리를 합창하며

한국이 OK를 외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만약 유엔의 유엔사에 대한

유권해석을 존중했다면 유엔사는

오늘날 그 존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가짜 유엔기구의

한국 땅 존속에 찬성하고 있다.

미국이 국제기구의 결정을 짓밟으며

기만적 행위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과 함께

개탄할 일은

한반도 남쪽 정부의

미국에 대한 맹종이라 하겠다.

유엔사의 행태에 분노해야 할 한국 정부는

그러기는커녕 무뇌아 같은 태도로

미국에 복종하는 짓을 반복하는데

이재명 정부의 국방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2026년 7월 27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고,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모두의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했으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래의 전쟁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미래의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엔사는 늘 후자의 편에 가까웠다.

평화협정을 기다리는 자들 앞에서

유엔사는 정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완전한 종전을 꿈꾸는 자들 앞에서

유엔사는 질서 유지라는 이름을 앞세운다.

그러나 질서 유지가 오래 지속되면

그 질서는 체제가 되고,

체제는 현실이 되며,

현실은 또 다른 굴레가 된다.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그 굴레를 보아 왔다.

그러나 보았다고 해서

곧바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엔사는 정치의 바깥에 있는 듯 보였고

안보의 안쪽에 깊이 들어와 있었으며,

비판은 있었으나

구조는 남아 있었다.

질문은 쌓였으나

결정은 늦었고,

주권을 말하는 목소리는 있었으나

주권의 실질은 흔들렸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누가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를 설계하는가.

누가 정전의 시간을 관리하는가.

누가 일본의 후방을 열어 두는가.

누가 세 개의 모자를 한 사람에게 씌우는가.

누가 유엔의 이름을 빌려

미래의 전쟁까지 준비하는가.

대답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유엔사는 단지 과거의 유물만이 아니고,

단지 정전의 관리인만도 아니며,

단지 상징적 사령부만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질서를 지탱하는 동시에

내일의 군사적 가능성을 예약해 두는

거대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므로 유엔사를 말한다는 것은

한 사령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권력의 지형을 말하는 일이고,

미국과 일본과 한국이 얽힌

군사 질서의 구조를 말하는 일이며,

평화라는 단어가

어떻게 제도 속에서 지연되고 변형되는지를

되묻는 일이다.

유엔의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나

미국의 구조로 남은 자,

정전의 언어를 말하되

전쟁의 준비를 놓지 않는 자,

일본의 후방을 통해

미래의 전쟁을 예비하는 자,

그 이름은 유엔군사령부다.

그리고 한반도는 오늘도 그 이름 아래

정전과 평화의 경계에서

묻고 또 묻는다.

이것이 과연 누구의 질서인가,

이것이 과연 누구의 평화인가,

이것이 과연 누구의 전쟁 준비인가.

70년 세월 동안

평화는 오지 않았고,

정전만 늙어갔다.

한미 두 정부가 만들어 놓은

유엔사를 포함한

고차방정식인 한미동맹의 두꺼운 껍질은

감상만으로는 깨뜨려지지 않아

냉철한 논리와 구체적 대책을

말하고 토론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해체가 가능할 것이다.

자주를 외치면서도

연례행사 일과성 행사와 단편적 외세 배격의

함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그 철옹성을 깨기 힘들다.

국제 사회의 법치라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상대가 아파할 아킬레스건을 자극할

전략과 전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미행정부 최말단기관의 하나인

대사관 앞 시위나 결의문 전달,

전국 순례행진도 필요하다.

동시에

미 대통령의 손가락 하나에 달린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 없는

대북 선제타격권과

주한미군이

미 본토 수호 작전 부대라는 것은 감추고

그냥 대북용이라며

철수 카드로 위협하고

국내 검은 머리 미국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치는 치졸한 3류 촌극이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 있는

한국의 정부, 국회, 언론, 학계 등의

각성을 촉구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주한미군에게 점령군적 위상을 가능케 하는

치외법권적 특권을 주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 하위협정인 SOFA의

정상화를 큰 소리로 외쳐

전체사회가 각성하게 만들어

자살율, 출산율에서 대변되는

구조적 모순의 원인 하나가 되고 있는

한미동맹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을 구실로

주한미군의 대륙을 향한 작전을

비밀로 유지해 주면서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하면서

국내 민주주의 공간을 좁힌

구조적 제약을 타파하는데 모두 나서야 한다.

현재의 한미동맹의 핵심 축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를 발동해

한국 정부가 미국에 조약 폐기를 통고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정치권을 의식화해서

역사적 책무를 이행토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경제, 군사, 문화에서

선진국으로 비상한 현실을 직시해서

미·중의 고래 싸움 속에

우리의 청년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으려면,

국제법치라는 형식을 통해

예속의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야 하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40 2026.08.01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4 - 한미동맹과 한국 민주주의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군사력 세계 5위권의 강국이다.

K-컬처는 지구촌을 정복하고,

기술과 산업은 세계를 선도한다.

그런데 우리 땅의 평화와 전쟁,

작전의 범위와 확전 여부는

외부 강대국의 손에 맡겨져 있다.

필리핀, 일본, 나토 회원국들은

주권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왜 우리만 70년 전 폐허 속에서 맺은

불평등 조약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

제3국을 겨냥한 작전에 투입될 태세다.

대만 유사시 그렇게 될 것이란

이야기기가 정치, 언론에서 반복되면서

미중간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오산, 군산, 평택, 경북 성주 주한미군기지가

중국 미사일 공격 대상이 되어

기지 주변 한국 국민이 전화에 휩싸여

전쟁의 희생자가 될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위험을

국민에 전혀 알리지 않고

대피 시설 등도 외면하고 있는 바

이것은 군사주권의 부재요,

국가 자존심의 치명적 상처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알 권리'에 있다.

알지 못하는 국민은 심판할 수 없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는

머슴이 아닌 주인이 된다.

70여 년간 주한미군은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비밀 작전을 펼쳐왔고,

한국 정부는 동맹에 묶여 동조하면서

자국민에게는 그것을 감췄다.

그 결과 한국 국민은 주한미군이

한국을 위해서만

주둔하는 것으로 고마운 나라라고 감사할 뿐

제 나라 정부가 거짓말하면서

민주주의를 외면한 것도 탓하지 못했다.

국회도 주한미군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마치 한미가 대등한 관계인 것처럼 착각할

언행만을 일삼고 있다.

정치는 그 주인인 국민에게

나라의 군사주권이 미국에게 넘어가

일제 항복이후 새 점령군처럼

군림하고 있는 사실을 철저히 감췄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부정이고

한국 민주주의가 선진화로 가지 못하는

결정적 장애요인이다.

국가 전체의 생사 문제가 걸린

동맹에 대한 진실을 감추는 정치는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아니라

미국을 섬기는 정치다.

이러니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주한미군이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비밀리에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국제법상, A국이 B국에서

C국을 향한 군사 행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 불법을 '동맹'이라는 미명 아래

합법화한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본질이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들어 모시는 체질이 굳어 있다.

국민만 이것을 모른다.

거대 여야당이 서로 죽일 듯

난리를 치면서도

국가의 군사적 종속성과 국민 기만에 대해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며 공동보조를 취한다.

진보적 소수 정당도 엇비슷하다.

정치권이 동맹의 반국제법적 문제 등을

철저히 외면하고 민주주의의

공간을 좁힌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개돼지로 만드는

정치적 공동체가 되어 있다.

학교 교과서는

동맹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어느 공무원 시험에도 그것이 나오지 않아

대부분의 공무원은

한미종속관계에 대해 까맣게 알지 못한다.

어느 대중매체도 그것을

진지하게 객관적으로 다루거나

해외의 평등한 군사동맹 등과

비교해서 언론 소비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한미동맹, SOFA 문제가 거론되면

정치권과 언론은

‘동맹 균열’, ‘안보 위협’이라는 프레임과

함께 북한이 즐거워할 것이고

남침 위협이 증대될 것이란

판박이 국보법 논리를 앞세운다.

정치권력은 한미동맹의 문제를

제기하면 이적, 친북 행위로 몰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

이 법은 분단의 명분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면서

객관적 논의조차 ‘찬양·고무·동조’로 몰아

21세기 감옥으로 보내는

세계가 지탄하는 악법이다.

미국 유학파 엘리트와

워싱턴 특파원 출신 기자들은

미국의 논리를

떠받들고 유포하는 일꾼이 되어 있어

마치 심각한 세뇌상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 정보기관과의 밀거래가 있다는

소문이 나온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정부는 국민의 정치적 머슴이어야 하건만,

외국군의 비밀작전을 보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는 것은

헌법의 명백한 위배요,

민주주의의 유린이다.

필리핀,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과 맺은 군사관계를

한미관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한다.

왜 그런가?

남북대치, 북한 남침 가능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외국과

비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한다.

그럴까?

한반도의 특수성을

다각도로 점검해야 하지만

유엔 회원국 190 여 개 국가 가운데

군사적 자주권을 외국군에게

넘긴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만으로도

대미 군사적 예속성의 문제는 심각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은

경제, 군사, 문화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나?

매년 국민 수천 만 명이 해외여행을 하는

오늘날

냉전시대 논리에 함몰되어

국보법이 체제 유지에 절대 필요하며

기울어진 운동장 동맹 논리만이

절대선이라는 논리를 부르짖는 것은

선진국 수준의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작태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은 입체적으로 복잡하게

점검해야 하지만

미 국익 증진을 위해 한국의 대미 예속성을

유지,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동맹 덕에

한국의 오늘날이 있다는 논리에 단연 앞선다.

트럼프가 오늘날 동맹도 짓밟고

이란 등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미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는데

미국은 건국 이래 거의 동일한 논리로

국내외 정치를 해온 나라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디언을 축출해 땅을 빼앗아 정착하고

노예제로 경제부흥을 꾀했으며

2차 대전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한 뒤

가짜뉴스로 베트남, 이라크 등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워

제 3 세계와 중동 등지에서

미 대통령의 지시로 암살이 꼬리를 문다.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

즉 美國으로 불릴 이유가 거의 전무하다.

한미동맹의 다양한 형태인 조약, 협정, mou 등은

미국익을 위해 한국 정부, 국회에 재갈을 물려

한국의 민주주의를 일상적으로 짓밟아

한국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그 핵심 근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 부속협정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다.

이 조약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미국의 권리로 만들어

치외법권 속에

20세기 점령군의 모습으로 군림하게 하고

SOFA는 구체적으로 이 조약의 권리를

한국의 영토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상세하게 정해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대미 군사적 예속을 물샐틈없이

구조화한 경전과 같다.

그 결과

한미동맹이 한국 민주주의를 통제하고

남북 분단을 관리하면서

한국 국민을 개돼지 취급한다는

사실은 지구촌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미국은 좋은 나라, 고마운 나라로만 칭송되면서

미국의 실체에 대해 무지한 미맹(美盲)이 심각하다.

그 이유는 국민의 정치 머슴인 정치인이나

국민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의 일부를 하는

언론이 미국의 실체에 침묵하면서

그들의 선전홍보에 충실할 뿐

사실관계, 정론직필을 통한

진실전달과 비판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라 말한다.

즉 미국이

갖가지 방식으로 한국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손해며 심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대해 더 살펴보자.

박정희가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점을

미국 코앞에 제시할 때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SOFA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으로

미국의 ‘권리’를 시행하는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한국

민주주의를 수 십 년 째

직접 통제하고 있는 조항이 제3조와 제28조다.

제3조와 제28조는

주한미군의 기지와 작전 등을 '비밀'로 분류하고

한국 정부가 동조하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알 권리 위에

존립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 준 주한미군 기지에서

국민의 땅 위에서 벌어지는 작전이

국민에게 비밀이라면,

그래서 국민이 언제 어떻게

강대국간 전쟁으로 희생될지 모른다면

그렇게 만든 정부는 더 이상 민주정부라는

이름에 합당치 않다.

제3조와 제28조를 자세히 살피면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

우선 제3조는 한국이 미군에게

제공한 시설과 구역에 대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가설, 운영, 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미군기지 내부는 한국의 법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핵심 장치다.

단순한 '정보 통제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와 국회가 주한미군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질적 경로를 차단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영토의 '주인'이지만

미군에게 '열쇠'를 모두 넘겨준 꼴이다.

제28조는 제 3조로 규정된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 등을

군사기밀 보호라는 명목으로

한국정부도 비밀로 유지하도록 해

주한미군의 대중·대러 군사행동을

비롯한 모든 중요한 군사 활동이

한국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적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블랙홀' 이 되고 있다.

제28조에 의해 주한미군에 대해

한미 두 나라가 논의하는

합동위원회라는 협의체를 두지만,

이는 한국 국회의 사후 승인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 간의

비공개 협의에 불과해서

한국 국회는 주한미군의 주요 군사 활동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SOFA 제3조와 제28조 두 조항이

만들어내는 최종 결과는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이 붕괴되어

주권 국가가 아닌 군사적 예속국가로

전락, 방치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미군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법적 동의, 통제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알 수도 없는 위치로

이는 한국 국민과 정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권한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한국 국민은 자신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외국군의 중대한 군사적 사안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선택권도, 통제권도 없는

무의미한 존재에 불과하며

주권 국가의 국민이 아닌,

동맹의 군사적 결정에 운명을 맡긴

개돼지로 전락한 꼴이다.

제3조와 제28조 대해 더 따져보자.

주한미군은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정찰·감시·군사공격 작전을 70 여년 간 펼치고 있는데

이를 국제법의 기본 원칙에 비춰보면

심각한 문제가 즉각 들어난다.

“A국이 B국 영토에서

C국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하는 것은

B국의 명시적·주권적 동의 없이는 불법이다.”

한국이 주한미군에 대한

SOFA 제3조와 제28조 규정에 동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의의 내용도, 작전의 내용도, 표적도

비밀로 하기로 한 것에 대한 문제는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심각하다.

그것은 아래와 같은 섬뜩한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비밀작전에 동조해

강대국간의 군사적 충돌로 한국이 피해를 당할 수 있는데

그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으로

정부는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동맹국 군사작전의 하수인이다.”

정부가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면서

외국군의 작전을 국민에게 숨기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기만이다.

그리고 기만 위에 선 질서는

어느 날 반드시 무너진다.

비밀이 흘러나와 국민이 진실을 알 때도 그렇고

그 비밀이 미사일이나 드론, 폭탄으로 돌아올 때 더욱 그렇다.

“주한미군과 중국 전투기가 2026년 상반기

서해상에서 대치한 것보다 심각한 사태가 벌어져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이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오산·군산·성주를 향할 때,

'몰랐다'는 변명은 국민의 피 한 방울 막지 못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모르면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지 않으면 책임질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침묵하고 국민은 죽는다?

치외법권적 특권을 지닌 주한미군과

헌법적 책무를 외면한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을 중대한 위험에 노출시켰다면,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행위 여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예견 가능한 위험을 방치한

중대한 직무상 과실 또는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이라는

엄중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이며 주권이란 무엇인가.

보편의 법리와 국제 사회의 상식은 준엄하게 묻는다.

영토 안에 외국 군대가 갑질을 하며 주둔하는 것이

어찌 '당연한 권리'가 되며,

그 군대의 작전이 영토 주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비밀의 장막 뒤에서 행해지는 것이

어찌 민주주의라 하겠는가.

다른 한쪽의 권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면,

그것은 대등한 조약이 아니요 지배의 변형일 뿐이다.

나토의 맹방들도, 이웃한 섬나라와

저 멀리 필리핀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의 주권을 조율하는데

이 땅은

칠십 년 전의 정체된 시간에 스스로를 결박하고 있다.

조약이나 협정은 필요할 경우

박정희가 그런 것처럼 그 개폐를

협상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것으로

필리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재임시절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 살해한 혐의로

오늘날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재임시절 미국과 협상이 잘 되지 않으면

1998년 체결된 두 나라 군사협정인

'방문군 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 VFA)'의

파기를 선언한 바 있다.

VFA는 필리핀과 미국이

대등한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만든 협정으로

두테르테가 2020년 2월

미국에 VFA 종료를 공식 통보해

미국을 긴장하게 만든 뒤 나중에 폐기를 유보했다.

오늘날 트럼프가 외국과의 협정 등 국가 간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가 원수는 국익과 대외 관계를

항상 국민의 머슴 입장에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 머슴들은 국민의 눈을 가렸고,

강대국의 학문과 논리에 길들여진

먹물들은 궤변 속에 침묵을 가르쳤다.

분단과 통일, 이 땅의 생사가 걸린 화두에 대해,

객관적 사고와 행동은 철저히 금지된다.

'고무·찬양·동조'의 프레임은

21세기에도 시민을 감옥에 가둔다.

세계를 무대 삼아 호흡하는

젊은 세대에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생명

그 자체임에도,

국보법은 그 근간을 원천 차단한다.

누군가 묻는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나요.

질문은 해방의 시작이다.

침묵으로 만들어진 비정상적 벽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 벽은 '몰랐다'는 돌로 쌓였기 때문에

'알겠다'는 빛으로만 무너진다.

2026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질문이다.

왜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국민은 모르는가.

왜 우리 세금이 외국군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알 권리가 없는가.

왜 주한미군은 우리 모르게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비밀 작전을 하며, 그것이 정당한가.

그렇게 하는 것이 대북 방어에 필요한가.

왜 미·중 전쟁이 나면 우리는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왜 1953년의 계약을 2026년까지도 갱신하지 않는가.

왜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원천 차단하는가.

질문이 쌓이면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며

변혁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1953년의 한국이 아니다.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5위,

문화력 세계 1위.

이 세 가지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물질적·군사적·문화적 주권의 조건은

이미 충족되었지만

정치적·군사적 주권의 현주소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말이다.

“한국은 물질적으로는 강국이나

정치·군사적으로는 미완의 주권국이다.”

그 미완을 완성하는 일,

그것이 이 시대의 지상과제다.

국가는 경제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화의 인기만으로도,

스포츠의 승리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란 국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주권은 헌법의 문장보다 무겁다.

나라마다 역사는 다르지만,

모든 민주주의는 하나의 원칙 위에 선다.

국민은 질문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설명할 책임이 있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의 동의 속에서

결정되어야 하고

동맹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건강하고

합리적인 약속이어야 한다.

성숙한 동맹은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견디는 힘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안보는 복잡하다."

그 말은 맞다.

그러나 복잡함이 국민의 알 권리를

영원히 대신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국제정치는 현실이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현실은 국민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때

폐허 속에서 시작했던 나라는

세계가 놀라는 경제를 만들었고,

문화가 국경을 넘었으며,

기술은 세계 시장을 흔들었다.

그렇다면

정치, 외교, 안보도

끊임없이 토론하고,

점검하고 필요하면 고쳐야 한다.

혁명, 개혁, 성숙한 민주주의는

거대한 함성보다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왜 그런가."

"다른 길은 없는가."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는가."

그 질문이 국가를 성장시키고,

제도를 바꾸며,

역사를 앞으로 밀어간다.

국가는 누군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동맹, 평화, 안보, 자유도

결국 국민의 신뢰와

민주적 합의 위에서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알 권리, 질문할 권리, 바꿀 권리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논리다.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 재검토와

SOFA 협정의 평등한 개정.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특권과

중러를 향한 미본토 수호 목적 작전의 중단,

전시작전통제권의 완전 환수 등등

이것이 군사주권 회복의 첫걸음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되찾고,

남북 평화체제를 당사자가 주도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256 2026.07.27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3 - 박정희도 비판한 한미상호방위조약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대한민국 대통령가운데

불평등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박정희가 유일하다.

이승만이 1953년 미국과 합의한 이 조약에 대해

박정희는 1966년 국회, 국방부를 통해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미국을 겨냥, 압박하려한 정치적 행위였다.

협상은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노려

상대를 코너로 몰아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으로

바둑을 두는 것과 흡사하다.

급소에 착점 하면 판을

유리하게 몰고 갈 수 있다.

박정희가 미국과 협상과정에서

그렇게 했다.

정치 큰 머슴인 이재명 대통령도

박정희의 대미 협상정치력은 배우는 게 좋겠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쟁을 막아선

방패의 이름이지만

동시에 21세기 문명국가 중 유일무이한

군사적 예속과 불평등의 굴레를 품고 있어

주한미군에게

마치 점령군과 흡사한

치외법권적 특권을 주는 장치다.

미군이 깃발을 꽂은 주한미군 기지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미국의 성역이다.

그 뿐인가.

주한미군이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상대로

정찰, 감시, 임전태세 등의

비밀군사 작전을 24시간, 365일

전개하면서 한국 정부도 SOFA에 묶여

침묵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짓밟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산, 군산 미군기지 주변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자칫 강대국간 군사적 충돌로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위험이 상존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전무하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모르쇠 하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공간을 좁게한다.

