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6.8 690호 통도사에서

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면2월 하순, 전국에서 운집하여자장매, 너를 보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일 년에 한 번 피어난다 해도삼천 년에 한 번 피어난다는 우담바라,너를 보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오랜 기다림은사막에서 꽃을 보듯 그리 귀한 것,한 번 울고 가는 겨울학처럼유일무이한 너는저기 활짝 펼친 공작새 날개처럼그리도 장엄하고 보배로운 것저기 저 자장매처럼, 우

  • 노유섭
북마크
61
2026.8 690호 찔레

본성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가시 망(網)이다얽히고설킨 조직은 난마를 틀어쥔 형틀이다그 역시 좀스럽고 옹색해 보이는 성곽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들은 서로 등지거나 떠밀치거나 눈 밖에 나게 살아본 적이 없다 봄 언덕을 줄줄이 누비며 끈질기게 피고 지는 순백의 꽃 넝쿨을 보거라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없이 독하고 독하게 가시춤을 추고 있는 저 죽고 못

  • 김남곤
북마크
57
2026.8 690호 박동(搏動)

나는 누구일까.한생 살면서 나 항상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아그리도 그것이 몹시 궁금했는데이 나이에 들어 비로소깨달았도다.무슨 죄를 범했는지는 아직 모르거니와천국의 감옥을 탈옥해서 이곳으로 도망쳐 온수배자인 것 만큼은 틀림 없구나. 그간, 숙명처럼 가슴에서벌떡 벌떡 뛰던 그 소리,그것은 그들이 내 심장에 심은 위치 추적기 칩의 발신음이&nbs

  • 오세영
북마크
63
2026.8 690호 예술과 일생

한평생을 같이하는 나의 예술 이야기이다. 1940년대 축음기(蓄音機)부터 첨단 음향기기인 입체음향의 오디오 시스템까지, 그리고 SP음반부터 SD카드까지의 음악과 함께 일생을 살고 만년에는 수필가로 데뷔 글을 쓰는 행운아이다.전기도 없던 시절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처음 음악을 만난 것은 농악과 퉁소 소리였다. 다음에는 다섯 살(1945년) 무렵 사촌형들이 듣

  • 김완현
북마크
78
2026.8 690호 ‘ㅁ’ 연대기(年代記)——어머니에서 무덤까지, 그 숭고한 지평(地平)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은 ‘ㅁ’의 연속이었다. 아마 여생도 ‘ㅁ’의 연속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ㅁ〔m〕’ 음이 들어 있는 ‘어머니(엄마, 어메)’로부터 태어났다. 어머니는 내 ‘몸’과 ‘맘(마음)’도 낳으셨다. 어머니는 ‘물’을 ‘마시게’ 하고, ‘미음’과 ‘맘마’를 ‘먹이며’ 나를 기르셨다. 내게 ‘말’을 가르쳐 주시면서 삶의 ‘멋’과 ‘맛

  • 권상호
북마크
89
2026.8 690호 왜 그랬냐고

그 길을 지나는 일이 두렵다어떻게 기척을 아는지그 근방에만 가면눈먼 산 벚꽃 그루터기 바짓가랑이 붙잡고 묻는다왜 그랬냐고… 비틀거리는 세상 버티어 선 죄밖에 없는데 환한 세상 기웃거린 죄밖에 없는데한눈판 자기 잘못 쏙 빼고길가 구푸려 선 나 때문에 이마 깨졌다는 그 사람의 송사(訟事)왜 믿었느냐고 묻는다 소명 한마디 들어

  • 이종구
북마크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