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6.8 690호 4·3의 혈적(血籍)

달빛 부서지는 밤검은 현무암 위로잠든 파도 귓전으로1948년의 모래알이 스며든다산등성이가 삼키는 새벽까마귀 한 마리 붉은 체온으로전봇대 높이에서 폭격을 재현한다 우리 집 창틀에 걸린 빨랫줄에할머니의 이빨 일곱 개가바람에 타는 구리 종소리우산 챙처럼 접히는 세월습곡 지층 사이로 찢겨 나온 실루엣 그들이 남긴 유일한 흔적은바람에 날리는 눈꺼풀

  • 안조영
북마크
72
2026.8 690호 도깨비시장에서 K-스타를 쓰다

황금부채 펄럭이며 남대문 도깨비시장에 들어선다 도깨비 장수가 외친다“신상 모자 세계여행!” 이집트 파라오 모자엔스핑크스 장식이 달리고베르사유 모자엔다이아몬드 빛이 흔들리고베트남 논모엔볍씨 수놓아 초록 냄새를 흔든다 “도깨비야, 이 모자 쓰면나도 K-스타 되나” 수입 모자들 사이로 은하수가 흐르고학이 날아오르자이집트 스핑크

  • 박연숙
북마크
64
2026.8 690호 넝쿨의 사랑

넝쿨의 사랑은 끈질기다너를 사랑한다고 일념으로 잽싸게 다가서는데한번 안겼다하면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는 너 싫다고 발버둥치다 힘이 빠져 쓰러져도 함께 쓰러지는 너는극단의 이기주의자 내가 널 사랑한다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함께 갈려하는 기생충 같은 너나는 너의 버팀목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다시는 다가오지 마 손사래 쳐도다가오

  • 김종렬
북마크
61
2026.8 690호 삶

사람은 어떻게 살지각자가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간다 맹자는 삶은 내가 바라는 것이고의도 내가 바라는 것인데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면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라 했고영화 윈더에서는 올바름과 친절함중에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할거라고 했다 결국은 살아내는 것보다는어떻게 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란순망치한처럼 서로에게밀접하게

  • 박미숙(시흥)
북마크
63
2026.8 690호 바람은 고향 쪽에서 불어왔다

장독대 위로햇살이 소금처럼 부서지던 여름이었다 마당 끝 텃밭 포도나무 잎은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초록 파문을 흔들며 웃었고 우물가 두레박의 차가운 물 한 바가지가세상의 근심까지 식혀 주던 시절이 있었다 낮이면 논두렁 사이로 메미 울음이 터져 하늘까지 금이 가는 듯했고아이들은 맨발로 흙길을 달리며개울물 속 송사리를 쫓다가저녁

  • 이상옥(윤슬)
북마크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