그 뿐 아니다.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만에서 충돌하면

한국은 국제법적으로 미국과 함께

전쟁 책임을 면키 어려운데

이는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이란 군이

미군이 주둔한 걸프국가들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사례다.

중국이 경북 성주 사드를 이유로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 조치를

10년째 취하고 있는 배경도

사드가 중국 군사력을 정탐하는

것에 대한 대응이라 하지만

미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국내 기업 등만 혼자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으로 인한

예속성, 위험성에 대해

국내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정치권

모두가 미국 눈치를 살피며

선거를 의식해 표를 잃을까봐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주의 정치가

좁혀지고 짓밟히는데도

정치 머슴들이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고 정치적 과실을

따 처먹는 데만 혈안이 된 모습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경제와 군사력 선진국,

K- 컬쳐, 정보 강국이라는 한국의 정치권은

물론 언론, 학계 등 기득권 세력 모두가

이 조약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숭배하며 전쟁위험,

국제법적 책임문제조차 외면하고 침묵한다.

워싱턴의 심기를 살피느라

주권을 포기하고

주종관계에서 안주하는 것을

지구촌이 속으로 비웃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하지만

군사독재의 수장

박정희 정권은 달랐다.

1965년 월남 파병 등을 둘러싼

대미 협상장에서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압박 카드로 활용해

실리를 뜯어내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1965년, 미국이 월남의 정글 속으로

한국 청년들을 증파하라고 요구하자,

박정희는 덥석 제안을 수락하는 대신

맹방의 요구를 들어주되, 동맹의 판을 흔들어

더 많은 달러와 무기 등을 챙길 기회로 삼고자 했다.

박정희는 밀실로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심복이자 공작정치의 칼잡이를

불러들였으니,

그가 바로 그림자처럼 정권을 보좌하던

차지철이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 등을 철권통치 하던

박정희는 유정희 의원 차지철에게

비밀 지시를 내렸다.

“지철아,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를 부각시켜라.

파병과 관련해 미국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네가 국회에 횃불을 들어라.”

박정희의 특급 지령을 받은 차지철은

맹렬한 투사가 되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노예적 성격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6년 3월 12일

차지철을 비롯한 55인의 의원들이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 건의안'을

국회 외무위원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발칵 뒤집히고,

언론은 정권의 보도지침에 따라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어 두 달 뒤인 그 해 5월,

정일권 총리는 브라운 미국 대사에게

강조했다.

“파병안 국회 동의를 얻으려면

한미상호방위조약 수정 보장이 필요하다!”

월남에 국군을 증파하는 파병안이 국회에서 상정되자

개정 요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7월 8일 국회는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한국 방위 문제와 한미 군사 제휴,

재한 외국군 지위에 관한 모든 조약을

재검토하라.

시국 변화에 따라 현실성 있고 주권이 보전되는

내용으로 보완·개폐하라!”

역사적인 국회 건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뒤

박정희는 국방부와 외무부에게

각자 제 역할을 하도록 지시했다.

청와대의 각본에 따라

1966년 10월 국방부는 조약을

깊이 분석해 작성한 기밀문서를

외무부 등 정부 부처에 보내

조약의 전면 개정이 필요함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야 제4조의

주한미군 주둔 권리는 목적도 책임도 불분명하여,

미군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이

한국의 안보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

미국이 우리 생각과 달리

중국을 겨냥한 전략무기를 배치해도

우리는 막을 길이 없으니,

당장 사전협의제를 도입하라!"

당시 국방부의 분석은

미국이 유럽연합 등 다른 외국과 맺은

군사관계 등을 참고할 때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오늘날 제기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것으로

정교하고 치밀했다.

그러자 미국이 반응했다.

워싱턴은 한국군의 월남 증파에 대해

한국 정부에 ‘성의’를 보였고

박정희는 미국 부통령 험프리의

타협안을 수용하며

차지철이 벌이던 개정의 깃발을

슬그머니 내리게 만들었다.

공작의 마지막 수순인

소방수 역할은 외교부가 맡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한미간 중요현안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더 나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실리를 챙긴 박정희는

자신이 휘둘렀던 자주의 칼을 칼집에 넣었고,

충복 차지철을 앞세운 공작정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후 박정희는 한층 지독한

독재의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한미동맹 수호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목소리를

국가보안법의 이적행위로 묶어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으니,

이때 심어진 공포의 뿌리가

수십 년 간 동맹을 성역화 하는 족쇄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한미동맹을

정면에서 다루기를 겁내는

체질은

박정희 공포정치의

후유증에 감염된 결과라 할 것이다.

2026년 현재 민주주의 공간이

시민사회의 거듭된 혁명적 투쟁으로

넓어진 상황을 직시할 때

두 국가론이후 등장한

자주 회복은

한미동맹의 문제를 정밀하게 분석해

문제를 해소하는

작업이 우선이어야 하지만

양키 고우 홈이라는 구호와

미국의 솜털하나 자극하지 못하는

구호, 성명서를

수십 년째 반복하는 실정이다.

60,70년대 군사정권의 탄압이

자심하던 때의 모습과 흡사해

윤동력이나 파급력을 키우기 위해

연대하는 것을 주저하고

대중화는 큰 관심이 없이

자기들만의 리그에 매몰되어

양의 창자처럼 뒤얽혀 한국을 구속하는

한미군사관계에 대해

그 실체를 방치한 채

수박 겉핥기식의 전략전숙에

매달리거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미맹(미맹)이 지배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한미동맹은 우군관계라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수많은 법적·행정적 끈으로 얽혀

미국이 슈퍼갑, 한국이 을인

거미줄로 얽힌 촘촘한 구조다.

미국은 후발제국주의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한국을 동북아 대륙국가에

대처할 최전방 기지로

만들어 미국익을 위해 써먹기 위해

가능한 모든 변수에

대처한다는 목적으로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통제할 장치를

한미동맹이라는

거미줄로 얽어놓은 것이다.

이 거미줄은 미국을 절대시하는

방패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자주에 대한 상식에 비춰보면 자명하다.

지피지기를 철저히 하면

예속구조를 타파할 방법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국익에

한국을 정밀하게 조율시키는 장치다.

한국은 이 거미줄 속에서

안보를 보장받는다는 거대 담론 속에서

미국이 '위협'으로 규정하는

대상에게는 함께 맞서야 하고,

미국이 '금지'하는 기술이나 전략은

추구하지 못하는 구조적 구속에 갇혀 있다.

이 동맹에 포함된 조약, 협정법률들은

한국의 손발을 묶고, 합의들은

한국의 시야를 가리며,

회담들은 한국의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런 구조는 그 출발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점에서

이 조약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가 이 조약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미국에 들이댄 것은 참고할 만하다.

당시 박정희가 일견 통 크게

미국과 한 판 벌인 것은,

미국이 한국군의 월남 증파를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주둔군 협정(SOFA)에 대한

협의를 질질 끌면서 합의를 미루고 있는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는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리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국회 등에서 지적토록 만들어

미국이 요구한 한국군 5만 명의

월남 증파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반대급부를 더 얻어내고

십여 년째 지연되고 있는 SOFA 타결을

시도한 것이라 한다.

그가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의 폐기 선언을

염두에 둔 듯한 기세로

다수의 정부 기구를 동원해

일사불란한 정치 행위를 펼치자

미국이 놀랐는지 월남 국군 증파 반대급부로

박정희가 요구한 경제원조 등을 수락하고

SOFA에 즉각 합의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외국과 맺은 조약이나 협정 파기, 변경 등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체질인 것을 알고

박정희는 국회를 맨 먼저 동원했고

국방부를 앞세웠으며

최종 수습도 외교부의 건의에 따르는 형식을 취했다.

장기집권 속 독재를 자행한 장본인이지만

통 크게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은 인정할 만하다.

박정희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미국의 간담을 서늘케 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점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1966년 3월 12일 차지철 의원 등

55인이 국회에 제출한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 건의안’과

1966년 7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결의안’의 핵심 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 건의안은

차지철 의원을 비롯한 55명의 국회의원이

국군의 월남파병 상황에 발맞추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을 지적하고

정부에 개정 협상을 촉구하며

국회외무위원회에 제출했는데

그 주문과 제안이유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주문】

정부는 대한민국 안보의 완벽을 기하고

한·미 양국의 긴밀한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권리 부여 조항 및

제3조의 발동 요건을 시국 변화에 적응하도록

현실성 있고 주권이 보전되는 내용으로

보완·개정할 것을 미국 정부와 시급히 교섭할 것을 건의한다.

【제안이유】

조약을 맺은 지 10년이 지나면서

극동 및 국제 정세는 다변화되었으며,

특히 한국군의 해외 파병 등으로

한·미 군사 제휴의 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현행 조약 제4조의 미군 배치 '권리(Right)' 조항은

그 목적과 책임 한계가 불분명하여

미국의 독자적 행동에 의한 주권 침해 우려가 있고,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우므로,

상호 '사전 협의제도'를 도입하는 등

불평등한 요소를 제거하고

국가 주권을 보전할 수 있도록

조속히 보완·개정되어야 한다.

이 건의안은 국회 외무위원회의 심사를 거쳤고

이어 1966년 7월 8일 제57회 국회 본회의(임시회)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에 관한

공식 결의문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공식 결의안에 담긴 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국회는 한국의 방위 문제와

한·미 군사 제휴 및 재한 외국군의 지위에 관한

모든 조약과 협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시국의 변화에 적응하고 현실성 있으며

국가의 주권과 안전보전이

확고히 구현되는 내용으로 보완·개폐하도록

정부가 미국 정부와 적극적인 교섭에

나설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

특별히 현행 조약 제4조에 의하여

허여된 미합중국 군대의 배치 권리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영토 주권에 부합되도록

공동 협의 체제를 확립하여야 하며,

행정협정(SOFA)의 체결과 병행하여

상호방위 체제의 불균형을

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국회의 결의안 통과 이후, 국방부가

이를 분석하여 1966년 10월 외무부로 검토 보고서를

발송해 조약 4조(미군 주둔 권리)의 모호성,

미군 독자 행동 위험,

중국 겨냥 전략 무기 배치 우려 등을 전달했다.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한미상호방위조약 검토 결과에 관한 조치의 건

【분석 및 건의 내용】

o 시국 변화와 조약의 전면 개정 필요성:

본 조약이 체결된 지 10여 년이 경과함에 따라

극동 및 국제 정세에 막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는바,

현행 조약체제의 전면적 개정이 요구된다.

o 제4조(미군 배비 권리)의 모호성과 독자 행동 위험:

현행 조약 제4조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한국 측이 '허여(Grant)'하고

미국 측은 이를 '수락(Accept)'하는 일방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주둔 목적과

미국의 책임 한계가 불분명하며,

주한미군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안보에 유해(有害)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o 전략 무기 배치 및 주권 침해 우려:

특히 미국이 자국의 아시아 전략(대중공 전술 등)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 없이

특정 전략무기를 한반도 내에

독자 배치하거나,

주한미군 전력을 타 지역으로 기동 전개할 경우

이를 방지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전무하다.

o 결론(사전 협의제 도입):

따라서 미군의 배치, 기동, 무기 반입 시

대한민국 정부와의

'사전 협의제도(Prior Consultation System)'를

조약 본문 또는 부속 문서에

반드시 명문화하여 국가 주권과 안전을

확고히 보전하여야 한다.

국방부의 문건을 접수한

외무부(당시 이동원 외무부 장관 등)는

이를 깊이 검토하였으나,

당시 진행 중이던 한미행정협정(SOFA)의 비준과

베트남 파병에 따른 미국의

추가 경제·군사 원조(브라운 각서)라는

당면 과제를 고려하여

'상호방위조약 본문의 당장 개정'에는

현실적인 난제가 있음을 회신 및 부처 간

회의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외무부 검토 및 회신 요지】

o 국방부 분석의 타당성 인정:국방부가 지적한 제4조의 불평등성과

'사전 협의권' 부재가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 및

안보 유해성 측면에서

중대한 결함이라는 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o 외교적 현실과 협상 시기의 제약:그러나 미합중국 정부는

안보조약 본문의 개정

(특히 나토식 자동개입 조항 개정이나

제4조 권리 수정)에

극구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현재 13년 만에 어렵게 타결되어 비준을 앞둔

'재한미군지위협정(SOFA)' 체결 국면과

월남 파병에 따른 한미 유대 관계를 고려할 때,

조약 본문의 개정을 전면 요구하는 것은

미 행정부 및 미 연방 상원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외교적 위험이 있다.

o 대안적 조치 (우회적 확보):따라서 조약 자체를 개정하는 방향은

장기 과제로 유보하되,

당장 발효될 SOFA 협정의 운영(시설 및 구역 분과위 등)과

한미 고위급 공동성명(한미 외무·국방 회담 등)을 통하여

미군의 중대한 이동 및 무기 배치 시

'사실상의 사전 통보 및 협의 체제'를

실리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점진적으로 추진함이 타당하다.

국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된 지

딱 이틀 뒤인

1966년 7월 10일, 마침내 오랜 협상 끝에

주한미군의 지위를 규정하는

한미행정협정(SOFA)이

정식 조인되었다.

국회의 결의와

국방부·외무부의 내부 분석은

비록 당장 1966년에 상호방위조약 자체를

전면 개정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미국을 압박하여

SOFA 협상을 타결 짓고

향후 한미 안보 협의 체제(현재의 SCM 등)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이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뒤

13년간 SOFA 협상을 거부했는지

그 이유를 살피면 자국 이익에

안면몰수 하는 식의

미국 민낯이 드러난다.

즉 주한미군은 1945년

한반도에 진주해 1949년 철수할 때까지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 치외법권적 지위가

1950년 대전협정으로 법적으로 명문화됐고,

1966년 SOFA 체결 전까지 유지됐다.

미국은 점령군 위상과 맞먹는

치외법권적 지위를 마냥 누리고 싶어

SOFA 타결을 외면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직후

곧바로 주한미군의 법적지위에 관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부정적 태도와 협상 거부로

이승만 정부에서는

예비협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SOFA가 없는 상태가

미국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대전협정 하에서 미군은

어떤 한국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미국식 합리주의는 협상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뒤

장면 정부 시기인 1961년 4월 17일

SOFA 협상을 위한 실질적인

첫 예비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예비회담은 5 · 16군사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고,

결국 그 임무는 새롭게 등장한 군사정권에게 넘어갔다.

군사쿠데타 이후 새롭게 출범한 

박정희 정부는

81차에 걸친 교섭 끝에 1966년 주한미군지위협정을 체결했다.

이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본 협정문 이외에 합의의사록(Agreed Minutes),

합의양해사항(Agreed Understanding),

형사재판권에 관한 한국 외무장관과

주한미국대사 간의 교환서한(Exchange of Letters)의

세 가지 부속문서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본 협정은 1950년 ‘대전협정’에 비해

외형적으로는 한 · 미 간의

불평등성을 많이 개선하였으나,

나머지 3개 부속문서가

본 협정의 내용을 상당히 제한했다.

예를 들어 형사재판권 문제는

본 협정에서 한국이 원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부속문서에서 미국이 원하는 내용으로

본 협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타결되었다

1953~1966년까지

SOFA 이전 주한미군의 실제 법적 지위는

1950년 7월 12일 임시수도 대전에서

체결된 대전협정으로 사실상 치외법권 상태였다

그 결과 미군군법회의가

주한미군 구성원에 대해 전속적 형사관할권을 행사하고,

한국인이 미군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하여

가해행위를 했을 때 미군은 그 한국인을 구속하며,

주한미군은 미군 이외의 여하한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미군 이외의 여하한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 조항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가능했는가?

군사 작전·무기 배치 측면에서 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을 동북아 전략용으로 활용하면서

핵무기나 등의 한국 배치에서

미국이 실효적인 사전 협의를

한국 정부와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58년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남한에 반입할 때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

SOFA가 없었으니 통보 의무조차 없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에 의해 주한미군 기지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성역이 되어

점령군이 지배하는 것과 흡사한

치외법권의 영토가 되었다.

그 결과 주한미군은

대륙을 향한 군사작전을 자국의 비밀유지법에 의거해

한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은 채

국제법에 저촉될 소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강행해 왔고

오늘날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앞세워

중국, 러시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공공연하게 벌이고 있다.

그 뿐인가 주한미군기지는

수십 년간 기름이 유출되어

지하수가 썩어 문드러지고

온갖 발암물질이 인근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해도,

미군은 '원상회복 의무 없음'이라는

조항 뒤에 숨어

정화 비용 한 푼 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 언론의 주한미군 실태에 대한

해괴한 침묵 속에

기세가 오른 미국은

주둔비의 청구서를 높이 들고

갑의 위치에서 한국의 주머니를 털어가거나

미제 무기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

한국 정부는 제 나라 땅을 내어주고

돈까지 얹어주면서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미국 눈치만 살피고 있어

굴욕의 역사는 언제 끝날지 안개속이다.

박정희의 한미동맹 문제제기 이후

오랜 침묵의 긴 시간 지난 뒤

2017년 가을, 마침내 한 시민이 분노하여

헌법재판소에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박정희가 1966년 국회와 국방부 등을 통해

이 조약의 문제를 제기한 이후

60년 동안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이 조약이

국민의 존엄과 주권을 짓밟고 있다!”

“이 조약은 헌법 10조(존엄·행복추구권),

35조(환경권), 37조, 66조(대통령 주권수호),

120조(국토 균형개발)에 위배된다.”

그 시민은 국격의 상실과 영토의 오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되찾겠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사드 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에

중국의 보복을 초래했고

국내 경제는 타격을 입었으며

국민의 알 권리는 짓밟혔다."

이 시민은 동시에

한미동맹의 부당성을 다양하게 지적했다.

“SOFA 4조 1항에 따르면 미군은 기지 반환 시

원상회복 의무도, 보상도 없다.

‘키세(KISE)’ 기준으로만 책임지며,

실제 적용 사례는 전무하다.

용산 기지 오염 정화에 수조 원이 들 텐데,

그 부담을 한국 국민이 짊어진다.

방위비 분담금은 매년 1조 원 이상

불용액은 천문학적 액수로 쌓여가지만

감사원 감사조차 불가능하고

국민 혈세가 외세에게 퍼주는 구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제3지정재판부는

"각하"라는 차가운 결정을 내렸다.

"청구인은 간접적 이해관계자일 뿐

기본권의 현재적, 직접적 침해가 없다"며

비겁하고도 상식에 맞지 않는

법리 뒤에 숨어 심판 청구를 뭉개버렸다.

사법부마저 동맹의 신성불가침이라는

우상 앞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이 시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심적 고통과 갈등은

충분한 증거가 아니란 말인가"라며

재심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다시 외면했다.

헌법재판소가 만약

박정희 정권이 1966년 작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읽었다면

그런 무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미국이 다른 외국과 맺고 있는

군사조약, 협정이 주권국가간의

상식적 내용이라는 것을

헌재 재판관들이 파악하는

수고를 해서

판결에 적용했다며 어떤 하는 아쉬움은 하늘을 찌른다.

국민 세금으로 봉급을 타가는

헌재 재판관들의 해괴한 결정은

역사적으로

언젠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헌재도 그렇지만

정보 강국이라 칭송받는 이 땅에서

정치권, 언론, 학계 등이

오늘날

한미동맹의 참상에 대해선 침묵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분통터지는 일이다.

거듭된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 공간이

확장되었는데도

국내 기득권층이

보도지침이 없어도 스스로 입을 다물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칭송하며

이 조약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양

침묵을 지키는 것을

국제사회가 비웃고 있다,

주권 국가가 자국 군사 주권을

외국에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짓인지를 필리핀, 일본의 경우에 비추면

명명백백해진다.

필리핀은 자국 기지에

미군 부대를 설치하라 규정하고

미군의 자유로운 활동에 제한을 두며

일본도 미국과 평등한 조건의 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불평등을 감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인가, 집단세뇌의 결과인가

냉전의 유산인가, 아니면 의지의 부재인가

이승만이 만든 조약이

오늘날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하나

그 그늘은 너무 심각하다.

주권의 상실, 환경의 파괴, 재정의 낭비,

그리고 심각한 거대국가간의 전쟁의 위협

이 모든 것이 한미동맹의 대가라 할 것이다.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 부족

외세에 국방을 위임하는 주체성 문제

이것이 국치가 아니면 무엇인가.

미국이 한미동맹을 앞세워

남북교류협력에 개입하면서

남북한이 결국 두 국가론으로

치달았다는 사실 등을

냉정한 시각으로 직시하자.

박정희가 문제 삼았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차지철이 건의했던 이 조약에 대한 개정안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공론화하자,

침묵을 깨고 진실을 말하자.

