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내려다보이는 한강은 하루종일 쫓던 해를석양 무렵에야 겨우 잡아 한입에 씹어 삼키고 빌딩에 걸려 있는 광고에서 펑펑 쏟아지는 맥주를실컷 받아 마신 뒤 술에 취해 길게 누워 있는해잡이 사냥꾼이다
- 이효범
높은 곳에서내려다보이는 한강은 하루종일 쫓던 해를석양 무렵에야 겨우 잡아 한입에 씹어 삼키고 빌딩에 걸려 있는 광고에서 펑펑 쏟아지는 맥주를실컷 받아 마신 뒤 술에 취해 길게 누워 있는해잡이 사냥꾼이다
긴 의식의 되뇌임 끝에서시간은 제 몸을 깎아 내일을 빚는다 풀숲 우거진 언덕 위버드나무 한 그루허공에 묶을 수 없는 그물을 늘어뜨리고 있다 햇살 속 개개비 울음이 스며들던 집그 마루에는아직도 식구들의 발자국이 묻어 있다 벗겨진 기둥은세월이 괴어든 지붕을 가까스로 버티고 갈라진 반자 틈에서적막의 각질이 바스러지듯 떨어져 나
숲길을 걷는 발걸음마다낙엽이 발길에 속삭이고바람은 나지막이 숨을 내쉰다 빛 한 줄기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면 마음속 깊은 곳,조용히 접어둔 기도가잎사귀처럼 피어오른다 작은 새의 울음,먼 산의 숨결모든 것이 고요 속에서내 안 깊은 고요를 밝혀준다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면숲의 침묵이나를 감싸안으며오늘 하루를 온전히 맡기게 한다
좋다네가 있어 좋다아침 눈을 뜨니곁에 있어준 네가 있어 좋다 동분서주 바쁜 시간툴툴 털고 문안의 발걸음반겨주는 네가 있어 좋다 두 손 맞잡고 나란히 누워 평안한 숨고르기 하는 네가 있어 참 좋다
하늘이 온통너네의 화지(畵紙)드냐이 큰 캔버스푸름 위에 농염칠 바람에 밀린 감성불평도 들춰내고온갖 형상 꾸미고서 내 상상 홀리구나 고개를 다시 드니 그 그림 지우고서 넌지시 하는 말 버릴 것은 버리라네.*음력 9월 가을 구름.
먼발치 어딘들…속마음 꿰뚫어기쁘고 즐거울 때 함께 웃고슬프고 서러울 때 같이 울으리 외로울 땐 말 없는 벗 되어쓸쓸함 나누고그리움 사무칠 땐사랑의 꿈 실어 바람에 나부끼리 문득문득 아련한 추억가슴 저리면 다독여 침잠하리 고뇌의 탄식 깊어지면무언의 눈빛으로 삭이리 밝은 빛 허리춤에 어스름… 별빛 고요한 영혼의 안식
덕풍천 징검다리 아래 피라미 떼아침햇살 먹어 은물결로 흐른다 유년 시절 서울 마포구 골목집에 살 때긴 언덕길을 지나면 검은색 기와집들이 다닥다닥나무도 꽃잔디도 없었다염리동 집 그날의 기억은 무채색이다 원예를 사랑하는 남편 덕분에집 안에 군자란 템파레 호접난이 웃고고무나무 관음죽 벤자민 이파리 윤기가 돈다 복스런 꽃들이 눈인사를 한
산전수전 역전의 용사훈장을 가슴에 단 노인들쭈그리고 앉아 햇볕 쬐고 있다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팔다리 뒤틀리고 만신창이 몸여기저기 숨 몰아쉬는 소리겨울이 깊어 간다 주소 잃어버린 방랑자들한데 모아 시름을 눕힌 합숙소 언제 빈손으로 떠날지 모르는 길 낡아서 서러운 세월 부자나 가난뱅이나잘난이와 못난이도울타리에 갇힌
그 남자는 단 한 번도철갑 외투를 벗어 던진 적이 없다 희고 반짝이는 보석 무늬만고집하고 있는 그를 꼭안고 있는 그 남자 속도 겉도 변할 줄 모르는멋없는 그 여자 게다가 짜기까지 한쌀쌀맞고 매력 없는하지만 꼭 필요할 때 언제나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여자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많고 많은 인기 좋은 여자 흰 행주치마
바람도 쉬어 가는 금강 언덕에비단실로 지은 하얀 집에서강물과 노는 구름과 달려보고춤추는 물결따라 걸어보고은빛 반짝이는 모래에 안겨보고 앞산에 해 뜨면 빛나는 잔칫상 받고 뒷산에 해 지면 황금빛 꽃침대 누워 신처럼 말없이 물처럼 흘러가야지 아침은 하루 한 번 봄은 일 년 한 번사는 것은 딱 한 번 죽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