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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산이 피고 있다

산이 벌어지고 있다붉은 해를 두른 흰 꽃잎여명에 터지는한 찰나가 눈부시다도르르 말린 몸 빼내어흔들리며 주춤 주춤 벌어진다첫울음이 먹먹하다안나푸르나, 세상 다 가리며 피었다 여명의 살에 버무린 피 같은 해그 빛깔로 물들은 꽃이 태어나고 있다 온몸 땀에 젖은 채벼랑에한발을딛고서서 이제 산이 다 열려붉게 품은산 향기 아찔하다 

  • 박복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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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물구나무서기

거꾸로 선 꽃봉오리들하늘북 치며, 온 지구가 구멍 뚫리도록,책가방 던지고, 뒤집어졌지얼굴 빨개진 초등 육학년 다섯 가시나들약속한 듯, 배워주지도 않은 물구나무서기한다. 온 밤 거꾸로 서서 두 손으로 벌벌 걸었지지느러미 세워 허공을 찔러 솟구쳤는데뚫린 하늘 와르르 쏟아져, 별이고, 달이고, 알 수 없는 꿈, 빙글빙글 돌아내렸지쓰러지고 일어서

  • 박복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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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2025.9 679호 민달팽이·1 ——빛과 어둠

유리 절벽에 그가 심겼다 빛의 화살을 맞고 타는 맨몸, 화형당하고 있다눈멀어 돌아본다어둠을 뛰쳐나온 아픔이 유리문 꼭대기에 기어올라 끈적이며 뒤척인 길길게 그어놓은 생(生)이 구불텅하다꽁무니가 뱉아낸 체액,번쩍이는 햇살의 계단 뜨겁겠다무슨 저런 희고 빛나는 꼬리를감추고 있었던가 어둠에 갇혔다가 끝내 빛에 갇힌 몸 어둠을

  • 박복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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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말(言)의 알

수없는 말의 알들이부딪히며 포말을 이루는 곳침묵이 터져 부서지며 속삭인다 나 태어나기 전부터파도를 넘나들며해일을 건너온 알을 줍는다스치는 갈매기 깃의 그늘,잔잔한 물여울에 비쳐드는햇살의 온기에껍질을 깨는 말의 알, 침묵의 개화 반짝이는 말들이 쏟아진다 사랑, 그 불로영롱하고 그윽한 말의 알 하나 지피면 맵고 아득한 영혼,

  • 박복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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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태고로 가고 있는 둥근 우리들

나는 일찍부터 노래를 했다. 시도 썼다. 첫 울음은 내 문학의 첫 작품이 아닐까. 엄마로부터 태어나면서 “나는 나다”라고 쓰며 세상에 나왔으리. 주먹을 꼭 쥐고 쓴 그 첫 시는 나의 창작의 산실이었던, 네모난 앉은뱅이 밥상 위 첫 울음이다.국민학교 3학년 작문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쓴 ‘봄’이란 제목의 글이 잘 쓴 글이라며 칭찬하셨다. 내성적인 나는

  • 박복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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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025.9 679호 길 위에 꿈을 싣고

나의 창작의 산실은 매우 유동적이다. 가장 귀중한 산실은 앉은뱅이 큰 네모 밥상이다. 그 문학 밥상 위에서 여섯 권의 시집이 태어났다.산이나 바다, 구름, 눈물, 벼랑, 바람 속, 꽃잎 벌어지는 신새벽, 어디든 영감은 섬광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던가. 그것을 가슴에 새겨 두고 삭혀 나의 밥상 위로 모셔온다. 영감의 불씨와 함께. 너울거리며 울먹이던 말들을 쓰

  • 박복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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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문단의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다

대장간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대장간은 불에 달군 시우쇠를 다루는 곳이다. 시우쇠를 두드려 호미며 괭이, 삽 등 생활에 유용한 온갖 연장을 만들어내던 대장간이 점점 삶의 뒤편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연장을 만들던 대장간이 없어지듯 문단의 대장간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문단에 유명한(?) 격언이 있다. ‘작년에 등단한 사람이 제

  • 김영시인·한국문인협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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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숲에 아침이 오다

새벽의 손 놓고 하루의 손을 잡는 아침나무는 밤새 품었던 새를 날려 보낸다아버지가 논에서 돌아와서 낫으로 연필을 깎아 주던 어린 날은 가고 연필로 글씨를 쓰던 그 어린 날은 가고풀섶에 숨겨 놓은 홍시 한 알 먹고 산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는 어린 어머니도 가고나무는 하늘로 새들을 날려 보낸다나무는 하늘로 새들을 날려 보내며 하루의 문을 연다

  • 우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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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유모차 행렬

햇살 몽글이 동그라미 그릴 때삼삼오오 짝지어 바쁜 걸음 기댄다 지팡이 짚은 이보다구부정한 허리굳어버린 무릎으로 어기적 어기적어르신들 교통수단 노인 유모차길가 흐드러진 고운 꽃들 날리는데눈길주지못하고바쁜걸음옮긴다 복지관 한글 수업 있는 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했는가”“듣고 돌아서면 생각이 안 나아”무릎 허리 굽었어도 마음은 소녀여

  • 민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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