삼척동자도 손가락질할

동맹 사수의 논리를

헌재 재판관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 현실을 정상화하자.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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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2026.07.21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2 - 미국, 대일강화조약 체결 시 한국 짓밟아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1945년 조선은

36년 식민의 상처를 안고

해방의 새벽을 맞았으나,

그 새벽은 완전한 아침이 아니었다.

국토는 둘로 갈라졌고,

민족은 서로 다른 깃발 아래 서게 되었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꿈은

분단의 철조망에 걸려 찢겨졌다.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래도 정의가 오고.

식민의 고통과 강제징용의 피눈물,

성노예의 절규와

약탈당한 산천의 아픔이

국제사회의 법정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으리라고.

소련의 군사력이 만주를

순식간에 휩쓸어버리자

미국은 경계하며

한반도를 절반으로 갈라 친 뒤

소련 견제할 냉전구도를 만들고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추진했다.

일본을 미국의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목적 아래.

그러나 대일 강화조약 협상이

진행되면서 조선의 기대는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전쟁을 끝낸다는 이름의 회의장에는

승전국들이 모였으나,

안중근 의사의 투쟁,

3.1 독립운동 등으로 일제에 항거했던

한국의 자리는 없었다.

발언권도 없었으며,

서명할 펜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문밖에 서 있었고

가해자 일본의 미래는

회의장 안에서 따뜻한 분위기 속에

논의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은 말했다.

“일본은 다시 일어서야 한다.

경제를 회복해야 하고,

소련과 중국을 막아야 하며,

아시아의 반공 보루가 되어야 한다”.

그 말은 곧

배상은 줄어들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전쟁범죄의 책임은

최소한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독일에게는

베르사유의 무거운 사슬을 채웠던

서구가 일본에게는

새로운 출발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 위에서

국권 침탈의 아픔

강제징용의 한숨도,

군 위안부의 통곡도,

식민지 백성들의 피와 눈물도,

국제정치의 뒷골목으로 밀려났다.

1945년만 해도 미국은 말했다.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후유증으로

배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1949년 이후 입장을 뒤집고

"한반도는 연합국 자격을 상실했다"며

일본의 배상 부담을 덜어주기에 골몰했다

냉전의 그늘 아래 원칙은 사라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전후를 통해

한국은 일본의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큰 목소리로 주장했다.

한국은 1905년부터 일본의 실질적 지배를 받은

식민지였기 때문에 40년 동안의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강제 징용은

물론 문화재, 금, 토지 강제 수용 등을

배상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한국을

세계 2차 대전 연합국에 포함시키지 않고

단지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일본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규정했다.

필리핀에 대한 배상의 경우도

2차 대전 당시 일본에게 당한 피해에

국한했다.

이어 미국은 일본이 배상할 대상의

국가 범위를 2차 대전 당시

일본과 교전한 국가로 축소하는 방침으로 변경하고

남북한, 중국을 회의 초청대상에서도 제외했다.

미국의 원칙은 고무줄처럼 작동하면서

일본을 친미화하는 쪽으로 집중했다.

국제적 규범은 물론 상식도 외면한 것은

물론 규탄 받을 짓도 저질렀다.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관에서

일본과 48개국이 맺은 평화조약

한국은 서명조차 못했다.

40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연합국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미국은 협의 과정에서부터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며

일본의 전쟁범죄 배상 조건 논의에서

한반도를 아예 외면했다.

미국무부는 파렴치한 괴문서까지

유포했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기여했다"

남한에 남겨진 일본 자산이

한국의 배상 청구액의 4배라는

미국 국무부의 해괴한 계산법으로

도둑질한 장물을 합리화했다.

식민의 수탈과 탄압으로 가득 찬 세월을

근대화로 둔갑, 미화시킨 것이다.

삼팔선 이남에 일제가 남겨두고 간

적산(敵産)의 무게가

한국이 요구하는 전쟁 배상액의

네 배에 달한다?

조선에 남겨진 일본인 재산이

배상액보다 많다?

미국은 철도와 공장, 건물과 시설을 들먹이며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와 아픔을

회계장부의 숫자로 환산하려 했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긴 고통을

무슨 숫자로 셀 수 있으며,

언어, 이름을 빼앗기고

독립운동 탄압 속

목숨을 빼앗긴 세월을

어떤 회계장부에 적을 수 있단 말인가.

일제의 식민지배는 단순한 점령이 아니라

토지와 자원과 노동과 기억을 빼앗은

총체적 수탈이었다

그러나 전후 대일조약의 논리 속에서

그 폭력은 희석되었다

침략은 경제정책처럼 설명되었고

수탈은 근대화의 그림자로 위장되었다

강제동원은 통계가 되었고

성노예는 침묵 속으로 밀려났다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와

강토를 빼앗고 자원을 수탈한 뒤

버리고 간 연장들이 더 비싸다고

속삭이는 해괴한 논리였다.

정상적인 경제의 열매가 아닌,

강도질로 일군 장물을

돈으로 환산하여

배상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던 파렴치한 행위.

한민족의 역사적 고통과

도덕적 청구권을 사악한 논리로 유린한 것이다.

국내 일부 학자들이 맹종하는 식민사관의

수치스러운 뿌리는

미국이 만든 흉악한 논리에서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무뇌아적 사관은 그때,

미국이 뿌린 악마의 씨앗에서 잉태된 괴물이다.

독도 또한 그 추악한 계산속에서 흥정거리가 되었다.

동해의 외로운 바위섬은

초안에서는 한국 땅이었다가,

다른 초안에서는 일본 땅이 되었고,

또 다른 초안에서는

아예 이름조차 사라졌다.

조약 협상 과정에서

다섯 차례 초안까지는 독도가

한국의 땅으로 명시되었건만

여섯 번째 초안에서 갑자기

일본 땅으로 했다가

일곱 번째부터는 이름조차 사라졌다.

한국이 항의했다.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고,

강제동원과 문화재 약탈,

토지 수탈의 책임을 물으려 했다.

그러나 미국은 말했다.

“그렇게 되면 조약이 복잡해진다.”

“일본의 재건이 늦어진다.”

“냉전의 전략에 방해가 된다.”

조약 협상 과정에서의 파행이 심화되어도

이승만은 적극 나서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이승만은 불만이 있을 때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작업을

항상 했다.

정전협정 협상 과정에서도 계속 백악관에

친서를 보냈다.

이승만이 정전협정을 반대하는 친서를

미 대통령에게 계속 보내도

반응이 없자 그는 반공포로를

독자적으로 석방까지 했다.

정전협정의 판을 흔들려 벼랑 끝 외교를 펼쳤다.

미국이 발끈했고 이승만을 제거할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지만

대안 부족이라며 중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관련해

미 대통령에게

직접 친서를 보낸 기록이 없다.

그는 분단과 북진과 대결에 집중했을 뿐이다.

이승만의 시선은

한반도 내부의 전선에 고정되어 있었고

아시아 전체의 전후 질서를 둘러싼 문제에는

충분히 닿지 못했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들은

북진통일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지만

전후 동북아 질서의 정의를 묻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이승만은 포화 속에서

오직 '북진통일'의 함성만을 지른 것이다.

이승만의 태도는 일면 통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할 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군사적 주권을

미국에 송두리 채 넘겼기 때문이다.

그가 북진통일을 염원했다면

군 통수권을 확실히 확보하는 식으로

미국과 협상하지 않았을까?

당시 한국군의 수는 60만 명에 육박해

자주국방을 이룰 만한 규모였다.

그런데도 미국에게 점령군의 지위를 보장해

일제의 침략이 물러간 강산이 외세의

군사적 지배를 받게 했다.

왜 그랬을까?

이승만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어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그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

즉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를 만들려는 구상에

침묵으로 협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의 외교적 감각이 미국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집권유지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날 중러 압박을 위해 활성화된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는 6.25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이 구상한 것으로

주한미군이 치외법권적 특권을 지니며

그 핵심적 중추역할을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 일본과의 안보조약과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으로

지난 70 여 년간 미국에 의해

한일간의 감정대립에도 불구하고 유지, 강화되어 왔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일본의 책임을 줄이고

피해국의 발언권을 약하게 만들어

일본의 친미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활용되고

이승만은 그런 미국의 속셈에 침묵으로

적극 기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의 식민지배 기여론과

‘배상액보다 4배’라는 식의 해괴한 논리를 내놓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침략 피해를

가장 오래, 심하게 당한 한국이 침묵해야

다른 일본 피해국들의 입지가 좁아져

일본의 배상 책임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논리를 연이 내놓은 것이다.

미국이 파렴치한 계산법 등을 앞세워

식민 강탈의 범죄를

정상적 행위처럼 둔갑시키면서

국제법의 언어는 흔들리고

도덕의 기준은 뒤집혔다

빼앗긴 땅의 자산은

강탈자의 정당한 소유가 아니라

폭력의 증거인 것이다

그것을 악마적 계산법으로 환산해

배상의 크기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피해의 본질을 지우는 또 다른 폭력이었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탐해 그렇게 했다.

그 추악한 행위로 동북아 냉전 구도 속

한미일 군사협력 시스템이 발족하고

일제의 식민지배기여론이라는

해괴한 언어로 이어졌다

폭력은 공로로 둔갑했고

침탈은 발전의 조건으로 포장되었다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

샌프란시스코 문서 속에서

뒤집히는 죄악이 범해졌다

독도 문제도 그랬다

조약의 초안이 바뀔 때마다

그 섬의 이름은 오락가락했다

한국이었다가 일본이었고

다시 사라졌다

국제문서에서 이름이 빠진다는 것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그것은 미래의 분쟁을

남겨두는 방식이었다.

독도에 대한 미국의 망발과 무원칙은

대단히 심각하고 무겁다.

미국은 독도로 인한

영토의 분쟁 소지를 남겨두어

한일간의 영토분쟁과 갈등을 구조화했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한 독도 도둑질을

거짓말로 꾸며

교과서에 넣고

일본 청소년에게 가르치고 있다.

한일 미래 세대의 전쟁 불씨를

심어 놓고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이 우연일까?

아니다.

그 뒤에 미국의 더 치밀한 계산이 있다.

향후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독도 영유권 보호를 위해

참전할 국제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체제를 위해

설계한 전략 구도의 일부라 한다.

거짓말일까, 사실일까?

어느 것이 사실이라 해도

독도 영유권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책임은

영원히 벗을 수 없다.

이 부분에서 또 이승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강 건너 불 보듯 한 것은

미국의 신냉전 전략이

이 조약을 토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더 짙어지는 것이다.

미국에게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북아 전략은 미국익 추구를 위해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였다.

그것을 눈여겨 본 이승만이 미국을

도와주기 위해 거리를 둔 것이란

의혹은 그가 미국과 합의한

한미상호방위조약 2,4조에서

더 짙어진다.

미국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을

주한미군이 비밀리에 수행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외국군 주둔의 공식은

대등한 주권국간의 상식적인 관계로

당시 유럽연합 회원국과 미국의 군사관계 등에서

쉽게 확인되는데도

이승만은 미군을 점령군에 흡사한 괴물로 받아드렸다.

이승만이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동맹의 골격을 만드는 식으로

미국에 몰빵한 의혹에 대한

진위 여부가 더 이상 침묵 속에

방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샌프란시시코 강화조약

조인식이 열리던 날,

미국이 한국에 내민 마지막 배려는

회의 참석의 권한도, 발언의 기회도 없는

'비공식 게스트'의 자격을 준 것이었다.

단지 대표단이 숙소 호텔을 예약하는 데만

도움 되는 미 정부의 조치였다.

그 뼈아픈 모욕 앞에서도

이승만은 여전히 침묵했다.

협상 초기부터 한국은 참여를 요구했지만

그 요구는 번번이 낮춰졌다

처음에는 협의국이, 다음에는 옵서버가 되었다가

마침내 비공식 손님이 되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한 국가가

전범국 일본에 대한 강화조약 회담에서

존재감 없는 손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국제적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역사를 구경꾼으로 전락하거나

강대국 미국에 무한대로

봉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뿐이다

미국은 비공식 손님으로 전락한

한국을 대외적으로 가차 없이 짓밟았다.

호텔 예약을 돕는 배려만 주어졌을 뿐

역사적 정의를 위한 좌석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승만은 그 과정에서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 백악관 앞에서 난리를 쳐도 모자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그 날

이승만이 분노에 떨었다는 기록조차 없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정의는 공식적으로 짓밟히고,

미국의 전략이 승리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전범국가에서

반공 동맹국으로 변신해

동북아의 미군기지가 되어 경제 부흥의 길이 열렸다.

한국의 배상 문제는

피해국들과 개별적으로,

일본과 일대일의 형식으로 해결하라는

말 한마디로

미래로 미뤄졌다.

전범 일본이 갑이 되게 만든

배상 해결 방식으로 초래된 그 미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이 나올 때마다,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제기될 때마다,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역사는 다시 묻는다.

“그 시작은 어디였는가?”

전후 재일동포 60만 명이 방치된 것도

역사적 범죄의 하나다.

배상 문제를 핑계로

일본은 강화조약 협의 과정에

한국의 참여를 반대했고

미국은 그 논리를 받아들여

한국을 비공식 게스트로 전락시켰다.

그 전말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1951년 초 한국의 조약 참가를

과거에 비해 긍정적으로 검토하자

일본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만약 한국이 강화조약 서명국이 된다면

일본 거주 재일동포 60 만 명은

연합국 국민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일본이 2차 대전 전쟁기간 동안

압류한 재산 등에 대해 배상할 책임을

지게 된다는 이유를 일본이 들고 나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미국 쪽에 전달했고

결국 미 국무부는 재일동포들이

불법행위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일본 정부가 배상의무를 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으로 입장을 취했다.

1951년 4월 23일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가 연합국 국민의

지위를 획득하지 않는 조건이면

한국의 조약 참여에 동의한다고

미국 정부에 통고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그 해 5월 16일

영국 대사와 협의한 뒤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참여 문제를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한국이 조약 참여시

조약 체결이 지연될 것이라 했고

미국은 그해 7월 3일 한국 정부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서명국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통보했다.

일본 전후 처리에서

미국은 베르사유의 교훈을 외면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을 요구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군국주의를 부추겨

2차 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했다.

미국은 그 교훈을 왜곡하여

일본의 배상 책임을

대폭 약화시키며

개별 피해국들과 협상하도록 방치했다

당초 포츠담의 선언은 이렇지 않았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철저한 배상을 명했고

일제의 산업시설을 한반도로 이전하여

파괴된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했다.

그러나 세계 1차 대전 독일의 전범들을 처단하던

그 엄숙한 국제법의 서슬이

냉전의 바람 속에서 180도 뒤집혔다.

미국은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보복이

독일 군국주의를 깨웠다는

핑계를 대며

일제의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미국이 일본 항복 직후

일본군의 악마적, 반인륜적인 생체실험 자료를 챙긴

파렴치한 태도에서 그 정체가 드러난다.

미국은 일본 731 부대가

자행한 만행조차

연구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덮었다.

국가 이익을 앞세운

냉혈한 적인 거래 앞엔

정의도, 인도주의도, 역사적 청산도 존재치 않았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군사적 현실을 이용했다

전쟁 속에서 한국군은 커졌고

그러나 주권은 그에 비례해 커지지 않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동맹의 이름을 가졌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적 권리를 강화했다

남한의 주둔은 권리로 규정되었다

한국은 스스로를 지키기보다

누군가의 전략 안에 놓인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일본의 반공 전진기지화를 위해

한국의 역사적 고통과 손실을 외면했고

오늘날까지 그 잘못을 함구한 채

‘미국은 한국의 은인’이라는 가짜 구호를 외치게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뒷배를 믿고

전범국가의 부끄러움조차 버린 채

독도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을 외면하며

뻔뻔스러운 태도를 굳히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살렸고

일본은 다시 강해졌으며

한국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독도는 그 상징이,

강제징용은 그 증거가 되었고

식민지배의 책임 문제는 방치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평화의 도시로 남았으나

그 평화의 문서 속에는

가장 오래 고통 받은 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그 빈자리는

아직도 세계의 한쪽에서

역사를 향해 묻고 있다

누가 배제했는가

누가 침묵시켰는가

누가 그 침묵 위에 질서를 세웠는가

이제 그 질문은

과거를 향한 탄식이 아니라

현재를 향한 질문이다

정의가 유보된 전후 체제는

결코 완결된 평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불완전한 질서가 만든 긴 그림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한반도는 분단의 고통 속에 머물러 있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261 2026.07.18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1 - 불평등 한미동맹 70년, 미 국익 추구 과정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미동맹은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고 오늘날과 같은

번영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극동전략의 추진 과정에서

한국전쟁 참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이 이뤄진 것인가?

한미동맹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나 설명은 제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사실관계에 입각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그 핵심을 살피면

한미동맹은 미 국익 추진 과정이었고

오늘날도 현재 진행형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 일각에서 ‘미국 구세주’라는 식의

칭송을 하는 것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파생된

‘떡고물’에 감지덕지 하거나

분단기생에서 챙긴 이익에 취해 토해내는

가짜뉴스라 하겠다.

미국은 한반도 지역이나 그 주민에 대한

‘사랑’ ‘애정’을 최우선한 적이 없다는 것은

지난 150 여 년 간의 한미역사에서 확인된다.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특히 미국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20세기 최악의

불평등 조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조약은 미국이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심대한 군사적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약은 모두 6개 조항으로, 이 가운데

▲자동 군사개입 여부 ▲대상 지역

▲주한미군 주둔 근거 ▲유효 기간

▲적용 범위 등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다.

이 조약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미국의 아시아 패권주의 강화 목적이

담긴 내용으로 체결됐다.

이승만은 이 조약과 정전협정을 맞바꾸는 식의 정치를 했다.

그는 정전협정 체결에 극력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황당했다.

만약 정전협정이 맺어지면

한국이 중국과 북한에 의해

패망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협정체결 당시 한국군은

전체 유엔군 932,964 명 가운데

절반이상인 590,911 명이었고 미군은 302,483 명이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대가로

파격적인 경제 원조 등을

한국에 약속한 상태여서

국군은 상당한 정도의 방어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반공포로를

국제법에 반하는 식으로 석방하거나

미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개인 서신을 보내 반대한다고 외쳤다.

이승만이 당시 정상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판단했으면

아마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아쉬운 일이다.

이승만은 국제정치의 상식,

국가관계의 기본원칙도 깡그리

배제한 멍청이 정치꾼이었다.

그는 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전협정에 동의하는 대신

군사적 식민지를 초래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는 것으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승만이 국가 군사주권을 송두리 채

미국에 퍼주기 한 조약이었다.

일제의 식민지침략으로 국권을 강탈당한

아픔을 겪고 독립한 신생 정부의 군사적 주권을

이승만이 미국에 넘긴 것은 주권국가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국제적 수치의 역사를 남긴 것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우선 미국의 군사력 배치가

권리로 규정되어 있어

군사력 외부 도입을 규제한

정전협정에 위배되고

90년대 남북기본합의서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조약은 평화협정을 저지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미국은 국익을

극대화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은 자국 군대를

일방적으로 한국 어느 곳에나

배치하도록 되어 있으며(조약 4조),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일방적으로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2조).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고 되어 있어(6조)

미국이 우월한 위치에서 미군의 무기한 주둔이 가능하다.

이 조약을 바탕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사령관 등 3개의 모자를 쓰고

한반도 및 동북아군사전략을

다각도로 추진할 수 있는 기초적 여건을 제공한다.

이 조약에 따라 한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국제연합의 토의와 결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개입할 수 있으며

사후에 보고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이 조약에 의해 미국은 70 여 년 동안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상대로 미 본토 수호를 위한 세계전략을 수행하면서

미국 법으로 그 공개를 금지하고

한국 정부도 그에 따르게 만들고 있다.

대신 한미 두 정부는 주한미군이

단지 대북 방어용이라고

합창을 하는 식으로 70년이 넘도록

국민을 속이고 있다.

국회, 언론도 침묵한다.

이 조약에 의한 주한미군 ‘비밀’과 ‘기만’은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을 좁히고 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게

남북한을 관리하는 묘기(?) 대행진을 벌이고 있다.

남한에서는 주한미군이 치외법권적 특혜를 누리면서

슈퍼갑으로 한국군위에 군림하고

주한미군 사령관이 점령군 사령관처럼

행세하며 한국 정부와 맞장 뜨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역대 정권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이 조약을 근간으로 한 한미동맹 준수, 강화를

합창하고 있다.

미국은 이 조약을 통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중국과 소련, 러시아 군사전략은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전략,

한반도 전면전을 대비한

다양한 군사전략을 만들어놓고

정기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통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압박하면서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분단 유지책을 강화한다.

남북교류협력에도 개입해 강약을 조절하고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주한미군의 이익을 더 챙긴다.

