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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두릅과 옻나무 순

봄나물을 먹었다. 지난겨울 몰아치는 칼바람과 혹독한 냉기에도 묵묵히 견디며 연약하게 보이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꿈을 품고 나오는 새싹이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내가 어린 시절에 겨울 동안 기다리던 일용할 양식이었다.“나물 먹고 물 마시고 하늘을 이불 삼아 잔디에 누우니 사나이 가는 길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봄나물을 먹을 것이 없어서 먹

  • 한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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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어머니의 발자국 등대

추자도 등대 앞에 선다. 상추자도 집들은 지붕마다 색색의 옷이 입혀졌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풍경이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했다. 담 주변으로 멸치를 숙성시키는 커다란 통은 내 키를 넘는다. 집을 지키는 지킴이일까. 뚜껑 위에는 돌멩이를 밧줄로 칭칭 묶어 놓았다. 등대 앞에서 바라보는 섬의 유혹에 나도 묶인다.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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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가시이불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가 생겨 미술관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전시장의 분위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용히 밝혀진 조명 아래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여섯, 그림 속의 영혼들이 소리 없는 울림으로 내게 다가선다.일백 개의 무덤에는 일백 가지의 사연이 있겠지만, 일백의 작품 속에는 수백

  • 이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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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팝 아카이브

『팝 아카이브』는 평소 즐겨 듣는 내 팝송 목록 모음집이다. 3년째 틈만 나면 어지러이 컴퓨터 자판과 씨름한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까지 쓴 원고량이 원고지로 약 9,000매, 따져 보니 목표량의 반 정도는 채운 것 같다. 참고문헌 목록 또한 A4 용지 15매를 넘겼다.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며 일을 진행한다.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 부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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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하루살이의 일생

만물이 약동하는 춘 3월에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이 되니 지구상의 한 구성원으로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가 생각난다.어느 글에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하여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고 외쳤다.지난 무더운 여름날

  • 주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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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말하는 새

우리 집엔 말하는 새가 산다. 옐로우사이드코뉴어는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닌 앵무새인데, 우리 집의 옐로우사이드코뉴어 두 마리, 즉 코코와 뿌뿌는 말을 꽤 잘한다. 발음도 정확하다. 아마도 그들을 데려온 딸이 사랑해 주어서 그런 것 같다.“이쁜아, 사랑해. 아이구, 예뻐!”매일 새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며 사는 이들은 지구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두 앵무새

  • 김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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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겨울눈〔冬芽〕

십 년 만이었다. 그 나무를 자세히 바라본 것은.큰딸은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은 후 경력이 단절되었다. 첫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버텼으나, 둘째가 태어나자 결국 일을 포기했다. 나는 살림만 하는 딸이 안쓰러웠다. 마침 좋은 회사에 취직할 기회가 생겼지만, 육아가 문제였다. 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들을 돌봐 줄 수 있겠냐고. 나는

  • 권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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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제가요?

오늘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쉬어야겠다. 요즘 며칠 동안 제대로 쉰 날이 없었다. 이미 피로가 누적될 대로 되어 버린 상황이다. 이틀짜리 야근을 끝내고 가족 행사로 지방을 다녀오고, 준비하던 시험도 하나 치르고, 다시 새벽 근무 이틀을 하고, 오후 근무 이틀을 하고 하루를 쉬는 날이다. 정말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나의 휴식 방법은 간단하다. 텔레비

  • 배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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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시골 독가촌 빈집을 활용하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온 가족이 논밭으로 나가 농사 지어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았다. 그 당시에는 농촌 지역의 농토가 부족해 한 농가에서 논밭 약 3000평 이내로 농사를 지었다.농촌 사람들은 농사짓느라 봄부터 가을까지 밤낮 없이 농사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노

  •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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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어디서 왔지, 어떻게 왔을까? 피었구나, 피어 있었구나!’ 아파트 마당가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뿌리내린 제비꽃이 보랏빛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어찌 넓고 넓은 세상을 다 두고 하필이면 이 자리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면서도 저리 예쁜 꽃을 피워내다니.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봄볕 아래 나부죽이 꽃망울을 틔우고

  • 임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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