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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지는 꽃을 바라보며

젖은 꽃잎이 바람벽에 나뒹군다 입추 지나니 병산서원 배롱나무꽃도 무너지는데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 가지마다 쌓이는데 액자 속 늙은 소나무도 느린 기지개로 실눈을 켜는데 외기러기 높이 솟은 서녘 하늘에 수줍은 무지개 하나 꽃그늘로 날을 벼리는데 이별의 손끝마다 굳은 서리로 피는 마지막 불꽃… 지는 꽃잎에 새기는 발자국이 아름답다

  • 차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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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들을 귀 있는 자」

햇살이 풍성하다. 그 풍성한 햇살을 받고 하루가 다르게 연초록 빛깔이 두껍게 대지 위를 뒤덮는다. 햇빛이 투명하게 부서져 내리는 사이로 스멀거리는 아지랑이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다.“어흥, 어여넘차 어허호옹∼.”애절하고도 원망에 젖은 상두꾼의 목소리가 여름으로 다가서는 한낮의 적요로움을 비집고 상여는 읍사무소를 한 바퀴 돌아 군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근래에

  • 조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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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삶의 관조에서 현실사회 비판과 미래 지향 인간 창조

한국문인협회 148번으로 등단 가입해 회원이 된 후, 반세기의 작품활동에서 그 절반의 기간을 동화 창작으로,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려 왔다.그런 동화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미래 지향의 세계만을 담았고 어둠 없는 밝음이 가득한 인간의 참모습을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써냈다.그 중 한 작품의 예를 들면 <파랑새와 아저씨> (KBS 1

  • 조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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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9호 오사카 엘레지

층고 높은 난바역 계단을 빠져나오며 기훈은 숨을 몰아쉬었다. 요즘은 연일 피곤하다는 느낌밖에 없었다. 주중에 야근이 이틀이나 있었고, 주말인 어제도 출근해 프로그램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오사카에서의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요일인 오늘만은 늦잠을 잔 후 숙소 근처 규카츠 맛집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걸려온 아버지의 전

  • 심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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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콩나물 교실의 휴일과 산촌의 고옥

나의 작가생활 50여 년 중 절반은 서울에서 교직과 더불어 동화를 써 온 콩나물 교실의 휴일이 창작의 산실이었다. 그러다가 교육정년과 함께 수도권 변방의 한 산자락에 펼쳐진 1만5천 평의 농원 한복판의 전원주택 한 채가 소설 창작의 후반기 산실이다.1971년 이원수 선생의 추천을 받아 아동문학인 동화 창작을 교직과 함께 병행해 왔다. 인구 천만을 넘는 거대

  • 조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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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폭설

강변로 운행길에눈이 내린다갑자기 날아드는눈보라에 떠밀리는지차량들의 속도가 느려진다 천지사방 눈이 내린다먼먼 시간의 언지리에서까마득히 잊고 살던하얀 추억의 파편들이한사코 몰려든다 차창에 부딪혀방울방울 눈물로 스러지다끝내 엉겨 쌓이는너의 눈빛 너의 목소리따뜻하기만 했던 날들 눈이 내린다갑작스런 폭설에 갇혀 강변 어디쯤 차를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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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인간이 먼저

글을 쓰는 사람을 문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문인이 쓴 것을 문학작품이라고 한다. 따라서 문인들은 그 문학작품이라는 것을 잘 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꿔 말해, 문학성이 있는 훌륭한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을 창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노력만 한다고 꼭 될 일도 아니다

  • 김건중소설가 ·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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