미국이 가끔 주한미군 감축 등을 말하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 작전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관리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상태를

유지해 한국내 검은 머리 미국인들을 겁박해

주한미군 주둔 비를 더 받아내고

미국 무기를 더 사도록 만드는 효과도 크다.

이 조약은 주한미군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작전을 가능케 한

전략적 유연성의 길을 터주면서

미중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방위라는 이름의 이 조약은 미국 본토 방위를

제 1순위로 실천하면서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 조성에 역행한다.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등장하는 촉매제가 되면서

한국의 군사적 자주권을

점점 더 깊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든다.

이 조약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등 남북관계의 변화,

80년대 이래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역전현상,

미국의 중국 포외 압박 정책 강화 추세 등으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미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교묘하게 짜여 진 한미동맹의 핵심요인이다.

정상적인 국가 간 동맹으로 만들어야

한반도 평화통일, 동북아 평화와 안전이 가능하다.

왜 그런지 꼼꼼히 살펴보기로 하자.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권리(Right)라는

단어 하나가 있다.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Grant)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Accept)한다."

권리는 법률적으로 자기 의사대로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이다.

Grant는 무상으로 준다는 뜻이고

Accept는 무상으로 받는다는 의미다.

‘한국은 허여하고 미국은 수락한다.’

이것이 동맹의 이름으로 포장된

주종 관계의 언어다.

20세기 세계 어느 조약도 외국군이

타국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내용은 없다.

유엔 회원국간에 맺은

지구촌 유일의 예속적 조약이다.

이 4조에 의해 미국은 원하는 무기를

언제든 주한미군에 배치할 수 있다.

핵무기가, 사드, 탄저균이 들어왔고

무인 폭격기가 들어온다.

전략적 유연성에 의해 사드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이란 전쟁에 차출된다.

미국은 한국의 눈치를 전혀 볼 필요가 없다.

권리만 행사하면 되는 것이다.

전작권을 한국군이 행사한다?

이는 한미연합군에만 해당될 뿐

주한미군은 여전히 조약 4조의 적용을 받고

미 대통령의 통수권 지휘아래

독자적으로 작전하게 된다.

미 정부 기구인 유엔사도

유엔 깃발을 휘날리며

유엔기구인 양 거짓 연기를 하면서

미 국익을 위해 한국 정부의 대북 교류협력 등에

간섭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한국 영토 안에서 두 개의 군사적 주권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비극적 희곡이 왜 문제인가를

외국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자.

미일 안보조약은 한미의 그것과 다르다

미국이 일본과 맺은 미일안보조약 6조를 보자.

"미합중국은 일본에 있는

육해공군 시설이나 지역을

활용할 수 있도록 양허를 받는다."

양허.

그것은 허락을 받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권리다.

일본에서는 양허다.

같은 미국, 엇비슷한 동맹인데

그러나 다른 단어다.

미일 두 국가가 동등한 위치에서 조약을 집행한다.

한미 조약과 다른 점이 더 있다.

일본 조약에는 두 나라간 수시 협의 조항이 있다.

일본의 안보나 동북아에서의 평화가 위협받을 경우

양국이 수시로 협의한다.

한미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

미국이 혼자 판단한다.

미국이 혼자 결정한다.

한국이 그것을 물어볼 조항이 없다.

일본 조약의 유효기간은 10년.

10년마다 갱신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재협상의 기회가 있다.

한미조약의 유효기간은 무기한.

폐기하려면 통고 후 1년.

그러나 여기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1년이란 긴 시간 동안 강자는 약자에게

공식, 비공식적으로 엄청난 카드를 내밀며

흥정하거나 겁박, 강요할 수 있다.

한미간에 맺어놓은 수많은 협정 등을 꺼내

트럼프가 하듯 깡패, 망나니 식으로

밀어부치는 협박공갈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국 관리들은 말한다.

“미국은 막강해서 말 꺼내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

자칫 한국 안보가 위태로울 수 있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한미동맹 덕택 아닌가?

미국은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은인 아닌가?”

과연 그럴까?

미국이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목적 1번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한미군은 지난 70 여 년간 미본토를

중국과 소련, 시아의 미사일 공격 등으로부터

조기에 포착해서 대응책을 강구하는

최전선 부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냉전기부터

중국의 목을 겨눈 비수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 정치인, 군인들은 가짜뉴스에

중독된 세뇌 상태가 심각하다.

미군에 의해 안보보장, 경제발전이 가능했는

대미 찬사를 주문 외듯 중얼거리면서

미국 없이 한국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 있다.

지피지기를 할 때다.

사회과학, 정치경제학적 시각으로 종합적으로

살피고 분석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와 기적은

한국국민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고

국제 환경요인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한국이 경제와 군사력 선진국이 되고

K-문화가 세계인을 열광케 한다.

그게 다 미국 덕택인가?

일부 골빈 인사는 K-팝이

미국 덕분이라고 워싱턴에서 외치기도 했다.

과공은 비례다.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면서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이제 주체의식을 갖고 살피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미국과 지구촌 룰에 따라

흥정할 논리와 배짱이 필요하다.

한국 정치인 중에 트럼프와

맞장 뜰 인물을 찾아야 한다.

여의도에서, 우물안 개구리들처럼

당권, 집권, 국정 장악이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지 않는

정치머슴을 찾아야 한다.

통 큰 인물이 나와 동맹의 문제와

평화통일의 문제를 확 풀어야 한다.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럼 필리핀의 경우를 더 보자.

필리핀과 미국의 동맹은

한미의 경우와 너무 다르다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1898년부터 1946년까지 48년을 지배당했다.

그러나 필리핀 의회가 1992년 결정했다.

클라크 미군기지 연장 불허.

핵무기 반입 금지.

미국이 거절했지만 필리핀이 밀어붙였다.

미군이 철수했다.

한국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가.

필리핀은 주권을 행사했다.

클라크 미군 기지를 문 닫게 만들었다.

국제 관계는 합법적으로 하면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경우를 더 보자.

2014년 두 나라는 상호필요에 의해

방위협력강화협정(ECDA)을 맺었다.

필리핀은 중국의 해군력에 위협을 느끼고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고 싶어 했다.

두 목적을 향한 협정 내용은

주권국가의 위상 속에 만들어졌다.

미국은 필리핀에 영구적인 군 주재를 할 수 없고

방문 군 형식으로만 머물 수 있다.

미군은 필리핀에 영구적 군사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핵무기를 들여올 수 없다.

미군은 필리핀 정부의 초청을 받고

필리핀군이 통제하는

지역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미군이 지은 시설물은 철수할 때 필리핀 것이 된다.

유사시 두 나라 외무장관이 협의한다.

유엔 안보리에 즉각 보고한다.

협정 유효기간은 10년.

이것이 필리핀의 동맹이다.

이것이 주권이 있는 나라의 동맹이다.

한미의 것과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도 정부와 국민이 맘 만 먹으면

주권국가의 면모를 회복할 수 있다.

촛불혁명, 빛의 혁명으로

두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민주주의 후퇴를 막은 저력이 있다.

자주를 향한 촛불이 등장하는 그 날이

언제 올까?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다시 한미 동맹을 살피자.

세계 주둔군 역사에서 유일한 시스템이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의 책상 위에

사령관 모자가 세 개 있다.

세 개의 모자를 쓴 주둔군 사령관.

21세기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군사적 주권 상실의 상징으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 군사상황의

현재와 미래에 발생할 모든 경우를

통제할 장치를 세 개의 모자를 통해

확보하고 있다.

그가 DMZ 관할권 등으로

한국 정부와 맞장 뜨고

한국 국방부 장관도 그 앞에서 별로

존재감이 없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팔이 두 개지만

세 가지의 군사적 통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치하 일본군 조선 점령군 사령관도 부러워할 권력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첫 번째 모자는 주한미군사령관 상징이다.

그는 미국 군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한국 땅에서 미국이 원하는 군사력을

마음대로 배치하고 운용한다.

그가 지휘하는 주한미군은 치외법권적 지위 속에

한국 공권력을 원천 배제한 채

미 국익을 위해 복무한다.

지난 70 여 년간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상대로

미 본토 수호를 위한 세계전략 SIOP, OPLAAN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민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미국 법이 주한미군의 기지, 활동 등을 비밀로 정하고

한국 정부가 SOFA 3, 28조에 의해

미국 결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할 일을 한다고 해왔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헌법적 권익을 외면한다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외세를 위해 자국 민주주의를

정부가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해괴한 일이 해괴하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

한국 젊은이는 많은 분야에서 세계최고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데

만약 한국 정부의 세계 유일한 국치의 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국 정치는 호미를 막을 일을 방치해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태도다.

두 번째 주한미군 사령관 모자는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다.

그의 모자에는 유엔의 깃발 모양의 장식품이 달려 있다.

그러나 유엔과 무관하다.

단지 유엔 깃발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유엔사무총장이 두 번이나 확인했다.

“유엔사는 유엔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유엔사의 상위 기구는 미국 정부다.

미국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다.

그 유엔사가 비무장지대를 통제한다.

그 유엔사가 남한의 대북 교류협력을 통제한다.

남쪽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가는

길을 누가 열고 닫았는가.

유엔사다.

미국이다.

2026년 6월 현재 유엔사 사무실은

평택 미군기지내에 있고 그 직원은 2백 명이 안 된다.

한 줌도 안 되는 병력이다.

이게 다일까?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유엔사의 하부 기구인

유엔사 후방기지가 일본에 7개가 있다.

이곳으로 유엔사는 매년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을 초청해

현장답사를 하도록 해준다.

이들 7개 기지는

미국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일본과 협정을 맺고 있다.

미일안보조약과 별도다.

왜 그럴까?

거기에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유엔사 후방기지는

정전협정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미국은 동북아 냉전시절부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한국, 일본을 묶어 미국이 주도하는

실질적인 군사동맹체제를 만든 것이다.

요즘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 어쩌구 하는데

이는 지난 70년 동안의

미군동북아 전략구도를 비밀의 장막에서 해방시키고

공공연한 사실로 만들면서 더 강화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 언론은 모두 이에 대해 침묵한다.

정부는 한미동맹에 묶여 입을 못 연다고 해도

언론마저 정부와 같이

보조를 취하는 것은 괴이하다.

언론은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헌법적 권익을

외세를 이유로 축소, 훼손한다면

이를 보도해서 정상화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제 4부라 하는 언론의 책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 심각한 언론이다.

이렇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 언론, 학계, 정계를

미국 유학, 장학금 등으로 공들여

친미적으로 만들어놓은 결과다.

하지만 만약 전략적 유연성으로

미중간 무력 충돌이 벌어져

오산, 군산, 성주가 불바다가 되는

참극이 발생한다면

한국 정치, 언론인들 자신은 물론 그 가족친지는?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강심장이라서

한국 정치,언론 종사자들은

미국의 비밀주의에 동조하고 몰빵하는가?

아니면 머리 구조가 잘못돼서?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2026년 5월 6.3 선거 한 달 앞서

서울 광화문에 참전용사 기념 시설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것은 우연일까?

주한미군이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고

전략적 유연성 등도 앞으로 찬양받아야 한다는

고도의 심리전적 의지의 결과물일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선거 기간 동안 장동혁, 전 아무개 강사 등이

미국을 부지런히 찾아가고

미국 극우인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광화문 시위 등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현실

미국이 지난 70년간 한국 민을 상대로 얼마나 치밀하게

선무공작, 대민활동을 해 왔는 지를 짐작케 한다.

선무공작은 병사들의 사기 진작, 군 복무의 자긍심 고취,

국민의 국방 이해도 향상,

적에 대한 적대감 강화 등을 펴는 것이 목적이다.

선무공작은 군대나 정부 기관에서

대내외적으로 특정 정책, 군대 등의 사기,

목적을 홍보하고 설득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다.

몇 년 전부터 해외 6.25 참전용사에 대한

극진한 고마움을 표하는 캠페인이나 기사에는

당시 유엔군의 선무공작 영상이 곁들여지는데

선무공작 차원의 활동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향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세 번째 모자는

한미연합사령관 최고 지휘관 모자다.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가진다.

전쟁이 나면 한국 군대를 미군 장성이 지휘한다.

이 구조의 문제점 첫 번 째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인사권을 쥔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구조로

'한반도 방어'라는 원칙과

'미국 글로벌 전략'이 충돌할 경우,

후자가 우선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군 군령권(군사명령권) 계통상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으로 이어지는

지휘를 받기 때문에, 미국의 국익이나

전략적 이해관계가 최고의 책무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군사전략 중 가장 중시하는 것은

미 본토의 안보이고 그 다음이 전역, 지역 순이다.

주한미군이 정전협정이후

중국, 소련과 러시아를 상대로 군사행동을

비밀리에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로 지정되어 있는 이유다.

심지어 한국의 민주주의를 축소하고

흠집 내는 부작용이 있는데도 강행되고 있다.

미국의 해외 파병원칙은 미 국익 증진이기 때문에

한반도 방어용 무기 구입에서도

미국 방산 업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 연합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강조되는 것은

효율적인 공동 작전을 위한

상호운용의 개념이다.

“미군과 한국군의 무기, 통신 네트워크, 탄약 등이

서로 완벽하게 호환되어야

연합 작전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미국산 무기 선택이 절대 필요하게 된다.

주한미군이 권리 차원에서 주둔해 있는

한미동맹의 취지에

맞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호운용성을 충족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군이 미국산 무기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70 여 년간 한미동맹에 의해

두 군대의 작전 지휘 구조가 일원화되면서

한국 군 당국은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

미국산 무기 체계를 대규모로 도입하면서

발생하는 장기적인 예속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무기를 사오면,

핵심 부품의 공급망과 성능 개량 권한을

미국이 쥐게 된다.

무기를 구입한 이후에도 수십 년간

정비와 부품 조달을 위해

미국에 막대한 예산을 지속적으로 지출해야한다.

그 결과는 군사 기술 및 경제적 종속 심화다.

동시에 한국형 무기 개발의 제약 요인이 된다.

한국이 독자적인 무기 체계를 개발하려 할 때,

미국의 핵심 기술 이전 거부 등이

걸림돌로 작용했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는 미국 방산기업의 이익을 지키고

한국군의 독자적인 국방 역량 확보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미 국가간 무기 체계의 종속성은,

미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주한미군사령관에 의해

큰 영향을 70 여 년간 받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으로 만들어진

SOFA는 한국이 시설과 부지를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주한미군 주둔비 일부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래 주한미군 주둔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것이었지만

한미는 1991년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만들어

미국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유지비용의

일부를 한국이 부담토록 해왔다.

SMA 6, 7조는 한미가 문제를 협의하면서

서면합의로 개정, 수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미국에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도

거의 매년 증액하는 형식으로

천문학적인 액수로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일부를 부담하면서도

그 돈이 미군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한국 국회가 세금 사용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한미군이 권리로 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2026년 현재 주한미국이

쓰지 않고 남긴 돈 2조원이 있다.

그 중 9,700억 원이 미국 은행에 현금으로 들어있다.

한국 정부가 그것을 돌려달라고 하지 못한다.

돌려받을 근거가 없다.

SMA 6, 7조가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은 1966년

환경 관련 규정이 전무한 SOFA을 맺은 뒤

지금껏 명확한 환경오염 정화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고

주한미군은 단 한 차례도 기지 안 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에 나선 적이 없다.

SOFA의 양해각서인 환경조항에는

'주한미군은 한국정부의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한다'고만 돼 있어

주한미군에 오염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다시 이승만 이야기를 해보면

그는 항일투쟁도 했고 정부 수립 후

일본에 대해 각을 세웠다.

그러나 미국에 군사적 주권을 넘겼다.

미국이 건국이후 앞에원 국가 이기주의를

이승만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잘 알았을 것이다.

미국의 주류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집단 캠프’에 가둬놓고

어떻게 파괴했는지,

흑인 노예로 경제적 착취와

경제발전을 기했다는 것 등등을.

그런 미국에게 군사주권은 넘겨준다?

당시 이승만 정도의 국제감각이면

미국이 왜 6.25에 참전했는지,

그리고 동서 두 진영이

한반도를 국제적 냉전에서

완충지대로 남겨놓으려 했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전쟁 승리만을 외친 맥아더를 해임하는 것의

의미를 몰랐 리 없다.

미국이 동북아 전략에 의해

한반도를 어떻게 챙길 것인지를.

그러면 군사적 주권을 넘기지 않아도

한미 군사동맹을 미일, 미국과 필리핀 동맹의

것처럼 할 수 있었을 텐데

조약, 협정처럼 한번 국가에 도장찍어버리면

후세 대대로 고생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할텐데.

생각할수록 아쉽고 분통터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찌 할 것인가?

후손을 생각할 때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하나?

확 바꿔야 한다.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은

군사동맹을 참고하면 정답은 뻔하다.

미국이 기득권을 쉽게 놓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나?

미국이 쿠바의 관타나마를 놓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조약을 폐기하지 않고 개정한다면

권리(Right)를 양허(Grant)로 바꿔야 한다.

수시 협의 조항을 넣어야 한다.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 보고 의무를 담아야 한다.

SOFA를 개정해야 한다.

방위비 불용액을 돌려받아야 한다.

환경오염 책임 조항을 넣어야 한다.

당연히 이 조약에 의해 저지된

평화협정을 신속히 만들어야 한다.

세계 경제력 10위, 세계 군사력 6위,

세계 무기 수입 최다 국가가

정상적인 자주 국가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 위아래에는 같은 민족이 살고 있다.

남쪽에 5000만.

북쪽에 2500만.

이념과 체제만 다르다.

그러나 같은 언어를 쓴다.

같은 역사를 가졌다.

같은 조상의 피가 흐른다.

사상과 이념?

이건 영속적이지 않은 시한부 생명력을 지녔을 뿐이다.

그런데 남북은 이념이

민족에 앞선다고 난리를 친다.

북의 두 국가론이 지닌 문제도

민족이라는 개념을 앞세우면 설 자리를 잃는다.

1천 만 이산가족이 70년 넘게

부모와 자식, 형제를 만나지 못했다.

그 만남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장애가 남쪽에도 있다.

유엔사가 비무장지대를 통제한다.

한미동맹이 남북 교류를 틀어막는다.

국가보안법이 평화통일을 처벌한다.

이념은 유한하지만 민족은 영원하다.

100년 후의 자손들이

오늘의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무한 책임감을 가지고 떨쳐 일어나

모순을 타파하자.

정의와 진실을 실천하자.

그렇게 해야 한반도, 동북아,

지구촌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73 2026.07.15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S -핵의 그림자와 한반도의 운명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핵은 인류에게

공포를 가르쳤지만,

그 공포는 또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분단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상처는 화해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쓰이고 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내일의 행복을 만들고,

오늘 우리의 말이

미래의 평화를 만든다.

부디 한반도가

강대국의 전장이 아니라,

문명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증오의 최전선이 아니라,

화해의 첫걸음이 되기를.

핵의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도

새벽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전쟁의 시대를 넘어

평화는 언젠가 반드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아직 어둠이 짙다.

21세기 우크라이나의 들판에서

포성이 울리고,

중동의 사막에서도

미사일이 날아오를 때,

세계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의 전쟁에서

핵무기가 동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핵 강대국들은 상대를 향해

수천 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핵미사일 단추를 누르지 못하고 끙끙댄다.

왜 그럴까?

핵무기를 앞세워 승리할 경우

동시에 자신의 멸망이 오기 때문이다.

핵은 너무 강해서

사용할 수 없는 무기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너무 강력하기에 쓸 수 없는 무기가 존재한 것은

인류역사상 최초다.

과거 전쟁은 신무기를 개발하는 자가 승리했다.

그것이 전쟁의 역사였다.

평화는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에 불과하다 했다.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평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설이 깨지는 역설 속에서

인류는 불안한 평화를

오늘도 이어간다.

북한 역시 긴 세월 끝에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 선언하며

동북아의 바람을

새롭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공식 인정하는 것과 관계없이

세계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을 바라보지 않는다.

중국, 러시아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기 전에

미국과 함께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자

유엔 대북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계산도 달라지고 있다.

북한의 ICBM이 미 본토나 하와이를 타격할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염려하고

그것을 방지할 대북 정책을 앞세운다.

남한이 북한과 전쟁을 하면

북한 ICBM이 미 본토로 날아올

가능성을 염려해 한국이 조심하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분단의 산맥 위로

새로운 시대의 계산법이

천천히 자리 잡고 있다.

북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북한 핵을 전제로 한 한반도 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시간은 21세기 핵 시대와 함께

또 다른 역사의 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살아남아 같이 행복할 수는 없는가?

그런 미래란 불가능한가?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이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으니

과거를 돌아보는 일부터 해보자.

