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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손자 첫돌을 앞두고 돌잔치 때 입을 한복을 마련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패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어 패션 트렌드 파악과 부자재 구입 등으로 동대문 등지의 시장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친구이다. 사업으로 늘 바쁜 친구이지만, 오래간만에 얼굴도 볼 겸 동행하겠다며 흔쾌히 답했다.“주단 골목에 가면 돌쟁이 아이들 한복이 많이 있으

  • 김종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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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모국어 사랑

미국에 사는 조카 내외가 귀국을 했다.남동생의 두 아들 중 큰애인데 2019년 미국에서 치러진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 보고 햇수로 칠 년 만의 만남이다. 그사이 세 자매의 부모가 된 조카 내외는 여섯 살, 다섯 살, 백일 된 딸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맞벌이 부부가 어떻게 시간을 냈느냐 물었더니 셋째 딸의 출산 휴가가 한 달여 남아 있어 틈을 낼 수 있

  • 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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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죽음 연습

동짓달, 섣달, 정월은 내가 친구들, 학-두루미를 만나는 달이다. AI가 알려주는 날씨 정보에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눈 오는 날에는 나의 친구들, 촬영의 최고 순간이기에 기대감으로 가슴이 뛴다.문선명 목사는 날마다 잠자는 것이 영계에 가는 연습이라고 설교하셨다. 영원한 천상 생활에 가는 훈련을 날마다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 이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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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오해, 그리고 진실

여름이 이울고 있었다. 대기에 조금씩 서늘한 기운이 묻어났다. 아이들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갈 때 진한 색깔로 물든 떡갈나무 잎들이 가끔 발에 밟히곤 했다. 이 아름다운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울의 병원에서 귀국할 날짜를 확정해 달라고 재촉하는 이메일이 여러 번 왔기 때문이었다. 딸네 가족과 보내는

  • 조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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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보리 베는 여자

초여름밤 기온이 땀 흘린 적삼 밑으로 스며들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휘영청 쏟아지는 달빛에 누런 보리밭 들판이 밤바다처럼 검푸르다. 더러는 이미 보리를 베어버린 밭이 낡은 잠방이를 덧대 기운 낯선 천 조각처럼 생뚱맞아 보인다. 아낙은 허리를 한번 쭉 펴 올리고 나서 툭툭 등을 두드린다. 초저녁부터 베기 시작한 보리가 가난한 집 자식들처럼 바닥에 나란히 누

  • 김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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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개목사 인연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김밥집에 등산객들이 줄을 서 있다. 일요일 아침이라 김밥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슬며시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앞선 사람들이 많아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겠다. 바쁜 일이 아니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처지라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천등산은 높지 않은 산으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간이 지나

  • 이인우(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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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날지 않는 새

조명을 받은 베이커리의 쇼케이스는 현란하다. 빨간 딸기로 장식된 하얀색 생크림 케이크, 달콤한 초콜릿을 잔뜩 한 입 베어 문 듯한 초콜릿 케이크, 커피 향이 은은한 모카 케이크, 푸른 빛깔의 말차 케이크, 그리고 한없이 부드러울 것만 같은 바스크 치즈 케이크까지. 소미는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먼저 눈으로 맛을 음미한다. 심호흡을 고른 뒤 쟁반에 유산지를 깔

  • 장성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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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72호 옆집 그녀

장대비가 노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간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인데도 그치지 않았다. 더 강하게 뿌려져서 길가의 가로등은 희미하게 빗속에 묻혀 버렸다. 새벽녘의 밝음과 동시에 잠에서 깨었다. 출근을 위해 빵과 우유로 아침 끼니를 해결하고 출근하기 위해 나섰다.비가 멈췄다. 비에 젖은 정원에 빨강, 노랑, 핑크, 흰색 색색의 꽃들이 피어서 어우러

  • 정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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