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는 추위를 느꼈다. 지금도 춥다. 남들이 가진 것의 대부분을 갖고 있지만, 마음에 평화가 없다.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화해하고자 노력해도 상대의 차가운 눈빛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아니, 시인하지 않더라도 부정하지 않아도 말을 꺼낼 수 있으련만, 상대는 전혀 기억조차 없다는 표정이다. 어머니의 자존심이 바위보다 무겁다는 것을 모르
- 민금애
미자는 추위를 느꼈다. 지금도 춥다. 남들이 가진 것의 대부분을 갖고 있지만, 마음에 평화가 없다.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화해하고자 노력해도 상대의 차가운 눈빛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아니, 시인하지 않더라도 부정하지 않아도 말을 꺼낼 수 있으련만, 상대는 전혀 기억조차 없다는 표정이다. 어머니의 자존심이 바위보다 무겁다는 것을 모르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담당 관청에 찾아가 통발을 돌려달라고 하면 오히려 불법 조업으로 몰려 벌금을 부과받을 것이다. 통발을 쉽게 찾으려고 놓은 부표가 단속반원들에게 표적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거금 칠십만 원을 들여 산 통발을 모두 빼앗기자 삶의 의욕까지 잃었다. 물고기를 잡을 수 없어 운영하는 매운탕집까지 타격을 입었고, 낚시꾼들에게 사정해서 물고기
종로 한복판 인사동 거리에는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행인들을 신비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역사의 흔적만큼이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드는 문화의 거리이자 모임 마당이 펼쳐지는 곳이었다.큰 도로 한 블록 뒤편에 위치한 ‘라파엘카페’는 유방암 환우회인 ‘비너스리본’ 회원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이었다. 치열하고 전쟁 같은 삶으로부터 우아함으로 부드러움을 채워주는
1. 비틀린 남자쪽팔린 소문으로 주검이 의식 없는 자들의 입쌀에 오르내린 남자는 그가 기거하며 살았던 대도시 일대에서 지독한 인사로 알음알음 알려진 사람이라고 했다. 이 남자의 주검이 마치 기묘하게 비틀린 나뭇가지처럼 말랐다더라는 소문이 발 없이 천리를 벗어나 만리를 향해 달릴 때쯤, 유언비어라며 소문을 주워 담으며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남자의 아
이명준 선생님께 드립니다.저는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에 근무하는 박수현입니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여러 날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당돌한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내년에 회갑을 맞이하는 저의 어머니는 지금 이곳을 떠나 작은 섬에 가 계십니다. 뜻하지 않는 병고로 요양차 가 계시는 어머니는 장연화씨입니다. 설령 선생님의 기억 속에 저희 어머니가 남
위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전신을 고루고루 씻어주며 자긋자긋 누르듯이 안마를 하는 것 같았다.“아이 시원해….”윤희(允嬉)는 머리를 풀고 샤워기에 디밀다가 갑자기 발작이라도 된 것처럼 샤워꼭지를 돌려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갈겼다.그곳에는 비닐로 포장되어 붙어 있는 허연 종이가 비명을 지르듯이 바르르 떤다.<말자 시리즈 1號>1. 바른말 하되
오래 기다린아지랑이 향기 머금고이른 봄 따스함으로깊숙이 들어온내 마음에 품어진 너 눈 가득 쿵쿵 들어온 그리움뭉게뭉게 피어난 하얀 사랑에머랄드 파도에 담아너에게로 너에게로개쑥부쟁이1) 한 아름 보낸다 갈남 해변2) 모래 가늘어지고푸르른 잎새 이슬 엷어져도뭉클뭉클 다가온 마음속살랑살랑 봄바람 그윽한인삼벤자민3) 본다 나 이름 없는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아하루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던다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따뜻하게 집 안을 채웠던 말소리들이벽 속으로 꼭꼭 숨어버렸나 보다 텅 빈 거실에 혼자 남아 있는 날이면언젠가 맞이할 머나먼 이별을 생각하게 되고창밖의 청보랏빛 저녁 하늘이 짙어 갈수록한 마리 벌레 울음소리도 더 쓸쓸하게 들린다 얼마 전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꽃병에서 물이 샌다깨졌나 보다선물 받은 것인데 버리지 못하고한동안 눈밖에 제쳐두었다 아까워 접착제로 붙여도깨진 자리지워지지 않고 보인다 너와 나목련꽃 몇 번 피었다 졌지만깨진 흔적 남아 있다
머무름이 다하면 돌도 어쩔 수 없어연인들 마음처럼 부서진다 은백양 수만 잎이 뒤채고쪽동백 첫눈처럼 쌓인 골짝의 여울 먼 계곡으로부터 흘러 내려온백색의 기억들 은빛 억새밭 같기도파닥이는 날갯짓 같기도 한달빛 부서지는 바다에모래 되어 모였다 흰꼬리 말며 달려온길들 수 없는 은빛 여우들입속 가득 모래 토하며 뒷걸음질 친다&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