거기에 혹시 어떤 해법의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한반도가 비핵화의 토론장에서

핵무기 사용과 보복의 말 폭탄이 작열하는

각축장이 되기까지의 수십 년 역사를 살펴보자.

70여 년 세월 동안

한반도에서 상호작용한 주체들은

남북한과 미국이 주를 이뤘다.

6.25 전쟁에 많은 나라들이 개입했지만

정전이후 오늘 날까지 남북한과 미국 등

3 개 국이 주역을 담당했다.

냉전 전후 힘의 논리가 가장 첨예한 지배력을 행사한 현장인

한반도에서 최강자인 미국이니

미국을 주목해서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자.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권리(Right)로

남한에서 치외법권의 성역을 구축했고,

정전협정이 평화의 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봉쇄했다.

동시에 미국은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의 시스템을 만들어

주한미군이 미 본토 수호를 위한

중·러 견제의 세계전략(SIOP, OPLAN 8010)을 최우선 수행토록 하고 있다.

오산과 군산 미군기지의 하늘은 중러에 대한

정찰과 타격태세로 뜨거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법의 장막 뒤에 숨겨진 대륙 작전의 비밀주의와

SOFA 조항의 침묵 조항으로

한국의 자주권과 민주주의는 멍들고,

국민은 주권자가 아닌 개돼지로 전락했다.

미국에게 한반도는 최상의 전략요충지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핵강국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지근거리에서 견제하는 것은

미 본토 수호에 더할 나위 없는

전략적 우위를 점한 것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의 위협에 대륙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백 발의 미사일 등을 오산, 군산을 향해

실전배치해놓은 것에 대해 한국이 침묵하니

미국에게는 금상첨화다.

주한미군은 미국이 대륙의 핵 강국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으니

남한에 영구 주둔하는 것이

미국에게는 가장 이윤이 많이 나는 선택지다.

영구주둔이 가능한 조건은?

한반도에서 전쟁도, 평화통일이 허용되지 않는

적절한 긴장 상태의 유지다.

주한미군이 계속 한국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상황이어서

미국은 끊임없는 대북 군사작전과

참수작전 훈련으로 북녘을 자극하며

남녘을 미제 무기로 최대한 무장시키는 작전을 취하고 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국가연합의 서광을 비추었으나,

'분단 유지와 미군 주둔'이라는 미국의 국익 앞에 가로막혀 무산되었다.

미국은 남북교류협력을 희망하는 문재인과

북한 핵에 대응해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윤석열 시절

한미워킹그룹과 핵 협의기구라는

정교한 통제 장치를 만들어

남녘 정부의 자주적 입지를 좁혔다.

그 결과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작전에

말 한마디 얹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더 강하게 갇혀 지내고 있다.

북녘은 핵과 미사일 개발의 페달을 계속 밟으면서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지칭되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는 극단의 칼을 빼 들었다.

다음은 북한이 핵을 만든 이유를

북한을 주목해 살펴보자.

첫 시작은 6.25 때부터다.

전쟁 당시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지만

세계 3차 대전 등을 우려해 포기한 뒤인

1958년 미국이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최대 950기.

미국은 그 핵무기로 핵보유국인 중국, 소련을 겨냥했지만

겉으로는 대북용이라면서 북한을 위협했다.

당시 핵이 없던 북한에 수백 발의 핵무기를 사용한다?

이는 비용과 결과를 따지는 미국식 합리주의에 맞지 않다.

더욱이 6.25 당시 북한에 핵을 사용하는 것은

산악지대가 많고 인구 밀집지역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합리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다.

6.25때 북진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중국이 참전하지 않는 수준에서 북한 점령을 한다는

작전계획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국력이 수 백 배인 미국의 태도에 겁을 먹고

자신들도 핵무기를 만들려 시도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소련의 원자력 지원으로

토대를 구축한 뒤 수십 년의 과정을 거쳤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소련의 원자력 기술 지원을 받아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건설하고

1965년에는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한 뒤

1970년대부터는 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자체 개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전후 소련해체이후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해

수백 만 명이 아사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체제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미국은 북한이 자체 붕괴할 것이라며

대북 봉쇄 압박정책을 강화해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식의 압박을

북한은 이에 맞서기 위해

핵무기를 궁극적 방패로 만들려 시도했다.

1990년대 초, 위성사진이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포착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야망을 확인했다.

1·2차 북핵 위기와 협상이 실패한 뒤

1993년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하며

첫 번째 핵 위기를 촉발했다.

미국이 영변을 폭격하는 것을 클린턴이

검토했지만 멈췄다.

그렇게 할 경우 한반도 전면전이 불가피했지만

한국과 사전에 합의하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갔고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나왔다.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경수로 지원과 단계적 비핵화를 약속했으나

합의는 이행되지 못했다.

2002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지목하며

2차 핵 위기가 발생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을 주도해

합의한 내용을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그 직후 미국이 폭로한 북한 달려 위폐 사건으로

대북 금융 제재에 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단 1년 만에 합의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2006년 북한은 마침내 첫 핵실험을 강행했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강화되었으나,

북한의 핵 기술 발전의 가속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고

아니면 체제 유지를 위한 포석이었다 했지만

그 경계는 모호했다.

당시 국제 정세는 9·11 테러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로 요동쳤다.

2001년 9·11 테러이후 미국은 국가안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으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지목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은닉했다는 이유로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처형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미국의 위협 속에 리비아가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고 이어 발생한 리비아 내전에

미국 등이 개입해 카다피는 2011년

길가 하수구 부근에서 죽었다.

세계와 북한이 그 장면들을 보고 확인했다.

“핵이 없으면 우리가 저 꼴이 된다.

핵무기가 없는 국가는 강대국의 군사적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은

더욱 더 핵무장에 매진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며 밝혔다.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다.”

2017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협박했다.

"화염과 분노."

2018년 트럼프가 김정은과 악수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둘은 만났지만 회담은 결렬됐다. .

그리고 2025년.

트럼프가 다시 집권했다.

김정은 러브콜을 멈추지 않는다.

왜인가.

트럼프가 계산했나?

북한 핵은 기정사실이다.

이것을 뒤집으려면 전쟁을 해야 한다.

전쟁을 하면 주한미군이 피해를 입고

북한 ICBM이 미국 영토를 타격할 가능성도 있다.

남한이 불타는 것은 역대 미 정권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미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

하지만 주한미군과 미국 영토에 대한 피격은

미국이 손해고 자칫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된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해도 그렇게 부르면 된다.

동시에 북한 핵이 있으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할 명분이 생긴다.

한국이 더 많은 미군 무기를 사야 한다.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

북한 핵이 주한미군 주둔으로 얻을 수 있는

황금알의 영양분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영악한 사업가적 정치기질은

북한 핵 무장이후의 한반도 전략은

역시 분단 지속이고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중러와 북한을 통제하는 것으로 압축되는 것으로 비춰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하나의 교훈을 지구촌에 확인시켰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서간의 총력전 비슷하게 되면서

21세기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기한 대가로

안보 보장을 약속받았으나,

그 약속은 무색하게 무너졌다.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로 우크라이나와

장기 소모전을 벌이면서도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가끔 간접화법으로 그 사용 가능성을 위협한다.

이어 발생한 이란-미국 전쟁에서 핵 강국인

미국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 핵이라는 것을

완전 배제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갈짓자, 횡설수설형 화법에 담긴

극단적인 표현에서 위협을 느끼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누구나 최악의 경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어쨋든 두 전쟁은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간의

21세기 전쟁 특성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이 전쟁은 북한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을까.

핵무기가 실전에 사용되지는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잠재적인 절대적 파괴력 또는 억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편 박정희도 자체 핵무장을 시도했다 좌절한 것도

북한을 자극했을까?

1970년대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퇴한 것을 본

박정희는 미국 군사력의 한계를 목격하면서

닉슨 독트린이 선언되자,

자체 핵무장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협상해 핵재처리 시설을 도입하고,

캐나다에서 원자로를 수입하며,

비밀리에 플루토늄 추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첩보망은 이를 포착했고,

워싱턴은 키신저를 앞세워 거센 압박을 가하면서

카터 대통령이 핵연료봉을 회수하려 하자

박정희는 결국 굴복했다.

이는 미국이 남한의 자체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한국은 핵무장의 꿈을 접었으나,

그 열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 깊은 곳에

불씨로 남아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윤석열 정부 시절 모습을 들어냈다가

미국의 핵우산 제공 강화 조치에

일단 지하로 잠복했다. .

내일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북한은 비핵화 절대 불가, 남한도 핵세례 대상이라고 공언하고

한미는 북한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최고수준으로 높여

중러와 같은 수준에서 대처하기로 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면전 또는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은 낮지만

남북은 여의도의 이전투구처럼 지배 의지의

무한경쟁장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양쪽 무력 차이는 심하다.

미국이 핵무기와 국력에서 북한보다 수백 배,

남한은 재래식 무기에서 북한보다 월등히 강해서

북한이 먼저 도발할 개연성은 낮아 보이고

미국도 북한보다 핵무기가 훨씬 많은

중국, 러시아가 더 큰 적이기 때문에

북한을 상대로 선제타격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분단 지속이라는 상한선 속에

두 진영의 대치가 심화되면

강대국들의 담합성 입질이 쉬워지는 측면이 있다.

동북아 역사가 보듯 강대국들은

대국의 이기주의 계산법을 가지고 있어

약소국가는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반복된다.

과거에 그랬고 앞으로 더 그럴 것이다.

남북은 의도하든 안하든 간에 각각

미·중·러 강대국의 이기주의 계산법 속에 갇혀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우크라 전쟁, 이란 전쟁 등에서

강대국간 이해관계를 챙기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한반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양상은 북한 핵 보유 이전, 이후가 다르다.

중·러의 유엔 대북제재 공조가 흐려지면서

북한이 경제는 중국, 무기는 러시아와의

공조를 강화할 태세다.

남한은 자주회복을 말하면서도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는 형식으로

미국의 심기만을 살피는 소심한 정치로

과거 정권과 유사한 태도를 보이면서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거대한 벽 앞에 입을 닫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통해

여전히 한반도를 자신의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중국과 러시아는 그에 맞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한다.

이러한 강대국의 각축 속에서

한반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궁극적 질문이다.

분단의 장벽을 넘어 평화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핵의 그림자 아래서 계속 갈등을 키울 것인가.

분단의 오랜 상흔 위에

북녘의 핵보유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동북아의 거대한 군사 구도가 변하고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이란의 포성에서

21세기 핵과 재래식 전쟁의 한 형태가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해 보자.

먼저 불행한 미래다.

예를 들어

향후 10년, 중국이 G1으로 부상하고

북중 경제 협력과 북러 군사 협력이 현실화되면,

미국은 이에 맞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대미 예속성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남북 관계의 개선은 요원하고,

한반도는 강대국 간 대결의 최전선이 되면서

북한의 핵무기는 더욱 고도화되고,

미국의 전략 자산은 한반도에 더 자주 전개되며,

우발적 충돌의 위험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한반도가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약 핵무기가 실전에 사용되는

미래는 어떨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생략키 어렵다.

북한과 한미가 서로 상대방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삼가치 않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이고

미국의 경우 자국이익, 즉 미 본토 수호를 위해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과거에 핵보유국 간에는

전면 핵전쟁이 나면 모두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며

상호확증파괴라는 말이 흔히 거론되었다.

핵전쟁은 피아 모두 괴멸적 파괴와

수천 발의 탄두가 뿜어낸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는

핵겨울을 초래해

기근과 방사능, 문명의 완전한 붕괴를 피할 수 없어

군사적 승패를 가리기는커녕

인간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논리다.

만약 ICBM과 SLBM이 대륙과 대양을 건너

무차별적 불소나기를 퍼붓는다면

수도와 산업단지, 대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승자 없는 인류절멸의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어느 학자는 자멸의 직행 코스인

전면 핵전쟁이 나면

승자 없이

사용한 나라, 맞은 나라와 함께

지구가 죽는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재한 핵전쟁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80년간 지켜온 '핵 금기(Nuclear Taboo)'의 금기를 깬

핵무기 선 사용은 자살적 선택으로

대규모 핵 보복과 재래식 타격의 이중주 속에

사용국의 영토는 초토화되고

가장 가까운 동맹마저 등을 돌리고

국제사회의 '악마'로 고립된다.

설령 가해국이 살아남는다 해도

지구촌 차원의 전면적 무역 금지와

금융 차단, 자산 동결의 경제적 파탄 속에서 사멸한다.

법적·도덕적 심판도 심각하다.

핵 선제 사용은 국제법의 정면 위반으로 규탄 받고,

인류 역사에 영원히 각인될

중차대한 전쟁 범죄자의 오명을 피하지 못한다.

환경적 재앙과 내부 붕괴라는 재앙이다.

핵 선제 사용으로 인한 국경을 가리지 않는

방사능 낙진과 핵겨울 속에,

자국민의 통곡은 정권의 퇴진과

내전의 도화선이 된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두 번째 상상은

평화의 새로운 물결이 넘치는 낙관적 시나리오다.

긍정적 전망이다.

그것은

남북이 군사력에 의한 통일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평화 공존과 국가연합의 당위성을

아래와 같이 실천할 경우다.

첫째, 한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동맹을 정상화하여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백지화하고,

진정한 주권 국가의 위상을 확보한다.

둘째, 남북한의 정치체제가

분단 기생 또는 그 수호세력이 청산되고

7천만 민족이 형제자매라는

근원적인 논리가 통합적으로

반영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담보되는

한반도 포함 전 세계 비핵화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셋째,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옛날의 틀을 깨고

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한다.

이런 미래라면 한반도는 평화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 해도 시작이 반이라 했다.

현실을 살피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우선 핵무기의 존재는

전쟁을 끝냈고 또 방지하는 역설적 역할을 하고 있으나,

핵에 기반한 질서는 유리잔처럼 위태롭다.

미국, 러시아의 경우 최고 지도자가

핵 가방을 쥐고 있는 현실에서

한 사람의 오판이나 한 줄의 잘못된 정보로

한 발의 오발이면 단 몇 분 동안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재가 되고 지구는 무생물 지대가 된다.

핵무기 존재 속 평화는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듯

불안정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한반도에서 무력에 의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확인하고

강대국들의 완충지대 압박을 이겨내면서

평화 공존과 국가연합의 당위성을 스스로 움켜쥐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반도는 핵의 공포와

예속의 사슬을 벗겨내고,

자주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써 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274 2026.07.11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0- 세계 최장 '정전'의 잔혹한 비망록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총성이 멎은 지 칠십 여 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사슬에 묶여있다.

정전(停戰)은 했으나, 평화(平和)는 오지 않았고,

서명된 종이는 철벽이 되어 남과 북을 갈라 놓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제 159차 휴전 회담장

펜 촉 끝에서 멈춘 것은

전쟁이 아니라 단지 방아쇠였다

중국이 발을 빼고

W.K. 해리슨과 남일이

세 통의 협정서에 서명을 한 순간,

3년 1개월 2일 동안 흐르던 피는 간신히 멈추었다.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지고 앞뒤로 2km 간격으로

군사 분계선이 그어졌다.

철조망이 세워져 한반도의 허리를 끊었다.

그날 이후 한반도는 평화가 아닌

정지된 폭발 속에 살아야 했다

그것은 완전한 종전이 아닌 전쟁의 잠정 중단,

전투의 총성만을 유예한

위태로운 불완전한 평화였다.

군사정전위원회가 꾸려지고 중립국감시위원단이

더 이상의 군비 증강과

무력 행동을 감시하려 했으나,

휴전의 서약은 태생부터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 이었다.

협정서 제 60항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3개월 이내에 정치적 회담을 열어 평화협정을 맺으라고.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첫 회의가 열린 뒤

이듬해 봄까지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대륙과 해양의 동상이몽 속에

합의가 없었다.

결국 정전협정은 70 여 년 동안

차가운 화약고 위에 방치된 채

세계 최장의 기록을 매일 갈아 치우고 있다.

왜인가.

미국이 원치 않았다.

미은 자국의 국익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할 명분이 약해지고

주한미군이 없어지면

중국의 목을 겨누는 칼이 사라진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한반도는

분단 상태가 지속돼야 했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전쟁이 나는 것도 미국은 원치 않는다.

그것은 한반도가 다시 국제전이 되어

6.25 전쟁처럼 승패가 가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까지 가지 않는 긴장상태의 지속을 위해

미국은 지난 세월 동안 남북을 관리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1954년 20세기 최악의 불평등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발효시켰다.

이 조약은 미국도 원했고 이승만이 원한 한미합작품이었다.

이승만이 정전협정 체결의 대가로

미국이 침략을 받으면 즉각 개입한다는

조항을 요구했다..

그러나 관철하지 못했다.

대신 얻은 것은.

주한미군의 남한 배치를 '권리'로 인정.

미군기지와 시설 무상으로 제공.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무기는

언제든 반입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

미국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 원하던 최상의 조약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남한 보호를 빙자한

미국 군대 배치의 권리장전이었다.

미국 군대는 치외법권적 특권 속에

영구 주둔이 가능해졌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세 개의 사령부의 모자를 쓰고 군림했다.

유엔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기괴한 겸직 체제.

일제 조선주둔군 총사령관이 물러난 뒤

새로운 형태의 점령군 대장이었다.

한국에서 발생할 모든 군사적 돌발 사태의 통제권은

워싱턴 정부의 명령을 받는

미군 사령부에게 있었다.

미국이 원하면 이 땅의 어디든 군사기지로 내어주어야 했고,

부지와 시설, 천문학적인 주둔 비용까지 퍼주는

불평등한 예속의 이정표가 동맹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한국의 지역개발에서 미군기지의 권익이 최우선이었다.

이승만은 한국군의 작전권도 미국에 넘기면서

군사적 자주권을 송두리 채 미국에 바쳤다.

군사적 식민지를 자청한 것이다.

한국군이 주한미군을 상전으로 모시는

예속적 현상 속에서

정치군인들이 날뛰고

5.16쿠데타, 광주학살 속에 정권 찬탈이 자행되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방위조약으로 묶고

일본의 일곱 개 항구에 가동 중인 유엔사 후방기지를 엮어

동북아 3각 군사동맹 체제를 만들어

동북아 전략 구도를 완성했다.

이 거대한 삼각의 군사 구조 속에서

한국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자주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미국의 군사 허브를 떠받치는 주춧돌 하나로 전락했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제2의 한국전쟁이 터지면

다국적군을 실어 나를 중간기지 시스템으로 예비 되어 있다.

그곳은 지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감시하는

외국 군함들의 기착지다.

지구촌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군사관계에 대해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았다.

“한미는 피로 맺어진 동맹이다.”

독재정부는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국보법을 적용해 이적행위, 반국가행위로 처벌했다.

수십 년 동안 그랬다.

그 결과 한미동맹은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고

한국 사회의 미맹은 치유불가능의 상태로 심각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앞세워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장악한 채

미국익을 챙기는 것을 한국 국민 거의 모두가 모른다.

주한미군은 대북 방어용일 뿐 이라고 70 여 년간 합창한

한미 두 정부의 대 국민 심리전이

지대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미국이 중국, 소련과 러시아 핵보유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 박아 놓은 최전선 부대라는 점을

한미 두 정부는 철저히 숨기고 있다.

한미동맹이 국보법과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을

심각하게 좁히고 있는 것도 방치되고 있다.

한국의 진정한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막고 있는

두 개의 쇠말뚝이 한미동맹, 국보법이라는 사실을

일부만이 말할 뿐이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적이고

이들의 핵무기로 부터 본토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을 주한미군 등을 통해

2차 대전이후 계속 수행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 대통령 등 미 정부의 책무다.

그들은 법치의 이름으로

한국에서 동북아 방어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남한 보호, 북한 방어는 미국 법에 의해

신경 써야 할 책무가 없다.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 제 1순위는 미 국익이고

평화와 정의 등 고상한 가치는 그 이후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 동북아 전략을 수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을 이용하고 있다.

분단이 지속되어야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분단 유지를 위해

남북한을 관리하고 있다.

전쟁이 나지 않을 정도의 긴장이 유지가 되는 것이

주한미군 주둔에 가장 유리한 조건이 된다.

우선 미국의 남한 관리부터 살펴보자.

미국의 남한 관리는 1945년 미군정 때부터 시작됐다.

미국이 남한을 미국의 51번째 주 정도의

친미 공동체로 만들려 시도한 것이다.

미국은 이승만과 친일세력을

친미권력집단으로 만들어

한미동맹을 철저히 이행토록 하고

국보법 등으로 미국 비판 등을

봉쇄하게 만드는 것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반도 분단체제에는

일본의 전쟁 범죄를 심판, 청산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조약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한국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의 조약은 평화의 선언이 아니라

일본을 미국의 동북아 기지로 만들기 위한

미일 야합 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질서 속에서

일본에 의해 가장 오랫동안 식민지 침탈을 당한

한반도는 조약 심의 과정에서부터 배제되고

조약 서명국에서도 제외됐다.

