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가면 약속 시각에 맞출 수가 없겠다 싶었으나 도리가 없다. 어쨌든 출발은 해야 한다. 구김이 없는 생머리의 아가씨가 고개를 쳐들고 잠든 뒷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고 카톡을 훑어본 후 유튜브를 제목만 몇 가지 읽고 나서 눈을 감았다. 일과를 마치고 가기 때문에 피곤했던지 스르르 잠이 오는구나 했을 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좌석 버스를
- 김해곤
지금쯤 가면 약속 시각에 맞출 수가 없겠다 싶었으나 도리가 없다. 어쨌든 출발은 해야 한다. 구김이 없는 생머리의 아가씨가 고개를 쳐들고 잠든 뒷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고 카톡을 훑어본 후 유튜브를 제목만 몇 가지 읽고 나서 눈을 감았다. 일과를 마치고 가기 때문에 피곤했던지 스르르 잠이 오는구나 했을 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좌석 버스를
“지금껏 이런 문화유산이 있었던가요?”숨은 보석을 찾아 재평가해야 한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일천하고도 오백 년간 민간의 젖줄이었던 청제, 그 축조 연대와 과정을 기록으로 보존한 보석 같은 존재가 청제비다. 역사적 가치가 탁월한 동아시아 유일의 보물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영천시 금호읍과 도남동 사이에 아주 오랫동안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만나고 싶은 이가 있다. 말 한마디, 글 한 줄 혹은 스치는 인연 하나로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사람. 나에게 수보리 스님은 그런 분이었다. 불교에 입문하던 시절 우연히 접한 스님의 시 「삭발」은 내 안의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울림으로 다가왔다.‘업연으로 태어나 번뇌를 씻어… 초연히 잡초 뽑혀 내려가네.’이 짧은 구절은 오랫동
휴대폰에서 카톡의 울림이 들려온다. 얼른 열어 보니 지인이 보내 온 내용이다. 올해는 여름 소나기를 많이 맞았는데 소나기의 기억이 언젠가는 글감으로 요긴하게 쓰이게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글감 힌트를 내게 준 것이 아닌가 하고 고마운 마음에 얼른 답을 한다. 글감으로 장맛비와 소나기를 글감
폭풍이 지나가고 맞이한 청명한 하늘. 밤새 내리친 비와 바람이 모두 사라진 아침 세상은 한결 가볍고 투명하게 깨어 났다가 어젯밤의 폭풍은 마치 모든 것을 씻어 내고자 했던 것처럼 집과 마당의 모든 잔해를 몰아냈고, 그 뒤로 남은 공기는 더없이 청명했다. 하늘은 흐릿하지 않은 깊고 깨끗한 푸른빛을 드리웠다. 햇살은 부드럽게 땅을 스치고 뒷마당에 서 있는 작은
찬란한 4월의 아침은 눈이 부시다. 창밖을 바라보니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꽃과 나무들의 향연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어 조용히 집에만 있기가 너무 아쉬워 벚꽃이 만개한 아파트 가로수길로 나갔다. 떨어지는 꽃잎을 두 손으로 살포시 잡으며 꿈을 향해 달려가던 학창 시절의 추억에 잠겨 본다. 여고 2학년, 체력장(體力章) 연습을 하기 위해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고향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서 잤다. 요즘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행사를 치르려면 관광버스를 빌리고 음식을 마련하여 친지와 하객들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까지 가야 되니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랫쪽에서 빨간색 버스가 양쪽 방향지시등을 깜박거리면서 올라오는 것을 보니 타고 갈 하객을 부르는 게 틀림없었다. 차에 오르니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이 실속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바쁜 시간에 사로잡혀 스스로 담금질할 새도 없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기의 바쁜 시간이 언제 바람같이 왔다 구름같이 사라져 갔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겨 숨 가쁘게 헐떡이면서도 익혀진 답습을 울며 겨자 먹기로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고, 항상 24시간도 부족하다면서
아침 식사 후의 커피 맛은 내겐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은은한 커피 향에 매료된 나의 반쯤 감겨진 눈동자가 어항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의 정겨운 모습들을 뜯고 있노라면 난 어느새 깊고 푸른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들곤 할 때가 있다. 끝없이 넓고 깊은 그 바닷속엔 이름 모를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물고기들의 생태계는
오늘은 아내가 병원 가는 날이다. 지난달 석 달에 한 번 하는 폐암 정기 검사에서 위장에 검은 점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받은 위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다. 나는 또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긴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2년 전 코로나 유행이 끝날 무렵, 아내는 몇 달간 기침을 계속하였다. 그냥 코로나 휴유증이라고 생각하고 동네 병원에서 기침,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