미국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배상액의 수배가 되는 경제적 혜택을 남겼다는 식의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일본을 도왔고

오늘날 뉴 라이트들의 식민지기여론의 주문이 되었다.

그 뿐 아니었다.

독도는 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일본의 경제 기적을 위한 디딤돌은,

조선인들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강제 노역과 성노예 위에 놓였다.

이승만은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북진통일’에 꽂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거대한 밀실 속에서 미일이 속닥일 때

일제 최대의 피해자인 남과 북의 자리는 없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썩은 유령이 다시 살아나

성노예의 눈물도, 강제징용의 사슬도 배상 없이 지워졌고,

홀로 남은 독도는 한일의 분쟁지로 버려져 미래의 전쟁을 잉태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 타결 저지에 사력을 다하면서 .

샌프란시스코의 평화협정은 외면했다

그가 일반상식을 가지고 미일 야합의 현장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 여론전을 폈다면

오늘날 반도의 운명은 다른 궤적을 그렸을 것이다.

수구의 무리들은 그를 '국부'라 칭송하며 가짜뉴스를 만들지만,

그가 남긴 것은 일제의 전방위적 수탈에 대한

배상권을 통째로 날려버린

외교적 대참사이자,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과오일 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약이 체결될 때,

가장 큰 피해자인 이 땅의 민족은 초대받지 못했다.

프란시스코, 1951년 9월 태평양의 서쪽 끝에서

한국전쟁이 한창 불꽃을 튀길 때

52개국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였다.

패전국 일본을 용서하는 자리였다.

아니, 그저 용서가 아니라 거래였다.

미국이 설계한 거래는

일본이 다시 강해져 소련을 막는 방패가 되는 것으로

그 거래의 내용은 이러했다.

“천황제를 유지한다.

전범처벌을 최소화한다.

배상 책임을 가볍게 한다.

피해국과 일본이 일대일로 협상하게 한다.”

베르사이유 조약처럼

패전국을 응징하는 방식은 없다.

일본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한국은 조약 서명식 참석 52개국 중에 없었다.

협의 과정에서도 없었고 서명국 명단에도 없었다.

36년간 식민지였던 나라.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이 수탈당한 나라.

위안부가 있었던 나라.

강제징용이 있었던 나라.

그 나라가 없었다.

미국이 배제했고

일본도 배제에 동의했다.

이승만은 침묵했다.

북진통일에 쏟았던 그 열정의

몇 십분의 일도 여기에 쏟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늘까지 이어진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강제징용 배상이 거부되는 이유.

독도 분쟁이 계속되는 이유.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씨앗이었다.

미국이 심은 씨앗.

이승만이 물을 주지 않은 씨앗.

그 씨앗이 자라 오늘의 가시덤불이 됐다.

미국은 전쟁을 방지해서

한반도 분단을 유지하는 방법도 써먹었다.

거기에는 남북 교류협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은 남북이 교류협력을 시도하자

분단 유지가 지속되는 것을 전제로 관리했다.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한미동맹을 앞세워

남한의 군비증강과 대북 공격태세 강화조치를 취했다.

미국 무기를 엄청 사도록 만들었다.

강력한 안보에서 평화가 보장된다면서

그렇게 했다.

남북 불가침선언, 6.15선언, 10.4선언 등이 이어지고

북한이 휴전선 부근인 개성, 금강산 두 지역을

남한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남한의 한 정치인이 휴전선 155마일을

개성공단처럼 만들어 남북 경제공동체로 가자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 정치인은 DMZ관할권이

유엔사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딴 소리를 했을까?

아니면 미국 정부가 상전인 유엔사가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 해서 그렇게 했을까?

유엔사는 정전이후 평화 확대를 위한

조치가 아닌 분단 유지만을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유엔사는 인도적 물품의

DMZ통과도 불허하기도 했다.

결국 이명박, 박근혜 당시 금강산, 개성의 문이 닫혔다.

2018년 다시 기회가 오는 듯 했다.

문재인이 방북해 평양시민에게 육성으로 연설하고

남북 정상회담 3회, 백두산 남북정상 동반 등정도 했다.

남북국가연합이 가능할 정도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미국은 문재인이 남북합의를

거의 이행치 못하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폼을 잡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김정은이 2국가론을 선포하며 남측과 각을 세웠다.

북한은 핵을 탑재한 ICBM을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한반도 비핵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이 분단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취한

북한 관리는 어떻게 행해졌을까?

미국이 맨 먼저

한 짓은 정전협정 유지였다.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은

협정문에 적혀 있었으나

그 문장을 70 여 년 동안 미완으로 머물게 만든 것이다

정전협정을 먼저 저버린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56년 새로운 무기의 반입을 금지한

정전협정 제13항에 칼을 꽂았다.

북한이 먼저 13항을 위반했다는 핑계를 댔으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1957년 판문점에서 미국이 선언했다.

"더 이상 13항에 얽매이지 않겠다."

1958년 새해의 한파 속에서

미국의 단거리 핵미사일과 280mm 핵 발사 대포가

이 땅에 배치되었다.

이듬해에는 중국과 소련의 심장을 겨눈

크루즈 핵미사일까지

주한미군은 최고 1천기의 전술 핵무기가

대북용이라고 했다.

북한은 핵이 없는 나라인데 그렇게 했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주한미군 핵무기는 당시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과 소련을 겨냥한 것이었다.

주한미군은 당시 미 본토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 SIOP를 몰래 수행하고 있었다.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톡은 700~800km 거리였다.

수원과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폭격기가

24시간 대기하며 폭격태세를 유지했다.

미국은 그러나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핵무기는

북한 남침 대비용이라고만 말했다.

한국은 침묵으로 그에 동의했다.

미국은 자국 법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로 분류하고 SOFA 3, 26조를 만들어

한국 정부도 따르게 만들었다.

한미 두 정부의 ‘심리전’ 속에 한국 국민은

까맣게 몰랐다.

주한미군 핵무기에 의해 강대국간 핵전쟁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을.

민족 전멸의 위기가 현실이었지만 한국 국회도

침묵했다. 언론, 학계 등도 마찬가지였다.

남한의 잘 나가는 정치인과 부자들은 미국 국적을

자신은 물론 자식도 취득했다.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면 자기 가족은

미국으로 도망가 잘 살겠다고 그랬을까?

한국이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발전을 하자

한국 정치, 언론 등은 다 미국 덕택이라 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미국의 민낯은 그게 아닌데 왜 저러지?

바보인가, 정신병자인가?

삼척동자에게 물어보라.

누가 정전협정을 지속시켜 분단의 벽을 높게 만들고

핵전쟁의 위기가 24시간, 365일 일상이 되게 했는가.

북한을 손가락질하며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지근거리에서

목에 겨눈 비수처럼 위협해 국익을 챙긴 게 누구인가.

그런데도 정전협정 70 여년이 지난 후

해외 참전용사를

한국 언론과 정부가 찾아다니며 절을 한다.

‘감사합니다.’

참전용사들은 자기 국가의 명령에 의해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싸웠으니 그들은 자기 국가에 충성한 것이다.

한국이 찾아가서 허리를 굽히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과공은 비례’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구촌의 눈에 한국 주류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경제와 군사력 세계 상위권, K-문화선진국의

청소년이

미국의 정체, 한미관계의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광화문에 참전용사를 칭송하는

받들어 총 시설물이 거대하게 들어서고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해

대만에서 일이 생기면 참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중 전쟁이 나면 한국도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는 것을

공개리에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언론, 학계 등 주류는 그저

한미동맹 강화만을 합창하고 있다.

21세기의 한반도의 위험지수가 높아지게 만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의

독소조항을 미국은 꼴리는 대로 휘두르며

이 좁은 반도를 냉전기 동안 동북아에서

가장 위험한 핵 화약고로 만들었다.

정전협정은 껍데기만 남았다.

훗날 남쪽을 놀라게 한 전방의 땅굴들은

미국의 핵 공격 대비용이라 했다.

1963년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요청했다.

“핵무기 개발을 도와달라.”

두 나라가 거절했다.

그때부터 북한이 혼자 핵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1975년 유엔 총회는 유엔사를 해체하고

평화협정을 맺으라 결의했으나,

미국은 한미연합사라는 또 다른 꼼수의

겉옷을 만들어 주한미군 주둔을 지속하려했다.

미국은 핵 위협의 수위를 높이면서

매년 팀 스피리트 훈련으로

반도의 하늘과 바다를 핵전쟁 연습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선제공격의 가능성 앞에

북한은 계속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핵이 없던 카다피, 후세인이 미국 침략으로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북한은 혼자 미 본토까지 닿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브루스 커밍스가 말했다.

북한의 핵 개발은

한국전쟁의 공습 경험과

전후 미국의 핵 위협에서 시작됐다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세계가 긴장하고

중국이 중재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시작된 뒤

2005년 9월 19일 합의가 이루어지고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북한이 핵을 파기하고 NPT와 IAEA로 복귀한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추진한다.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한다.”

세계가 박수갈채를 보냈고 한반도 평화가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2005년 10월 단 한 달 만에

그 푸른 꿈은 산산조각 났다.

미국이 터뜨린 방코델타아시아(BDA) 위폐 사건.

미국이 발표했다.

“북한이 달러 위폐를 만들고 있다.”

달러 위폐는 전쟁 선포와 같은 중대 범죄라고 했다.

소리는 컸으나 미국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이 중단되면서

비핵화 합의가 백지화되고 평화의 문이 닫혔다.

증거 없는 주장이 평화를 막았다.

미국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북한 비핵화 검증에 대해서도 미국은 손사래를 쳤다.

“북한이 핵을 숨기면 찾아내기 어렵다.”

현대 과학의 눈은 우주에서 모래알도 식별하고,

미국과 러시아는 위성과 현지 사찰 등을 통해

전략핵 감축을 검토하는데,

왜 북한의 비핵화 검증 앞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칼날만 들이대는가.

불신을 발명하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분단 유지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땅의 평화를 가로막는 것은

외세의 사슬만이 아니다.

세계가 규탄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

북한은 우리와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한

엄연한 주권국가이건만,

국내법의 현미경으로 보면

상상하거나 접촉조차 죄가 되는

반국가단체일 뿐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 악법은 수십 년 동안

평화통일을 외치는 양심들을 처벌하고

입을 막는 재갈이 되었다.

수구보수 정권은 정국이 흔들릴 때마다

간첩단을 조작했고,

공안정국의 핏빛 광풍을 일으켜

민중의 염원을 탄압했다.

평화를 말하면 친북이 되고,

자주, 주권을 말하면 반미로 몰던 야만의 시대,

그 최전선에 섰던 정보기관들은

민주화의 새벽이 온 뒤에도

자신들이 지은 죄를 반성하거나

청산하지 않은 채 유령처럼 살아 숨 쉰다.

탄압은 집단 기만을 노리는

가짜뉴스 유포가 병행했다.

사드가 들어올 때도, 패트리어트가

전방에 깔릴 때도

정치권과 언론은 우리가 반대할

권한이라도 있는 양 허상을 유포했다.

실상은 조약에 묶여 미국이 결정하면

군소리 없이 수용하고

우리는 그저 기지와 비용만 지불하는

군사 주권의 진공 상태.

그 서글픈 진실을 가린 채

오늘도 반공의 확성기는

청소년들의 눈을 가린다.

주한미군은 지난 70 여년 동안

북한을 막는 방패가 아니었다.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상대로

정찰, 감시, 선제타격하는 세계전략의

최 전방기지 역할을 해해왔다.

미국은 이를 비밀로 하고 한국 정부도

그에 따랐다.

강대국간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은 전화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전쟁의 논리다.

그런데 한국 국민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아니다. 일부 지배층은 알고 있었다.

혼자만의 비밀로 하고

일가족의 미국 국적을 챙겼다.

이중국적으로 여차 하면 미국 정부의

자국민 철수 대열에 합류하려 한 자구책이었다.

추악한 이기주의 속에 나라는 병들어 가면서

자살율과 출산율이 세계를 놀라게 할 수준이 되어버렸다.

헬 조선이라 불리면서.

외국군의 비밀 군사작전은

한국의 법치 대상이 아니다.

한국 행정부, 국회의 민주적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을 축소, 박탈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제 국민들에 대한

헌법적 보호 조치를 외면한 결과다.

정부의 제일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

한국 정부는 이런 책무를 외면하는 직무유기를

70여 년 동안 저지르고 있다.

한미동맹만 중시했지 제 국민의 안위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미·중 패권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덜미를 겨누는

가장 예리한 비수이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미국의 대중 전략에

주한미군이 동원될 때,

대륙의 군사적 타격은

고스란히 이 땅으로 쏟아진다.

주한미군 기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이 한국에서 중국, 러시아를 향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국제법위반이다.

이재명 정부도 주권정부라 하면서

주한미군의 ‘비밀’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전작권이 외국군 손에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군대를 부릴 수 없는 국가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의

한국 환수에 한미가 합의했다.

2012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면서

그 시기가 미뤄졌다.

2015년.

2020년.

그것도 조건부였다.

동북아 안보환경까지 따지는 조건은 밑 빠진 독.

시간이 가도 채워지지 않았고

채워지면 새 조건이 나온다.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작권을 넘긴 뒤에도

미국 대통령의 통수권 속에서

주한미군, 유엔사 지휘권을 행사하게 된다.

전작권 전환이후 한국 땅에서

두 군대에 대한 통수권이 독자적으로 발동되는 체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경우는 없다.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안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는 식의 논리를 들고 나올 법하다.

한국도 동일한 논리로

맞장을 떠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수십 년 동안 미국에 끌려 다녔고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모습만이 보이기 때뿐이다.

제대로 말하는 한국 정치인, 아니 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외세에 끌려 다닐 것인가.

미국 대통령들이 외쳐온 대북 선제타격의 호언장담은

한반도 전면전쟁 발생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전면전이면 한민족 전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그런데도 침묵한다.

전쟁이 나면 정치인도 죽는 것인데

왜 저런 기이한 짓을 하는 것인가?

그런 와중에 평택에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가 생겼다.

한국이 땅을 마련해 시설 지어주고

미국이 쓴다.

주한미군은 평택과 오산에 우주전쟁 기지도 만들겠단다.

한국 정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국민은 속이 터지는데도 침묵, 침묵, 침묵.

미국이 자국 이익을 챙기는 것에

한국 정부가 침묵하는 것을

전 세계가 손가락질하며 비아냥거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70년 동안 얼어붙은 세계 최장의 정전협정은

미국이 저지르는 위선의 증서다.

이 껍데기를 찢고 실효적인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화약고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외세의 예속을 끊어내고, 군사적 자주의 발판을 다져

유엔 회원국에 걸맞은 온전한

주권국가로 우뚝 서야 할 시간이다.

세계 선진국 수준의 경제, 군사력과 세계가 찬탄하는

k-팝 문화의 주인공다운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이 땅의 주인들이

자주의 깃발을 높이 들때,

겨울은 가고 진정한 평화의 봄이 찾아오리라.

모두가 떨쳐 일어나야 세상이 좋아진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군사주권 회복하고

국가보안법 폐기해야 한다.

남북이 만나 평화통일을 실천할 수 있게 해야한다.

그것이 70년 정전의 덫을 벗어나는 길이다.

덫은 스스로 끊어야 한다.

다른 누가 끊어주지 않는다.

미국이 끊어주지 않는다.

중국이 끊어주지 않는다.

당사자 스스로 끊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59 2026.07.08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S -당권투쟁과 국보법, 한미동맹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국 시민이 두 번 탄핵했다.

박근혜, 윤석열.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비, 추위를 무릎 쓰고 원한 것은 무엇인가.

주권이었다.

민주주의, 자신들이 주인인 나라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두 가지를 외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이다.

국보법은 악법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국보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국보법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불평등 조약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조약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반미 =종북’이라는 소리가 두렵기 때문이다.

두 번 탄핵한 용기가 있는 시민들은

이재명 정부가 집권한 뒤

4.19 혁명, 87년 6월 혁명,

2017년 촛불혁명 이후 그랬던 것처럼

현실 정치는 기존 정당이 도맡아서 하면서

구경꾼으로 전락했던 모습을 반복했다.

혁명의 주체이면서 국민들이 강제 퇴거시킨

정치권력의 빈자리는 기존 정당들 몫이 되었던

관행이 또 다시 반복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거리에서 투쟁해

윤석열 탄핵을 성사시킨

빛의 혁명 주역 어느 누구도

장차관을 시키지 않았고

시민들은 잘 하겠거니

박수치고 지켜보는 역할을 하는

과거를 되풀이 했다.

그런데 괴이했다.

내란이 분명한데, 국내외에서

TV로 내란 현장이 생중계되었는데

불법계엄이 불가피했다느니

윤 어게인이라고 외치는

거대 야당 국회의원 등의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현행 정당법, 선거법, 정당지원법 등이

거대 2개 정당의 존립을 보장해주면서

회전문식으로 정권교체를 하는 일이

반복되게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 거대 여당은 실수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거대 야당의 집권이 가능한 구조가

국민을 개돼지로 만드는

정치공학만이 난무하게 만들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유튜브 방송을 앞 다퉈 찾아가고

법사, 도사와 함께 여론조작 전문가,

선동선전 모리배가 현실정치와

공생공사를 거듭하는 기현상이 지속된다.

거대 여야당의 관심은 오직 권력 장악 뿐

선거에서 득표에 도움 되는

작은 일만 챙기고

국민이 주권자를 위한 큰 정치를 외면한 채

두 대통령을 탄핵케 만든 정치구조 속에서

계속 다투고 헐뜯는 일이 반복되면서

총성 없는 추한 전쟁만이 악취를 풍긴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 집권

1년이 지난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자 거대 여야당은

일제히 당권경쟁, 당내 권력투쟁을

시작했다.

그것은 민생과는 관련이 없는

정당과 진영 내부의 우물 안

개구리 싸움과 흡사했다.

대통령도 나서서 한 몫을 하는

치열한 집안싸움이 가열되면서

이재명 정부조차 국민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는 정권교체가

재집권보다 더 높게 나오고

거대 야당 일각에서는 다음 총선과

대선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외친다.

내란 동조 당으로 낙인찍힌

거대 야당이 기사회생의

기회가 왔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여의도 정치판은 당권 쟁탈전의

진흙탕 싸움으로 날밤을 샌다.

왜 저럴까?

여권의 증축, 재건축, 재개발 논란이나

‘문조털래유', '수박’ 시비 때문인가.

야권의 윤어게인과 반대파의

당 주도권을 다투는 힘겨루기 때문인가?

밖에서 보면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집안싸움,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권력 다툼인데

우물 안 개구리들은 생사를 건

대회전인 양 온통 난리 법석이다.

두 대통령이 탄핵당한 사회구조가 유지되면서

구역질나는 여의도의 패거리 정치가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은

또 다른 대통령 탄핵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 무관심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정치를 아무도 개혁하려 하지 않는다.

보라, 거듭된 혁명 속에서 현실정치는

지난 수십년간 반복된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거대 정당만이 배 터지는 특권을 누리는

선거법, 정당법, 정당지원법이 여전하고

헌법기관 국회의원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당대표 관행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민주권 정부를 앞세우면서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보법에 침묵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는

비민주적 공간속에서 과거 정부와 흡사한

정상배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을

원천 봉쇄하는

국보법과 불평등 한미동맹에 침묵하면서

70 여 년간 겹겹이 쌓인 비민주적 구조의

모순이 화급히 폭발 점으로 치닫고 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이 나라 국민은 지난 70 여 년 동안

헌법적 주권자의 권리가 봉쇄된

두 개의 감옥에 갇혀있다.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이라는

두 감옥 안에서 5천만 명이 살고

언론이 쓰고 정치인이 말하고

학자가 연구한다.

두 감옥의 벽을 넘으면

종북, 반미가 되거나

빨갱이가 된다.

두 감옥에서 탈피할 열쇠가 무엇인가.

첫 번째 열쇠는 국가보안법 개폐,

혹은 최소한 제7조 개정이다.

두 번째 열쇠는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 발동으로

대등한 주권국가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 언론과 학계는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두 열쇠를 외면하고 침묵한다.

그것을 말하고 사용하면 후폭풍이 온다는

계산과 공포에 짓눌린 탓이다.

국민이 두 개의 감옥에 갇혀

좁아진 민주주의 공간에서

신음하는데도 거짓말을 한다.

“이 나라 국민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어 불편하지 않다.

국보법은 북한 때문에 필요하고

한미동맹도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미래에도 역시 북한 때문에 불가피하다.

국민은 두 감옥에서 지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럴까? 그것이 진실일까?

그렇다면 따져보자.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를 얽어매는 그 법

북녘 동포 전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의 소통마저 차단하는

반인륜적 악법, 그것이 국보법이다.

산천이 일곱 번이나 변할 시간이 흘렀건만

이 법은 여전히 한반도의 공기처럼 존재하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독가스로

정보강국 코리아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다.

"반미는 친북이다"라는 단순무식한 공식

그 속에서 북한은 오직 절대적 악(惡)일 뿐

미국의 그늘은 항상 정의로운 편이 되라며

정치권은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다.

언론은 국보법이라는 칼날 아래서

스스로의 혀를 깨무는 자기검열에 능숙하다.

북한 보도할 때면 정해진 공식에 따라

도발, 위협, 비난이라는 프레임 기사를 반복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무비판적으로 보도하지만

북한의 입장이나 구조적 원인은 철저히 배제한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역행하는 이 검열은

진실을 왜곡하고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있다.

만약 국보법이 사라진다면

언론이 360도 전 방위를 짚어보는 기사를 쓴다면

북한 핵문제, 미국 핵우산 문제 등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창조적 결론이 모아질 텐데

지난 70 여 년간 언론은 외면하고 정치권은 침묵한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찬양·고무·동조에 관한 것으로

머릿속 상상, 사상을 처벌하는 장치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표현,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북한 주민의 인간적 측면을 말하는 것 등등등

그것이 죄가 될 수 있다.

친미와 반미 사이에 수많은 대안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분법의 늪에 갇혀 헤매고 있다.

군사 주권을 되찾는 일이 반미가 아니라

진정한 국익을 위한 성숙한 외교의 시작이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제7조를 지적했다.

“폐지하거나 개정하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말했다.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

수십 년째 반복된 권고.

한국 정부는 수십 년째 외면했다.

그 조항이 하는 일을 보라.

북한 핵을 분석할 때

미국의 대북정책의 역할도 함께 봐야 한다.

그러나 그 분석을 하다가

자칫 친북으로 몰릴 수 있다.

정치와 언론은 안전한 방향만 말한다.

북한은 악이고 미국은 정의라고.

자기검열이 전 국민에게 일상화 되고 있다.

그것이 국보법의 진짜 기능이다.

철창 없는 감옥의 기술이다.

국보법에 의해 남한 정치, 언론이 만든

기이한 방정식이 있다.

미국 비판 = 반미, 반미 = 친북,

친북 = 이적행위, 이적행위 = 국보법 적용.

그러므로 미국을 비판하면 국보법에 걸릴 수 있다.

이 방정식이 맞는지 검증해 보자.

미국이 한국 정부를 도감청하고

윤석열 정부가 문제없다고 했다.

용산 미군기지가 기준치 36배로 오염됐지만

한국 정부가 15cm 흙을 덮고

공원으로 만들어 어린이, 일반시민에게 개방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불용액 2조 원이 미국 은행에 있는데

그 돈을 낸 한국 정부는 돌려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반미라서 그런가

한국 사회가 조용하다.

반미이면 친북이고 친북이면 국보법인가.

이 방정식이 진실인가, 아니면 지배의 도구인가.

국보법이 지배하는 남한에서

매일 뉴스가 나온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도발이며 위협이다.

미국이 전략핵폭격기를 보냈다.

대북 억제력이고 안보다.

그 뉴스를 매일 보는 국민이 생각을 굳힌다.

북한은 절대 악.

미국은 절대 선.

한미동맹은 신성불가침.

이의를 제기하면 종북.

이것이 확증편향이다.

매일, 365일, 70년 넘게 반복된 확증편향.

그 편향 속에서 평화를 고민하고

남북이 공존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공간이,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말하는 공간이 사라진다.

그 공간이 없으면

대안이 나올 수 없다.

대안이 없으면

전쟁 아니면 현상유지뿐이다.

남한의 언론사 기자가 기사를 쓴다.

북한 핵을 다루는 기사인데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판적으로 써야 하나.

그러면 반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미 소리를 들으면 친북으로 몰리고

국보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

그래서 기자는 안전한 방향을 선택한다.

북한은 악이고 항상 도발한다고.

미국은 언제나 옳고 정의롭고

한미동맹은 필수라고 기사에 쓴다.

이것이 자기검열이다.

강제가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한다.

국보법의 진짜 무기는 그것이다.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

두려움만으로 충분하다.

두려움이 언론을 가둔다.

언론이 국민을 가둔다.

국민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만든다.

세계 10위 경제강국, 세계 6위 군사력,

K팝이 세계를 누비는 나라의 언론이

자기검열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2018년 3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장문의 합의가 나왔다.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 중단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하자.

평화통일의 꽃이 피는 것 같았지만

미국 트럼프가 제동을 걸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는데

남북화해가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다.

비핵화 진전 없이 남북교류 없다.

그것이 미국의 답이었다.

유엔사가 군사분계선 통과를 막았다.

유엔사는 미국의 정부기구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 공식적 항의 없이 임기를 마쳤고

언론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같이 침묵,

북한은 극도의 불신과 적대감을 보이면서

두 국가론의 적대적 대치를 부르는

비극의 서곡이 되었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은

북한 방어를 위해 필수라는데

미국에게 주한미군은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 소련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최전방부대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미 대통령은 동북아에서 방어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방어조약 등을 묶어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를 만들어

70 여 년째 가동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핵보유 강대국 두 나라가 포진한

대륙을 향해 1950년대 말부터

핵무기를 다량 한국에 배치했는데

겉으로는 이들 핵무기가 대북용이라고 발표했다.

주한미군의 이런 작전에 대해 미국은

미국법에 의해 비밀로 분류하고

한국 정부도 입을 다물도록 SOFA 규정을 만들었다.

한국정부는 70 여 년 동안 한미동맹을 이유로

주한미군의 대륙을 향한

작전을 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국회도 침묵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국민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방기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고

이는 한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해치는 요인으로, 이재명 정부도 마찬가지 태도다.

동시에 강대국간 전쟁 가능성에

국민을 방치한 심각한 문제도 한국 정치는 모르쇠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비밀리에 수행하던 중러작전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고

이는 국제법적으로 한국이 만약의 불상사에

책임을 저야 하는 문제가 있다.

중러가 합동군사훈련을 한반도 주변에서 강화하고

주한미군과 중국공군기가

서해상에서 대치한 것 등에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책무가 있다.

주한미군과 유엔사가 한일 두 나라를

군사적으로 연결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심각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를 가동하는데

필수적 요인으로 보고 한반도를 관리하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전쟁, 평화통일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적절한 군사적 긴장상태가 유지되도록

남북한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남한에 대해서는

군비증강을 추동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5024, 5027, 참수작전 등과 같은

대북작전계획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북한을 자극했다.

그 결과 2026년 6월 현재 남북한은

서로 핵으로 상대를 전멸시키겠다는

수준의 대치상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내려 하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령관 모자 3개를 쓰고

남한에서 한미군사관계를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했는데 이는

세계 주둔군 역사에서 초유의 일이다.

미국식 합리주의가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을

보장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만든 치밀한 조치다.

이뿐 아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마치 점령군같은

권한으로 주둔하게 만든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주한미군은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면서

그 기지 시설은 한국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가능하다.

이 4조는 주한미군에게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은 미군사력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하고 미국은 수용한다."

권리?

이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미국이 원하면 핵무기, 사드가 들어온다.

미국이 원하면 탄저균 실험실이 들어온다.

미국이 원하면 무인폭격기가 들어온다.

한국이 미국의 권리를 허여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 참수작전을

한국과 사전 협의 의무가 없다.

미국이 북한을 때리기로 결정하면.

서울이 불타는 동안.

한국은 통보를 기다릴 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2조는 말한다.

‘위협 판단을 미국이 단독으로 한다.

무력 강화 수단도 미국이 단독으로 결정한다.’

이것이 동맹인가, 아니면 예속인가.

한미군사관계가 어떤 수준인지는

미국이 필리핀, 일본, 나토 회원국 등과 맺은

군사관계에서 확인된다.

필리핀은 1992년 의회가 결정했다.

클라크 미군기지 연장 불허, 미국이 나가라.

핵무기는 들여오지 마라.

미군이 지은 시설은 우리 것이다.

우리 법을 따라라.

한국과는 너무 다르다.

미국이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은 권리이고

한국 법을 존중하되 따르지 않아도 된다.

미군 시설을 한국이 짓고 준다.

방위비까지 우리가 낸다.

같은 미국과의 동맹.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필리핀은 주권을 행사하지만

한국은 국보법과 친미라는 틀 안에 갇혀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을 보자.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한 당사국이 상대 당사국에게

미리 폐기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조약을 폐기하거나

개정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조약을 수정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수정을 하려면 이 조항을 발동해야 한다.

"우리는 이 조약을 종식하겠다."

이 말을 누가 할 수 있는가.

국보법이 두렵고 친미라는 틀에 갇혀서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도 그 말을 잊고 산다.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도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 전쟁이 나면 한국군을 누가 지휘하는가.

미군 사령관이다.

그 미군 사령관은 미국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익을 위해 결정한다.

그 사령관이 한국군 60만을 지휘한다.

한미는 전작권을 2012년에 환수하기로 했다가

2015년으로 미루고 2014년에 다시 무기한 연기했다.

조건을 만들었다.

한국군 능력을 미군이 테스트해서 합격해야 한다.

세계 6위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자국 군대의 지휘권을 되찾으려면.

외국 군대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정상인가.

독일과 일본은 어떻게 하는가.

독일은 자국군을 자국이 지휘한다.

나토와 협력하되 지휘 계통은 분리된다.

일본은 자위대를 스스로 지휘한다.

미군과 협력하되 복속되지 않는다.

한국만 다르다.

한국만 전쟁이 나면.

한국 대통령이 한국군을 지휘하지 못한다.

이것이 혈맹인가.

이것이 동맹인가.

이것이 예속이 아닌가.

다시 물어보자.

국보법과 한미동맹 감옥 안에 있으면 안전한가.

감옥 안에 있으면 전쟁이 오지 않는가.

감옥 안에 있으면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는가.

아니다.

감옥 안에서

핵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감옥 안에서

남북이 서로에게 멸절을 선언하고 있다.

감옥 안에서

1000만 이산가족이 죽어가고 있다.

감옥의 문을 여는 것.

그것이 무서운 일인가.

아니면 감옥 안에서 핵전쟁을 기다리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인가.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평화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온다.

두 감옥의 문을 여는 용기.

그것이 평화의 시작이다.

이제는 침묵을 깨고

주권의 광장으로 매진할 시간,

동맹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

친미와 반미라는 흑백 논리를 걷어치우고

건강한 공론화로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를 미국에 통고하자.

"미리 폐기 통고한 후 1년 뒤 종식할 수 있다"

주권의 깃발을 하늘 높이 들어,

불평등한 예속의 어둠을 걷어내고

미국과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자.

남북이 공존하고 평화통일로 가는

로드맵을 다시금 굳건히 세우고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아가자.

이 땅의 후손들에게 전쟁의 공포가 없는,

진리와 정의가 넘쳐나는

풍요롭고 빛나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당당히 물려주자!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87 2026.07.02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9-불의 비, 핵과 세균전 그림자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개시했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한 지역으로 진격하자,

중국은 1950년 10월 19일 팽덕회가 지휘하는

'중국인민지원군' 20여만 명을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투입해 전쟁에 본격 개입했다.

중공군은 10월 25일 1차 공세를 개시하며

유엔군 후방을 위협했고,

기만전술로 유엔군을 유인한 뒤 자취를 감췄다.

맥아더 사령관이 중공군의 개입 규모를

과소평가한 채 '크리스마스 공세'를 명령하자,

중공군은 11월 25일 2차 대공세를 펼쳤다.

동부전선에서는 11월 27일부터

장진호 전투가 벌어져,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제9병단 7개 사단의 포위 속에서

2주간 혹독한 추위 속에 격전을 벌였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 지역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유엔군은 동부전선에서 대대적인 후퇴를 피할 수 없었다.

중공군의 공세로 전황이 급변하자,

유엔군과 국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다시 내주고

38선 이남으로 대규모 철수를 단행했다.

중공군과 북한군은 서울을 재점령했지만,

유엔군은 곧바로 반격에 나서

1951년 3월 서울을 재수복했다.

이후 양측은 38선 부근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진격과 후퇴를 반복했다.

결국 1951년 6월경부터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쟁은 기동전에서 참호전과

고지전 중심의 소모전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7월부터 휴전 회담이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한민족 최대의 비극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연을 낳았다.

숫자가 있다.

63만 5천 톤.

그것이 1950년 6월부터 3년 동안

압록강에서 낙동강까지

미 공군의 B-29가 뿌린 불의 기록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폭탄의 무게다.

이 숫자는

2차 대전 때 일본에 퍼부은 16만 톤의

거의 4배였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에 떨어진 것은

106만 톤.

일본에 떨어진 것은 50만 톤.

그러나 유럽은 6500만 명의 땅이었고

일본은 7200만 명의 땅이었다.

북한은 970만 명의 땅이었다.

숫자를 나누면

진실이 드러난다.

한 명이 감당한 폭탄의 무게

한반도가 세계 어느 전쟁보다

무거웠다.

북한의 22개 도시는

60%에서 95%까지 사라졌다.

한 종군기자가 적었다.

“압록강과 평양 사이는 철저히 파괴되어

도회지는 보이지 않았다.

빨래판처럼 판판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은 굴뚝만 남아 있어

마치 달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도시와 마을의 밤은

한 번이 아니라 수없이 불탔고,

평양, 강계와 신의주와

이름 없는 마을들까지

불길은 경계를 모르고 번졌다.

네이팜은 살을 삼켰고

소이탄은 집과 기억과 숨결을 함께 태웠다.

네이팜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다.

강력한 폭약으로 먼저 건물을 부순다.

그 다음 네이팜이 불을 붙인다.

소이탄이 그 불을 살린다.

단 20분 만에

도시 전체가 1500도에서 2000도의

화재폭풍에 휩싸인다.

연기가 산소를 빼앗는다.

생명체는 타거나 질식한다.

사람들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으며

얼어붙은 겨울 강 위에

붉은 화염이 떠다녔다.

1950년대 북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에서

이 방법이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도 인정했다.

그래서 정밀폭격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중공군이 참전하자

그 원칙은 폐기됐다.

1950년 11월 5일 B-29 폭격기 22대가

강계로 날아가 75%를 파괴했다.

단 하루에.

맥아더가 지시한 작전이었다.

강계, 신의주, 그리고 수 개의 작은 도회지를

화염 공격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북한의 모든 도시와 부락.

공장.

건물.

통신 시설.

모두 파괴하라.

전쟁이 끝났을 때

미 공군이 스스로 평가했다.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목표물 파괴율 85%.”

그러나 그 ‘목표물’ 속에는

할머니, 젖먹이를 안은 어머니가 있었다.

북한의 인구는 당시 970만 명.

그중 99만 5천 명이 죽었다.

최대 150만 명이라는 추정도 있다.

비교해보라.

2차 대전, 독일의 민간인 사망자는 40~60만 명.

일본의 민간인 사망자는 33~90만 명.

한반도는 더 작았지만

더 많은 죽음을 삼켰다.

전쟁의 이름 아래 도시는 불타고

강물은 시체를 떠내려 보냈으며

밤하늘은 끝없는 화장터가 되었다.

정전협정 논의가 시작되자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미군 폭격기들이 댐을 공격했다.

독산, 자산댐, 구원가, 남시댐.

물이 터져 농지가 잠기고 작물이 사라졌다.

수백만 명이 굶주렸다.

협상 카드였다.

주민들의 굶주림이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였다.

폭격이 계속되어

마침내 목표물이 사라졌을 때

미군 폭격기들은

개천에 놓인 작은 다리를 폭격했다.

아니면 그냥 바다에 폭탄을 버렸다.

할당량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2026년 트럼프가

이란의 비군사시설을 파괴하며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1950년대와 닮았다.

중국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맥아더가 요구했다.

“만주와 압록강 주변에 34개의 핵폭탄을 투하하라.

최소 60년 동안 북한의 남침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34개와 60년 그 숫자 속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들어있는지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한반도와 만주가

인간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될 뻔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가 물었다.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는가.

트루먼이 대답했다.

"핵무기 사용은 미 야전 사령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통상적 고려 사항이다."

세계가 얼어붙었다.

영국 수상이 비행기를 탔다.

프랑스 수상도 달려왔다.

워싱턴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영국과 프랑스가 말했다.

미국이 중국과 싸우는 동안

소련이 서유럽을 공격할 수 있다.

핵전쟁이 유럽으로 번질 수 있다.

그것이 핵사용을 막은 이유였다.

유럽의 안전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루먼이 비밀리에 명령했다.

전술핵무기 9발을

B-29 폭격기 부대로 옮겨라.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것이었다.

카데나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핵폭탄을 조립했다.

마지막 부품만 빼고.

그것은 실제 투하 직전에 넣는 부품이었다.

모의 훈련도 실시했다.

B-29가 오키나와를 날아

북한 지역으로 비행했다.

모의 핵폭탄과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다.

실전 투하의 모든 과정을 연습했다.

그러나 핵폭탄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소련이 핵으로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

유럽이 불안해할 가능성.

미래의 전례가 될 가능성.

그리고 한반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한

전술적 효율성 문제.

북한, 중공군이 한 곳에 밀집하지 않아

분산된 적에게 핵폭탄은 비효율적이었다.

맥아더가 그래도 계속 핵 투하를 고집했고

트루먼은 하극상을 이유로 맥아더를 경질했다.

그러나 핵폭탄 대신

또 다른 무기가 의심받았다.

세균전 의혹이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폭탄.

바람을 타고 내려온다는 병균,

곤충과 깃털 속에 숨었다는 죽음,

탄저균.

보툴리눔 독소.

한탄 바이러스.

세균전 의혹은 미국이 자초했다.

일본 항복 직후 자행된

반인륜적인 암거래 때문이었다.

일본 731부대가 만주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생체실험 해 만든

피비린내 나는 악의 자료를

미국이 면죄부를 주고 손에 넣은 것이다.

731부대에서 죽어간 3천 여 명의 희생자중

조선인이 중국인 다음으로 많았다.

그들은 실험실과 영하의 벌판에서 살해당했다.

마루타라 불렸다.

통나무.

사람이 아니라 통나무였다.

미국이 종전 직후 악마의 실험을 한 자들과 직거래했다.

맥아더 휘하의 미군 정보 대장 윌러비가

731부대총책임자 이시이 시로와 만났다.

거래의 내용은 단순했다.

자료를 주면 면죄부를 준다.

이시이는 살았다.

1959년 자연사할 때까지.

그의 부하들도 살았다.

전후 일본 의학계 유명인사로.

면죄와 거래 속에

전범들의 기록은 살아남았고

조선인과 중국인의 절규 위에

피로 적힌 자료들은

새로운 강대국,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세균전 연구소로.

그 흉악무도한 암거래의 그림자는

한국전쟁의 하늘에도 드리워졌다.

중국과 북한이 주장했다.

“미국이 세균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부인했다.

소련이 조사 기구를 만들어 사실이라고 했다.

미군 조종사들이 포로가 됐다.

세균전에 참여했다고 증언했지만

귀국 후 번복했다.

그들의 입이 어떻게 닫혔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진실은 지금도 안개 속에 있다.

의혹은 사실인지 아닌지

끝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731부대를 계승한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의지는

정전협정으로 굳어진 한반도에서

그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5년 서울 용산미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됐다.

주피터 프로젝트라 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생물 대응 실험.

1g으로 100만 명을 몰살할 수 있는 보툴리눔.

탄저균.

한국 정부도 모르는 사이에.

SOFA가 통관 절차를 면제했기 때문에.

아무도 검사하지 못했다.

세계 25곳의 미군 생물무기 연구소가

자료를 한국으로 보낸다.

분석하기 위해.

왜 한국인가.

북한과 가까워서인가.

SOFA 덕분에 통제가 없어서인가.

한국 시민단체들이 외쳤다.

중단하라.

미국은 답하지 않았다.

SOFA가 있으니까.

특권이 있으니까.

용산과 오산의 주한미군 기지에서

오늘날에도 생물무기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가.

한반도의 전쟁은

국가가 어디까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승리라는 말이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는지,

핵과 세균과 공습이

국제적 법규와 윤리의 벽을

얼마나 쉽게 파괴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잔혹한 물음표였다.

그런데도 전쟁 뒤의 세계는

묻지 않았다.

누가 파괴했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누가 사과해야 하는지,

누가 조사해야 하는지.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이 끝난 뒤

독일에는 1천 명의 조사단을 보내

화염공습 피해를 정밀 조사하고 배상했다.

북한에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

물론 배상도 없었다.

독일은 서방의 동맹이 될 나라였다.

북한은?

조사할 필요가 없는 나라였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가 말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강행된 북한에 대한 공습은

미국이 타 민족에게 가한

가장 극단적인 폭력의 하나이면서

미국인들이 그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왜 모르는가?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자신들의 신화를 부수기 때문이다.

‘자유를 수호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신화를.

미국인들은 모른다하고

한국인도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몇 년 전

미국 국빈 방문에서 말했다.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감사의 표시였다.

그러나 감사는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미국은 왜 한국전에 참전했는가?

남한 주민을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였는가?

1890년대 조선과 수교한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일관되었다.

국익 추구였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강탈을 간접 승인하고

36년간의 독립운동을 외면했다.

일본 항복 후,

미국의 남한 점령은 소련 견제가 목적으로

친일파를 군과 경찰에 그대로 재활용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용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강행했고

제주 4.3이 반대하자 주민 1/10을 죽였다.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은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일본의 공산화가 두려워 개입했다.

이것이 미국의 ‘희생’의 실체다.

물론 그 결과 한국이 혜택을 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미국의 선의가 아닌,

미국의 전략적 필요의 부산물이었다.

총성이 멎은 지 70년이 넘었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없다.

정전협정이 있을 뿐이다.

주한미군이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견제하게 위해

계속 주둔하기 위해서

한반도 분단은 필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휴전.

그 동안 핵폭탄이 남한에 배치됐다.

중국과 소련 위협용이었지만

동시에 북한을 자극했고

결국 북한도 핵을 만들었다.

2026년 한반도에는 진화된 형태의 위협이 있다.

핵우산은 보호라 불리고

전략자산은 억제라 불리며

새로운 공포는 기이한 언어로 포장된다.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이란 날개를 달고

대만 유사시 참전하고

러시아를 견제하겠단다.

강대국간 전쟁은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도 전쟁터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국제법에 저촉되기도 한다.

한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통해 제3국에 대한

군사작전을 허용하는 경우

국제법상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유엔 헌장, 국제관습법, 국가책임법 원칙이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무력 사용 금지), 제51조(자위권)는

국가의 무력행사와 다른 국가에 대한

지원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기본적인 국제법규이다.

국제관습법은 ‘국가는 자국 영토가

다른 국가에 대한 불법적인 무력공격에

이용되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제법위원회의 국가책임 초안제16조는

다른 국가의 국제위법행위를 알면서

원조하거나 지원한 국가의

책임에 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2026년 이란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사우디, 오만 등에 있는

미군 기지와 함께 해당 국가시설도 공격하는 경우,

중국이 성주 사드에 대한 보복을

한국에 10년째 하고 있는

배후 요인이 무엇인지 한국 정부, 언론은 입을 열지 않는다.

최근 주한미공군기와 중국공군기가

서해상에서 대치했는데

한국 정부는 뒤늦게 알았다며 항의하자

주한미군사령관이 ‘무슨 소리냐?’며 맞받았다.

한미동맹에 의해 허용된

주한미군의 군사행동이라 했다.

전략적 유연성의 숨은 뜻에 대해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치 않았다.

적절한 것인가?

한국정부가 SOFA에 묶였다며

침묵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행복할 권리에 역행한다.

그것은 반헌법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미국 대통령의 선제공격 발언에도

한국 정부는 침묵하는 것이 관행이다.

선제공격 후에는 한반도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한반도 남북이 다 죽을 수 있다.

침묵하는 정치, 언론, 학계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도 침묵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바보라서 그런가? 벙어리인가?

북한핵에 대한 공포와 대처가

미국의 핵우산과 미국의

한반도 전략만으로 해소되는 것인가?

오래전부터 동서해 하늘에서

중국러시아가 합동군사훈련하고 있다.

오산, 군산의 활주로에는

전략폭격기의 그림자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오늘도 미군기지 어딘 가에서는

탄저균 실험이 계속되고 있을지 모른다.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의

헬지옥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핵은 평화의 도구가 아니고

세균전은 결코 방어가 아니다.

국제법은 강자의 장식품이 아니라

약자의 마지막 방패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 대통령에게 강하게

말해야 한다.

" 이 땅에서 미 국익을 위한

전쟁은 절대 안 된다.”

지난 70 여 년간의 한미동맹을 돌아볼 때

한국의 자주권 회복이 급선무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하다가

정전협정은 지속되고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지위는 더욱 강해진다.

그 결과 한국 민주주의도 쪼그라들고 있다.

평화는 망각과 의존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평화는 진실 위에만 세워진다.

언젠가 155마일 휴전선의

철조망 위에 진달래가 피고

판문점의 콘크리트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흐르는 날,

그날 비로소

이 땅은

미국의 전략기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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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2026.06.28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8-38선의 밤, 6.25의 비극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칠십육 년 전 그 새벽,

포성이 강산을 뒤흔들고

한반도의 산과 들은 불길에 휩싸였다.

전쟁은 멈추었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다.

총성이 침묵한 자리에는 철조망과 지뢰밭이 뿌리내렸고,

휴전선은 세월보다 길게 민족의 가슴을 갈라 놓았다.

남과 북은 서로를 경계한 채 군사분계선의 긴 침묵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묻는다.

언젠가 철조망이 걷히고,끊어진 철길이 다시 이어지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의 노래가

울려 퍼질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칠십육 년,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평화를 꿈꾸는 마음 또한끝나지 않았다.

분단의 세월보다 더 긴 희망이

오늘도 이 땅의 새벽을 밝히며,

우리는 다시 내일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조선의 하늘에는 해방과 독립의 깃발 대신

두 강대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북위 삼십팔도선,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어진 산맥의 핏줄 위에

그어진 경계는 형제를 적으로 만들고

마을의 논두렁을 세계전쟁의

최전선 예비지역으로 바꿨다.

미국은 유엔의 이름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세우려 했고,

반대하는 이들의 외침은

총성과 화염 속에 묻혀 갔다.

친일의 잔재는 새 주인을 맞았다.

워싱턴의 지도 위에서

한반도는 미국의 대소 전진 기지가 되었고

일본은 태평양의 성채가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모택동의 붉은 군대가 강물처럼 흘러넘쳐

장개석의 군대는 무너져 갔다.

남북에 만들어진 두 개의 정부는

하나가 되자는 의지가 전혀 없었고

삼팔선의 밤은 자꾸 뜨거워지고 있었다.

남북한 정부 수립 이후

공존이나 평화적 통합 논의가

본격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양측 지도자가 모두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를 자처하며

무력 또는 체제 우위를 통한 통일을 추구했다.

동시에 냉전이라는 국제질서가

타협의 공간을 크게 제한했다.

두 정부의 상대에 대한 적대적 태도 속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은

안개 낀 능선과 개울가에서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다.

수색대의 총성이 터지면서

개성과 춘천, 옹진의 들판에는

젊은 병사들의 피가 스며들었다.

1949년 6개월 동안 사백 번 넘는

남북 군사적 충돌.

총알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남한군은 삼팔선 북쪽에

방어진지를 세우려 했고

북한군은 포화로 응답했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외쳤다.

“우리는 북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남한 정부에

중무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소련과 중국을 자극하는

불길이 한반도에서 시작돼

세계대전으로 번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1950년 1월 12일 워싱턴 내셔널 클럽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연단에 섰다.

"미국은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극동지역의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

유엔헌장에 입각해

전체 문명세계와 함께 싸울 것이다."

애치슨은 의회에서 말했다.

"남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침공을 격퇴하기는 어렵다.

미국도 그런 침략을 군사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 남침은

순식간에 전선을 무너뜨렸고,

서울은 곧 불안과 피난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남한은 지킬 수 없다"고 했던

미국의 태도가 돌변했다.

트루먼은 미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북한 공격을 방치하면 일본이 위험하고,

동북아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소령과 중국의 독무대가 될 것이다.”

미국이 즉각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고

결의안 82호(25일), 83호(27일)에 이어

84호(7월 7일)가 통과되었다.

82호와 83호는 북한의 적대행위 중단과

회원국들의 한국 지원을 촉구했고,

84호는 미국의 연합지휘 아래

군사적 지원 체계를 열어주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소련이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한반도 역사의 흐름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 자리가 비어있지 않았다면

유엔군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의 계산이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안보리 회의장에 거부권을 쥔

소련이 자리를 비운 것은

세계사의 미스터리다.

스탈린의 계산에 의한 불참이었다고

역사가들이 추측했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소모전을 벌이면

소련이 어부지리를 얻고 동유럽을 장악할 수 있다는....’

소련의 빈자리가 역사를 바꿨다.

소련이 안보리를 비운 사이

결의안은 통과되었고 유엔군이 탄생했다.

21개국이 참여한 병력의 90%는 미군이었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기묘한

'유엔군사령부'가 탄생했다.

유엔의 깃발을 들고 있으나,

미국 정부의 명령만을 받는 백악관의 군대,

그러나 미군의 총구 위에

유엔의 푸른 깃발이 휘날렸다.

유엔군은 유엔과 무관한 미 정부 부대였다.

유엔사는 유엔의 깃발을 사용하는

미국이 지휘하는 다국적군이었다.

워싱턴은 유엔의 깃발을 들고 한반도로 향했다.

맥아더는 미국 정부의 명령을 받으며

유엔군 사령관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세계사의 역설이 시작된다.

유엔의 깃발아래 출전한 전쟁,

그러나 실질적 지휘는 미국의 손에 있는 전쟁.

깃발은 국제였고,

명령은 미국이 했고 지금도 그렇다.

유엔 헌장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군대의 지휘는 한 국가, 미국의 손안에서 행해졌다.

개전 초기에는 북한군이 서울을 빠르게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진격했다.

전쟁의 역사를 보면 누가 더

강력한 무기로 무장했느냐가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의 하나다.

전쟁 직전 남북한은 자체적으로

전차, 전투기, 대포와 같은

무기를 직접 생산할 수 없었고

외부의 지원, 제공 등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미국은 남한이 북진 통일을 시도할 가능성을 우려해

전차, 중포, 전투기 같은

공격형 무기 제공에 소극적이었고

남한 군대를 주로 내부 치안 유지와

방어용 군대로 육성했다.

반면 소련은 북한군을 현대적인 정규군으로 육성했고,

전차·항공기·포병을 대규모 지원했다.

소련은 해방 직후 북한의 군사조직 육성 과정에서

관동군과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무기를 일부 제공했다.

6·25 전쟁 직전 조선인민군의 주력 무기는

소련이 직접 공급한 최신 소련제 무기였다.

북한군의 전차부대와 기계화 부대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다.

전쟁 초기 국군은 북한 전차를 상대할

전차나 대전차포가 거의 없었고

제공권은 사실상 북한이 장악했다.

병력 수 자체는 북한이 다소 많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아니었다.

김일성은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켰을까?

소련과 중국의 동의 아래

전쟁 계획이 추진되었다고 사가들은 말한다.

김일성은 6·25 전쟁 수 개 월 전인

3~5월 사이 소련과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지도부는 전쟁이 개시되면

남한에서 전국적 규모의 혁명이나

봉기가 일어나

수주 또는 수개월 안에

승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이 장기화되고

혁명이나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엔안보리에서 결의안

82호와 83호가 통과되는 사이

서울이 위험해지자 27일 밤 정부 당국의

대국민 라디오 방송이 나왔다.

"정부는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니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일자리를 지키라."

그러나 이승만은 이날 새벽 2시

서울을 탈출한 뒤였다.

정부만 도망가고 국민을 속인 것이다.

한강다리가 끊어졌다.

피란민들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한국군이 다리를 폭파했다.

아이들의 울음이 강물에 떨어졌고

부서진 철교 아래로

사람들의 절규가 가라앉았다.

정부 수뇌부가 먼저 남하했고,

이어 한강교가 폭파되어

많은 시민과 국군이 고립되었다.

서울에 남아 있던 미군사고문단도

이승만과의 약속을 믿었다.

폭발 시점을 사전에 협의하기로 했던 약속을.

그 약속이 아무 통고 없이 깨지면서

그들도 서울을 탈출하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

그 와중에 퇴각하는 군경은

사상 전향을 서약했던

보도연맹원 등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터진 지 이틀째 되는 날

이승만이 명령을 내렸다.

“보도연맹원과 남로당원들을 처형하라.”

28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첫 처형이 집행됐다.

보도연맹은 전향한 좌익분자들을

관리하던 조직으로

그 구성원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가입했던

일반 농민과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군경의 총구 앞에

이름 없는 골짜기에서

낙엽처럼 쓰러져 사법학살의 제물이 되었다.

전쟁 후 벌어진 수많은 학살은

전쟁이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사람을 분류해 죽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법의 이름은 있었으나

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질서는 있었으나

정의는 없었다.

전쟁은 단지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 아니라

이념이 인간을 죽이는

거대한 학살로 변해갔다

전쟁 직후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국민을 의심하고 제거했다.

그것은 외부의 전쟁과 내부의 전쟁이

한 몸처럼 겹쳐진 참극이었다.

9월의 인천, 아침 안개를 뚫고

유엔군 상륙함이 진격할 때

일본인 항해사들이 조류를 읽고

배의 키를 잡아 안내했다.

폐허가 된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 속에서

다시 살아나 병참기지가 됐다.

전후 복구의 기회를 잡았다.

패전국이 재건국이 됐다.

침략한 자가 회복하고

침략당한 자가 다시 전장이 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했다.

북한군의 보급로가 끊기고 퇴각이 시작됐다.

서울이 수복되고 북한군은 물러갔다.

맥아더는 압록강까지 올라가면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국경선 너머에는

또 다른 거대한 그림자가 버티고 있었다.

중국군이었다.

겨울 산맥을 넘어온 중공군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고

유엔군은 남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서울은 또 한 번 함락되었다.

산과 들에는 얼어붙은 시신들이 누웠고

폭격기는 북녘 하늘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맥아더는 중국 만주 폭격과

핵무기 사용까지 제안했으나

미 대통령은 제3차 대전을 두려워 거부했다.

제한전쟁이 원칙이었다.

맥아더는 고집을 피우다 경질됐다.

.그러나 미국의 공격은 북한 지역에 집중되어

세계 전사에서 가장 많은 폭탄이

북녘 산하에 투하됐다.

도시, 마을, 사람이 사라졌다.

2년 동안의 소모전 끝에 정전협정이 시작됐다.

이승만은 정전협정을 반대하며 외쳤다.

“무력으로 통일하자. 전쟁을 계속하자.”

그는 정전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미국이 분노했고 덜레스 국무장관이 서신을 보냈다.

"한국이 휴전을 위태롭게 할 권리가 없다."

미국 행정부가 에버레디 작전이라는

비밀계획을 만들었다.

이승만이 북진 명령을 내리거나

돌출행동을 할 경우

이승만을 제거한다는 계획이었다.

동맹을 제거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

그것이 미국이 말하는 동맹의 실체였다.

결국 타협이 이뤄졌다.

이승만이 조건을 내걸었다.

상호방위조약 체결, 경제원조와

한국군 20개 사단 무장할 군사적 지원 등이었다.

미국이 받아들였다.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 체결됐다.

이승만은 지독한 벼랑 끝 전술 끝에

상호방위조약과 군사 지원을 얻어냈으나,

이승만이 국치스런 조약의 대가로 미국에

군사적 주권을 퍼준 대가는 엄청났다.

미국이 맘먹은 대로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할 치외법권적 특권을 인정하고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 소련을 향해

미 본토 수호를 위한 군사전략 SIOP를

비밀리에 수행토록 만들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지휘할

작전통제권도 미국의 손에 저당 잡혔다.

일본이 물러간 뒤 미국을

실질적 점령군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승만 그 후로도 권력을 탐하면서 민주주의 파괴했다.

평화통일을 외쳤다는 죄목으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단두대에 세운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이승만은 1959년 10월에도 미국에게 말했다.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무력뿐이다."

사사오입과 부정선거로 얼룩진

노독재자의 말로는

결국 4·19 혁명의 거대한 함성 속에

하야로 끝을 맺었다.

한국전쟁은 승자와 패자도 가리지 못하고

끝나지도 않은 채 멈추었다.

1953년 휴전이 되었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고,

정전선은 국경이 아니었으며,

분단은 잠시 멈춘 전쟁의 다른 이름이었다.

총성만 멎었을 뿐

삼팔선은 철조망이 되었고

민족 내부의 불신과 적대감이 커지면서

남북 간 분단의 벽이 더욱 높고 견고해졌다.

전쟁 피해는 엄청났다.

3년 3개월간 지속된 전쟁에 21개국이 참전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장이 되었으며,

대략 6백여 만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국가마다 집계가 서로 달라 혼란스런 가운데

남한 230 만여 명, 북한 292 만여 명의

인적 손실이 추정됐다.

또한 1천 만 명의 결핵환자,

1천 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인적 피해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때보다 피해가 더 컸다.

모든 도회지는 거의 파괴되었고

양측의 학살과 고문 기아로 인한

사망 등이 속출했다.

참전국 군대의 인적 손실은

정확히 집계된 적이 없지만

한국군 75만 명 사상,

북한군 50만 명 사상,

유엔군 18만 명 사상,

중공군 95만 명 사상으로 추정된다.

남북한 전역이 초토화되고

주요시설 파괴는 52%에 달했다.

남한 민간인 피해는 모두 99만968명으로

이 가운데 37.7%인 37만3599명이 사망했다.

북한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해는 150만 명으로

추정되었는데 북한 당국은

사망자를 별도로 밝힌 바가 없다.

남북한 전 지역에서 학교·교회·사찰·병원 및

민가를 비롯해 공장·도로·교량 등이

무수히 파괴되었다.

포성이 멈춘 뒤에도 한반도 땅의 사람들은

무장한 평화를 살았고,

무장한 침묵 속에서

세대를 이어 불안과 증오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유엔사는 오늘날에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름은 유엔이지만

실질은 미국 주도라는 점,

그리고 해체의 열쇠조차

유엔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결단에

걸려 있다는 점은

국제법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엔군사령부가 유엔의 이름을 쓰고

유엔의 깃발을 드는 것에 대해

1975년 유엔총회가 결의했다.

“유엔사를 해체하라.”

키신저가 약속했다.

“1976년 1월 1일부터 해체하겠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1994년 유엔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가

북한 외무장관에게 편지를 썼다.

"유엔안보리는 연합군을

하부조직으로 결성하지 않고

단지 그 지휘권을 미국이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추천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연합군의 해체는 유엔에 있지 않고

미국 정부의 권한 문제일 뿐이다."

코피 아난 총장이 거듭 확인했다.

“유엔사는 유엔과 무관한 조직이다.”

디칼로 유엔사무부총장도

2018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2019년 5월 캠프 험프리의 미군기지에서

유엔사 부사령관 웨인 에어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유엔사는 유엔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단지 유엔사는 유엔 깃발을 사용하고

매년 미국 정부를 통해

유엔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유엔의 깃발을 사용하면서도 유엔이 아닌

해괴한 미국의 군사조직은

여전히 한국에서 버티고 있다.

무장지대 DMZ의 통제권과 관할권은

여전히 미국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

지금도 유엔사 깃발은

평택의 기지와 판문점에서

비무장지대에서 펄럭이며

소리 없이 말한다.

“이것은 유엔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유엔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유엔의 군대는 아니라는 논란 속에서

그 조직은 지금도

비무장지대와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있다.

유엔사 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

연합사령관 모자를 쓰고

한국 정부를 향해

떵떵 큰소리를 치며 위세를 부린다.

그 모습은 점령군 대장과 너무 닮아 있다.

미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분단된 한반도를

자신들의 최상의 적정선으로 여기는 오늘날,

유엔사의 깃발을 다시 키워

미군의 군사적 특권을 유지, 확대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대통령과 장군들이 사라졌어도

한반도는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그날 삼팔선에서 시작된 총성은

형제의 가슴 속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싸웠고

누군가는 혁명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름 없는 민중은

살아남기 위해 울부짖었다.

폭격 속에서 아이를 업고 달리던 어머니,

끊어진 다리 앞에서 강물을 바라보던 아버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던 노모의 눈물이

이 전쟁의 진짜 역사였다.

강대국들은 전략을 말했고

정치인들은 통일을 외쳤지만

폐허 속 민중은 평화를 원했다.

오늘도 비무장지대의 철책 위로

바람은 지나간다.

그 바람은 묻는다.

누가 이 땅을 둘로 갈랐는가.

누가 형제를 적으로 만들었는가.

누가 전쟁으로 권력을 얻었고

누가 이름 없이 죽어갔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전쟁을

과연 누가 끝낼 것인가.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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